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일본 바로 보기] 일본은 살아 있다 … 일본 경제가 강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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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도쿄에서 근무할 때 주인집 할머니는 2층에 살던 필자 가족을 무척 친절하게 대해줬다. 당시 80대 초반이던 기요세 할머니는 새해 첫날이나 추석날이 되면 1층 주인집으로 불러 일본 전통요리를 대접했다. 지금도 도쿄 생활을 되돌아보면 할머니의 인자한 얼굴이 떠오른다.
할머니가 필자에게 잘해준 속내야 잘 모르겠지만, ‘기자’ 직업이 영향을 준 듯하다. 집을 구하러 갔을 때 직업이 뭐냐고 묻길래 ‘일본경제신문(日本經濟新聞)’같은 한국 최고 경제신문인 ‘한국경제신문’이라고 대답하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니혼게이자이신문 부수는 350만 부 정도로, 일본 최대인 요미우리신문의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지식인층에선 품질과 권위로 가장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기요세 할머니는 기자를 부를 때 꼭 ‘엘리트’라고 불러줘 얼굴이 뜨거워지곤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대한 일본내 평판이 워낙 높았던 덕을 봤다. 할머니가 신문기자를 높이 평가한 배경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정치인 출신인 것도 작용한 듯하다.
할머니는 남편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국회의원을 지낸 부군이 교토대학을 수석 졸업했다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졸업식 때 일왕(천황)이 그해 대학 졸업자 2명에게 주는 우등상을 받았다고 몇 번이나 자랑했다. 1900년대 초반 일본제국주의 당시 양대 명문인 동부의 도쿄대와 서부의 교토대 수석 졸업자 두 명에게만 일왕이 상을 줬다고 한다. 할머니 남편 기요세 씨는 참의원(일본 국회) 의장까지 지낸 실력자였다.
일본과 한국의 크게 다른 하나가 대학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다. 우리나라에서야 누가 뭐라고 하던, 어떤 대학평가가 나오던 ‘서울대학교’가 1등이란 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본에선 좀 사정이 다르다. 지역에 살아 보면 그 지역 명문 국립대의 높은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필자가 2001~2002년 간사이(서부) 지역인 고베에서 살 때도 그런 점을 여러차례 확인했다. 간사이에선 국립 교토대가 최고로 대우받는다. 오사카대, 고베대 출신들도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다. 평판뿐 아니라 실제로 국회의원, 주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대학교수, 언론사 간부들의 상당수가 지역 명문대 출신이었다. 이들이 도쿄대 출신과 당당하게 선두 경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저력을 실감했다.
지난 7일 2014년 노벨 물리학상에 일본인 교수 3명이 공동 선정되자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대학과 과학계의 저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평소 일본과 일본 경제에 대한 ‘경시 경향’이 강한 국내에서도 일본의 저력을 다시 보자는 지적이 많아졌다. 매년 노벨상 발표 시즌만 되면 어김없이 되풀이 되는 현상이다. 아직까지도 한국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해 안타까움이 더하다.
일본이 2년 만에 다시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낸 것은 분명 높이 평가할만한 일이다. 올해로 일본은 노벨상에서 22명째, 과학분야에서만 19명째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노벨평화상(김대중 전 대통령) 한명만 가진 대한민국 체면은 좀 구겨진 모양세다.노벨과학상이 그 나라 과학기술 경쟁력이나 경제력을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 해도 일본의 저력이 부러운 게 사실이다.
특히 의미 있는 것은 이번 수상자들의 소속 대학이다. 아카사키 이사무 석좌교수, 아마노 히로시 교수는 중부의 나고야대 재직중이다. 나카무라 슈지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대에서 근무중이다. 19명의 일본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졸업한 학부는 교토대 6명, 도쿄대 4명, 나고야대 3명 순이다. 도쿄공업대, 도호쿠대, 홋카이도대, 나가사키대, 고베대, 도쿠시마대도 1명씩을 배출했다.
필자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 19명 숫자보다도 이들의 출신대학에 더 주목하고 싶다. 그만큼 일본 과학기술의 저변이 넓고 깊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저력있는 일본의 과학기술과 전국에 골고루 분산된 일본 대학의 학문적 토양이 일본 경제와 일본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고 험하다. 과학기술과 학문은 하루아침에 도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년엔 한국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와 우리나라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길 기대해 본다.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janus@hankyung.com
할머니가 필자에게 잘해준 속내야 잘 모르겠지만, ‘기자’ 직업이 영향을 준 듯하다. 집을 구하러 갔을 때 직업이 뭐냐고 묻길래 ‘일본경제신문(日本經濟新聞)’같은 한국 최고 경제신문인 ‘한국경제신문’이라고 대답하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니혼게이자이신문 부수는 350만 부 정도로, 일본 최대인 요미우리신문의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지식인층에선 품질과 권위로 가장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기요세 할머니는 기자를 부를 때 꼭 ‘엘리트’라고 불러줘 얼굴이 뜨거워지곤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대한 일본내 평판이 워낙 높았던 덕을 봤다. 할머니가 신문기자를 높이 평가한 배경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정치인 출신인 것도 작용한 듯하다.
할머니는 남편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국회의원을 지낸 부군이 교토대학을 수석 졸업했다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졸업식 때 일왕(천황)이 그해 대학 졸업자 2명에게 주는 우등상을 받았다고 몇 번이나 자랑했다. 1900년대 초반 일본제국주의 당시 양대 명문인 동부의 도쿄대와 서부의 교토대 수석 졸업자 두 명에게만 일왕이 상을 줬다고 한다. 할머니 남편 기요세 씨는 참의원(일본 국회) 의장까지 지낸 실력자였다.
일본과 한국의 크게 다른 하나가 대학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다. 우리나라에서야 누가 뭐라고 하던, 어떤 대학평가가 나오던 ‘서울대학교’가 1등이란 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본에선 좀 사정이 다르다. 지역에 살아 보면 그 지역 명문 국립대의 높은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필자가 2001~2002년 간사이(서부) 지역인 고베에서 살 때도 그런 점을 여러차례 확인했다. 간사이에선 국립 교토대가 최고로 대우받는다. 오사카대, 고베대 출신들도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다. 평판뿐 아니라 실제로 국회의원, 주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대학교수, 언론사 간부들의 상당수가 지역 명문대 출신이었다. 이들이 도쿄대 출신과 당당하게 선두 경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저력을 실감했다.
지난 7일 2014년 노벨 물리학상에 일본인 교수 3명이 공동 선정되자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대학과 과학계의 저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평소 일본과 일본 경제에 대한 ‘경시 경향’이 강한 국내에서도 일본의 저력을 다시 보자는 지적이 많아졌다. 매년 노벨상 발표 시즌만 되면 어김없이 되풀이 되는 현상이다. 아직까지도 한국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해 안타까움이 더하다.
일본이 2년 만에 다시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낸 것은 분명 높이 평가할만한 일이다. 올해로 일본은 노벨상에서 22명째, 과학분야에서만 19명째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노벨평화상(김대중 전 대통령) 한명만 가진 대한민국 체면은 좀 구겨진 모양세다.노벨과학상이 그 나라 과학기술 경쟁력이나 경제력을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 해도 일본의 저력이 부러운 게 사실이다.
특히 의미 있는 것은 이번 수상자들의 소속 대학이다. 아카사키 이사무 석좌교수, 아마노 히로시 교수는 중부의 나고야대 재직중이다. 나카무라 슈지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대에서 근무중이다. 19명의 일본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졸업한 학부는 교토대 6명, 도쿄대 4명, 나고야대 3명 순이다. 도쿄공업대, 도호쿠대, 홋카이도대, 나가사키대, 고베대, 도쿠시마대도 1명씩을 배출했다.
필자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 19명 숫자보다도 이들의 출신대학에 더 주목하고 싶다. 그만큼 일본 과학기술의 저변이 넓고 깊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저력있는 일본의 과학기술과 전국에 골고루 분산된 일본 대학의 학문적 토양이 일본 경제와 일본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고 험하다. 과학기술과 학문은 하루아침에 도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년엔 한국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와 우리나라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길 기대해 본다.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