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메뚜기
‘남쪽 하늘에 검은 구름처럼 지평선 위에 걸쳤더니 이윽고 부채꼴로 퍼지면서 하늘을 뒤덮었다. 세상이 밤처럼 캄캄해지고 메뚜기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내려앉은 곳은 잎사귀 하나 없는 황무지가 됐다.’ 펄 벅의 대지에 나오는 메뚜기떼 모습이다. 섬뜩한 광경이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메뚜기떼의 습격은 늘 재앙이었다. 대개 기근, 전염병과 동시에 찾아왔다. 민초들의 피폐해진 삶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했다. 황건적, 홍건적 하는 반란세력들이 불길처럼 일어날 즈음엔 으레 등장했다. 메뚜기의 습격은 동양만도 아니었다. 아프리카에선 특히 빈번했고, 한 무리가 1000억마리에 달했다고도 한다. 지난해 마다가스카르에서 하루에 곡식 1만t을 먹어치우며 경작지의 60%를 황폐화한 일이나 2004년 서아프리카에서의 대공급이 그렇다. 3년 전 호주에서 도시를 대습격한 귀뚜라미도 같은 메뚜기목(目)이다.

메뚜기떼의 출현 경로는 아직 명확지 않다. 학자들 설명을 종합해보면 메커니즘은 이런 식이다. 건조한 사막 등지에 비가 내린다. 풀이 자라며 유충의 먹잇감이 생긴다. 수면상태의 땅속 메뚜기알이 부화해 순식간에 개체수를 늘린다. 종류별로 한 번에 알을 100개씩도 낳는데다 먹성이 좋아 곡물과 나무를 갉아먹고 하루에 두 배로 몸집을 키우며 떼를 이룬다. 이렇게 자연의 특이현상 중에는 특정 종의 개체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급격이 늘었다가 확 줄어드는 일이 더러 있다. 멸종위기의 종들이 5년을 단위로 이런 일을 반복하다 사라진다는 설명인데, 학계의 정설은 아니다. 특정 주식의 거래 급증과 급감, 인터넷에서 트래픽의 급증 급감 현상도 유사하다.

떼로는 무섭지만 메뚜기는 좋은 동물성 단백질원이다. 없던 시절에는 번데기와 더불어 흔한 단백질거리였다. 삶아서 햇볕에 잘 말리면 지금도 꽤 괜찮은 술안주다. 설국열차의 바퀴벌레 영양바가 머지않은 얘기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메뚜기를 비롯한 곤충의 식량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곡식을 먹어치우는 해충이 들판의 식량으로 승격(?)할 날도 머잖았다.

메뚜기는 메뚜기목에 포함된 종들의 통칭이다. 세계적으로 2만종, 한국에도 200종이나 있다. 요 며칠 새 해남군에 출몰한 것들은 이 중 벼메뚜기종이라 한다. 해남의 메뚜기떼는 친환경 간척농지를 택했다. 농민들이 방제에 나섰으나 친환경 살충제를 쓰다보니 효과는 적다고 한다. 친환경 농업의 역설 같기도 하다. ‘메뚜기 한철’이라 했는데 곧 사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