“세계의 다양한 문화 유전자를 융합하는 데 한글만한 문자가 없습니다. 어떤 문자보다도 뛰어납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사진)은 2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세계문자심포지아2014’ 개막식 기조강연에서 “인쇄술 이후 디지털 기술에 의한 또 한 번의 문자혁명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회화문자(픽토그램)에서 표의문자(이디오그램)을 거쳐 표음문자(포노그램)으로 진행된 문자의 진화 단계가 최근에 역전하고 있다”며 “‘문자의 죽음과 해체인가, 새로운 문자의 혁명인가’의 기로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인터넷과 스마트폰 메신저 등에서 쓰이는 ‘ㅋㅋㅋㅋ’ ‘ㅎㅎㅎㅎ’ ‘추카추카’ 등의 표기에 대해 “한글이 소리로 읽을 수 없는 순수한 시각문자(ㅋㅋㅋ) 로 변하거나 반대로 ‘추카추카’처럼 원래 표기를 무시하는 등 표음문자가 표의문자로, 표의문자가 아이콘의 회화문자로 ‘유턴’하는 상황이 액정 위 문자들에서 발견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수많은 이모티콘과 자판 부호로 얼굴 모양을 만들어 감정을 전하면서도 글로벌 문자 구실을 하는 도시 건축물과 도로 표지 같은 픽토그램이 기존 문자를 압도한다”며 “그 속에 각기 고유한 자신의 문화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문화 유전자”를 뜻하는 개념으로 내세운 ‘밈(meme)’을 거론하면서 “세계의 다양한 밈을 포함시켜 융합하는 데 한글이 제격”이라고 강조했다.

사단법인 세계문자연구소와 서울 종로구 공동 주최로 올해 처음 열리는 세계문자심포지아는 ‘문자 생태계, 그 100년 후를 읽는다’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와 다양한 예술가가 참여해 만든 전시, 시민 참여 행사로 나뉘어 열린다. 내달 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일대에서 진행된다. 이 전 장관은 “이번 행사가 △문자학 분야 개척 △문자에서 신체성 회복 △문자의 장식화와 생활화 △디지털 환경과 기술 변화에 맞는 문자의 개혁 △시서화(詩書畵) 일치의 전통 회복 △군사력과 경제력에 이은 문자력의 ‘제3 문화파워’ 선언 등을 위한 자리가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