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모르는' 세계 유일의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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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 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 이상재 단장
- 10월25일 예술의전당서 힐링콘서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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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나 기자 ]지휘자가 없다. 보면대(악보를 올려놓는 장치)도 없다. 연주는 무대에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관객들은 숨죽이고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이내 눈을 감고 느끼기 시작하는 음악소리에 감동이 밀려온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에겐 늘 있는 연주장면이다.
오는 25일 연주회를 앞두고 서울 서초동 연습실에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 유일한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인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의 이상재 단장을 만났다. 이 단장은 소리가 나는 곳을 얼굴을 돌리고 친근하게 인사를 나눈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케스트라 소개부터 연습과정까지 상세히 얘기를 풀어갔다. 이 단장도 물론 시각장애인이다.
음악을 꾸준히 하면서 오케스트라까지 결성해 연주회를 하는 건 일반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곡을 통째로 외워야만 연주가 가능한 시각장애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음악을 시작한 것일까?
"아무래도 보이지 않다보니까 소리에 민감하거든요. 아름다운 소리인 음악에 흥미를 느끼고 직접 악기를 연주하다보면 팝스타인 스티비원더나 세계적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를 꿈꾸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가 말하는 현실은 '혼자' 연주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국내외 무대 어디서건 시각장애인은 누군가와 협연을 하거나 독주를 해야만 음악을 선보일 수 밖에 없다. 지휘를 볼 수 없고 악보를 익히는데 정상인보다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혼자 연습한 끝에 무대에 오르는 형태다.
"협연이나 독주를 할만큼 실력이 뒷받침 되려면 연습과 교육을 꾸준히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가정 형편상 어려운 경우들이 대부분이죠. 결국 세상과 소통하려고 음악을 시작했던 장애인들은 혼자 서는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셈입니다. 그러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죠." 이 단장은 미국 피바디 음악대학에서 1997년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세상을 놀래킨 주인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시각장애인 유학생이고, 미국에서는 최초의 시각장애인 음악박사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시각장애인들의 현실을 느끼고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때는 2007년 3월께다.
"강의를 다니고 공연을 다니면서 그들(지금의 단원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음악을 취미로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고 점자책을 제작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그렇게 단원들을 모아서 창단하긴 했는데…. 정말이지. 엉망이었습니다.(웃음)"
혼자서는 어느 정도 연주를 하는 단원들이었지만 누구와 같이 연주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확대기로 악보를 꼼꼼히 보며 10페이지 정도의 협주곡을 외우는 데만 꼬박 2주가 걸릴 정도였다. 연주회를 준비하는데만 다른 오케스트라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단원들은 음악을 할 수 있다는 희망에 광주에서, 부산에서 시각장애인용 흰지팡이에 의지해 매일같이 상경했다.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올라와 밤늦게까지 연습하기가 일쑤였다.
연습만큼이나 악기의 구성도 문제였다. 독주가 가능한 악기를 주로 다루다보니 부피가 큰 콘트라베이스나 금관악기 연주자는 아예 없었다.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에 객원 연주자가 섞이게 된 까닭도 이 때문이다.
"처음에는 연습 자체가 어렵다보니 무대에서 손발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다른 쪽에 장애가 있는 분과도 맞춰봤지만 저희 만큼의 교감이 없다보니 잘되지 않았구요. 레파토리도 빨리 많이 늘지 않다보니 저희 스스로도 답답했습니다. 이제는 힘들었지만 8년간 축적된 곡들만 130여곡이 넘습니다."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는 기업초청 공연, 찾아가는 음악회, 정기연주회 등 매년 40여회의 공연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2011년 10월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 무대에서 연주해 미국 청중들과 평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어렵고 힘들지만 연주를 계속 하는 이유요? 어둠 속에서도 꿋꿋이 연주하는 저희들을 보면 '희망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저희를 찾는 곳이라면 어디가 됐든 연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음악을 들어주시고 '감동'을 느껴주시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번에 열리는 공연의 제목은 <시월의 어느 멋진날, 힐링콘서트>다. '눈을 감으면 소리가 보여요'가 부제다. 슈트라우스의 '박쥐' 서곡을 비롯해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중 활츠', 성악가들과 선보이는 'Nessun Dorma' 등이 연주될 예정이다. 소프라노 강혜정, 메조소프라노 김수정, 테너 하만택, 바리톤 우주호도 함께 무대에 선다.
오는 25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문의 (02)3487-0678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
관객들은 숨죽이고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이내 눈을 감고 느끼기 시작하는 음악소리에 감동이 밀려온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에겐 늘 있는 연주장면이다.
오는 25일 연주회를 앞두고 서울 서초동 연습실에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 유일한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인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의 이상재 단장을 만났다. 이 단장은 소리가 나는 곳을 얼굴을 돌리고 친근하게 인사를 나눈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케스트라 소개부터 연습과정까지 상세히 얘기를 풀어갔다. 이 단장도 물론 시각장애인이다.
음악을 꾸준히 하면서 오케스트라까지 결성해 연주회를 하는 건 일반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곡을 통째로 외워야만 연주가 가능한 시각장애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음악을 시작한 것일까?
"아무래도 보이지 않다보니까 소리에 민감하거든요. 아름다운 소리인 음악에 흥미를 느끼고 직접 악기를 연주하다보면 팝스타인 스티비원더나 세계적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를 꿈꾸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가 말하는 현실은 '혼자' 연주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국내외 무대 어디서건 시각장애인은 누군가와 협연을 하거나 독주를 해야만 음악을 선보일 수 밖에 없다. 지휘를 볼 수 없고 악보를 익히는데 정상인보다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혼자 연습한 끝에 무대에 오르는 형태다.
"협연이나 독주를 할만큼 실력이 뒷받침 되려면 연습과 교육을 꾸준히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가정 형편상 어려운 경우들이 대부분이죠. 결국 세상과 소통하려고 음악을 시작했던 장애인들은 혼자 서는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셈입니다. 그러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죠." 이 단장은 미국 피바디 음악대학에서 1997년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세상을 놀래킨 주인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시각장애인 유학생이고, 미국에서는 최초의 시각장애인 음악박사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시각장애인들의 현실을 느끼고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때는 2007년 3월께다.
"강의를 다니고 공연을 다니면서 그들(지금의 단원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음악을 취미로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고 점자책을 제작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그렇게 단원들을 모아서 창단하긴 했는데…. 정말이지. 엉망이었습니다.(웃음)"
혼자서는 어느 정도 연주를 하는 단원들이었지만 누구와 같이 연주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확대기로 악보를 꼼꼼히 보며 10페이지 정도의 협주곡을 외우는 데만 꼬박 2주가 걸릴 정도였다. 연주회를 준비하는데만 다른 오케스트라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단원들은 음악을 할 수 있다는 희망에 광주에서, 부산에서 시각장애인용 흰지팡이에 의지해 매일같이 상경했다.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올라와 밤늦게까지 연습하기가 일쑤였다.
연습만큼이나 악기의 구성도 문제였다. 독주가 가능한 악기를 주로 다루다보니 부피가 큰 콘트라베이스나 금관악기 연주자는 아예 없었다.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에 객원 연주자가 섞이게 된 까닭도 이 때문이다.
"처음에는 연습 자체가 어렵다보니 무대에서 손발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다른 쪽에 장애가 있는 분과도 맞춰봤지만 저희 만큼의 교감이 없다보니 잘되지 않았구요. 레파토리도 빨리 많이 늘지 않다보니 저희 스스로도 답답했습니다. 이제는 힘들었지만 8년간 축적된 곡들만 130여곡이 넘습니다."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는 기업초청 공연, 찾아가는 음악회, 정기연주회 등 매년 40여회의 공연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2011년 10월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 무대에서 연주해 미국 청중들과 평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어렵고 힘들지만 연주를 계속 하는 이유요? 어둠 속에서도 꿋꿋이 연주하는 저희들을 보면 '희망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저희를 찾는 곳이라면 어디가 됐든 연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음악을 들어주시고 '감동'을 느껴주시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번에 열리는 공연의 제목은 <시월의 어느 멋진날, 힐링콘서트>다. '눈을 감으면 소리가 보여요'가 부제다. 슈트라우스의 '박쥐' 서곡을 비롯해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중 활츠', 성악가들과 선보이는 'Nessun Dorma' 등이 연주될 예정이다. 소프라노 강혜정, 메조소프라노 김수정, 테너 하만택, 바리톤 우주호도 함께 무대에 선다.
오는 25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문의 (02)3487-0678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