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학의 '사색의 길 따라'] 醫철학자 강신익 "인간의 몸은 누더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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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고 싶었습니다 - 강신익 부산대 치대 교수
문명의 발전따라 그때그때 적응해왔을 뿐, 몸상태는 아직도 수만년전 수렵채취 시대의 것
수명 늘어난 건 의학만이 아닌 위생·영양 덕분
하지만 지나친 위생은 毒…면역력 강하면 세균도 더 공격
아프다는 건 인간의 입장…자연은 관심없어
세균같은 미생물과 친해져야
나무와 흙 만지고 뒹굴면 몸이 세균에 적응…더 건강해져
문명의 발전따라 그때그때 적응해왔을 뿐, 몸상태는 아직도 수만년전 수렵채취 시대의 것
수명 늘어난 건 의학만이 아닌 위생·영양 덕분
하지만 지나친 위생은 毒…면역력 강하면 세균도 더 공격
아프다는 건 인간의 입장…자연은 관심없어
세균같은 미생물과 친해져야
나무와 흙 만지고 뒹굴면 몸이 세균에 적응…더 건강해져
사람의 몸은 무엇인가. 인체의 구성과 역사,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연구하는 분야가 있다. 의(醫)철학 또는 의료인문학이다. 생로병사를 과학적(현미경)으로 해독하면서 인문학적 가치(망원경)로 생명을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아직 생소한 분야다. 국내에서도 몇몇이 개척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치과의사에서 의철학자로 변신한 강신익 부산대 치대 교수(57)를 지난 12일 서울 하얏트호텔 건너편 남산 야외식물원에서 만났다. 오후 3시부터 3시간 동안 산책하고 차를 마시면서 몸과 건강, 질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남산 야외식물원 멋있죠.
“참 좋네요. 언제 이렇게 조성했나요.”
▷오세훈 서울시장 때 해놨어요.
“저도 부산대 치대가 있는 양산에서 객지 생활을 하는데 지방에도 멋진 데가 많아요. 지방자치제를 해서 그런지 도서관도 잘 돼 있습니다.”
▷이런 공원이 건강에 도움을 줍니까.
“큰 도움을 줍니다.”
▷얼마나 자주 걷나요.
“오전 6시에 일어나 출근할 때 대학교까지 1.5㎞를 걷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퇴근 후에 집에서 바로 나가면 양산천이 잘 가꿔져 있어요. 양산타워에 혼자 올라가서 차 한잔 하죠.”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합니까.
“남들이 저보고 ‘활자 중독’이라고 합니다. 갤럭시 탭에 책을 스캔한 콘텐츠를 1000권 정도 저장해서 갖고 다녀요. 아무 곳에서나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
▷산책이 건강에 좋죠.
“원래 건강이라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의사인데도 건강에 신경을 안 씁니까.
“온통 여기저기서 건강을 얘기하는데 저는 건강에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건강지식을 많이 알아서인가요.
“의학은 수천년 동안 연구해온 걸 19세기 말에서 20세기까지 100년 동안 다 발전시켰을 정도로 엄청나죠. 20세기에 와서 평균 수명이 2~3배 늘어났는데 사람들은 모두 의학 덕분이라고 오해합니다.”
▷위생이 가장 큰 요인입니까.
“손을 잘 씻는 위생 덕도 있고요. 제가 어렸을 적엔 목욕은 명절 때나 했습니다. (웃음) 평균수명이 늘어난 영향은 위생과 영양이 거의 3분의 2 이상입니다. 의학이 기여한 바는 3분의 1쯤 될까요.”
▷아침 저녁에 샤워하는 것도 좋겠네요.
“샤워가 건강에 좋다고요? 그건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라고 봅니다.”
▷선생님은 매일 샤워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삼일에 한 번 정도 합니다. (하하) 냄새날 정도는 아니고요. 지나친 위생이 몸을 병들게 한다는 이론인 위생가설도 있거든요. (하하) 저는 수염도 잘 안 깎아요.”
▷흔히 거꾸로 생각하는데.
“면역력이 지나치게 강할 경우 외부 세균이나 박테리아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강하게 공격한다는 얘기입니다. 어려서부터 흙도 만지고 뒹굴면 우리 몸이 세균에 점점 적응하죠.”
▷강대강(强對强)이 됩니까.
“내 몸 밖에 사는 미생물도 친구거든요.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세균의 수가 몸 세포(60조개)보다 10배나 많습니다.”
▷샤워를 안 하면 600조개에 달하는 세균이랑 같이 사는 셈이네요.
“같이 사는 거죠. 샤워하면 떨어져 나갔다가 또다시 붙어요. (웃음)”
▷암 세포도 마찬가지입니까.
“암 세포의 경우는 다를 겁니다. 통제받아야 하는데 통제받지 않고 무조건 증식하는 거잖아요.”
▷건강의 개념을 바꿔야 하나요.
“진시황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갈구한 무병장수나 영생은 이상적인 말이죠. 그건 무망(無望)한 겁니다. 만약 그 일이 벌어진다면 재앙이죠. (웃음) 원래 치료(heal)와 전체(whole)가 합쳐져서 헬스(health)가 생겼죠. 어원을 보더라도 지금 건강 개념하고 달라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체·심리·사회적인 안녕 상태를 건강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걸 목표로 삼지 말고 과정으로 봐야죠.”
▷무슨 뜻입니까.
“우리말의 건강(健康)이라는 말 자체가 100년쯤 전에 만들어졌어요. 동아시아에선 미병(未病)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아직 병이 아닌 상태죠. 미사(未死)가 아직 안 죽은 상태라면 미병은 병이 나지 않은 상태죠. 극단적인 암의 경우는 피하는 게 좋지만 언젠가 걸리는 병은 그냥 받아들이자고요. 저는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몇 년 전부터 안 해요. 불가능하거든요. 누구나 조그만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은 완벽하지 않나요.
“완벽한 몸이나 건강한 몸이란 없습니다. 지금 보디빌딩하면 건강한 건가요? 조금 나아지는 거지요. 연예인들이 TV에 나와서 심장 나이가 몇 살이냐고 검사 결과를 말하는데, 실제로 그런 게 어딨습니까. 우리가 뭐 기계인가요. 우리는 암암리에 몸을 기계로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기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죠.”
▷사람은 왜 아픈가요.
“(반문하며) 왜 아프지 않아야 하죠? 아프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가치가 내재된 겁니다.”
▷아프면 주변 사람도 고통스럽잖아요.
“그 질문은 인간 중심적인 질문입니다. 자연의 입장에선 아무 의미가 없어요.”
▷왜 의미가 없습니까.
“자연은 인간이 아프고, 안 아프고에 관심이 없어요. (웃음) 아픈 것도 우주가 돌아가는 작동 원리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픔이란 게 생긴 이유는 아픔을 유도하는 행동을 피하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죠.
“예컨대 어린애가 난로에 손을 대서 뜨거우면 다시는 안 대잖아요. 아픔은 대개 신체를 해하는 물리적 자극과 함께 오니까 그걸 피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라는 겁니다.”
▷본인이 못 느끼는 아픔도 있는데.
“못 느끼는 경우가 많죠. 통증은 기본적으로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지 완벽한 몸이 고장 나서 아픈 게 아닙니다.”
▷디자인의 의미는.
“창조주가 만든 게 아니고, 진화론적으로 디자인됐는데 우리 몸은 누더기 같은 거라는 겁니다. 필요할 때마다 갖다 붙이다 보니까 완벽할 수 없죠.”
▷몸은 자연선택이 진행 중인가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은 계속되고 있죠. 우리 몸은 수만년 전 수렵 채취 원시시대에 적응한 것인데 실제 생활은 21세기 문명생활을 하고 있으니 미스매치되는 게 많습니다. 인간은 비타민C를 못 만들어서 먹어야 하거든요. 원시시대에는 열매를 여기저기서 따먹으니까 비타민C가 풍부했죠. 그런 상태에서 우리 몸이 진화했기 때문에 굳이 비타민C를 몸 안에서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아픈 건 싫어하죠.
“아픈 걸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다른 사람이 아프면 어떤가요.
“네덜란드의 영장류 동물원에서 침팬지와 비슷하고 인간과 가까운 보노보를 관찰했습니다. 두 발로 걷는 시간이 길고, 발정기가 따로 없죠. 호전적인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는 다른 개체를 ‘왕따’시키지 않는다고 해요. 싸울 일이 있으면 섹스부터 하고요.”
▷섹스 하면 옥시토신 호르몬이 나와서인가요.
“(웃음) 그러니까요. 평생 개미를 연구한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과 동물 같은 자연계 개체들은 이기적 행동과 협동을 같이 한다고 했습니다. 인비저블 핸드(invisible hand·보이지 않는 손)만 있는 게 아니라 인비저블 핸드셰이크(invisible handshake·안 보이는 악수)도 있다는 거죠.”
▷의철학은 왜 필요한가요.
“저는 실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의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사실은 학생들한테도 이 질문에 답해주기가 힘들어요.”
▷사람의 몸은 무엇입니까.
“몸은 나죠, 뭐.”
▷나는 뭔가요.
“글쎄요. 제 얘기가 아니라 현상학 쪽 철학자들이 한 얘기인데 ‘몸은 나고, 나는 몸이다’라는 거죠. 쪼개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인식이 합쳐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의학적인 사실을 발견하려면 분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삶의 몸은 앎입니다.”
▷몸의 역사는.
“시간적인 단위로 보면 진화, 역사, 생애 등 세 가지가 있죠. 첫째 진화는 인간 이전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걸 담았죠. 둘째 역사는 기록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죠. 이집트 시대의 미라,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의 유골을 보면 그들이 어떻게 살았을까를 추론할 수 있죠. 셋째 사람의 생애는 100년쯤 되는데, 생애가 짧은 초파리 같은 동물의 생애를 보고 추론 분석하죠.”
▷인간 질병과 치료의 역사는.
“수렵 채취 시대엔 맹수한테 물리거나 나무에서 떨어져서 외상이 많았겠죠. 수명이 짧아서 지금과 같은 당뇨 대장암 같은 내과 질병은 없었을 겁니다. 전염병들은 있었겠죠. 지금도 아프리카에선 야생동물이 유행병으로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질병이 언제부터 늘었나요.
“수렵 채취 시대엔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에서 먹어서 청소할 필요가 없었죠. 모여 살면서부터 쓰레기가 쌓여서 쥐나 해충이 들끓어 전염병이 생겼습니다. 산업혁명기엔 주거 상태가 안 좋아서 폐결핵이 많았죠. 지금처럼 건강한 때가 전무했죠.”
▷모여 살면 병 생기는데 왜 오래 살게 됐나요.
“인구 전체로 보면 약한 사람은 다 죽어요. 견딜 수 있는 사람만 살아남죠.”
▷1910년대는 우리 평균수명이 35세였는데.
“100년 동안 지금의 평균수명인 남자 77세, 여자 84세로 늘어난 요인은 경제적인 성장 말고는 달리 설명할 게 없어요.”
▷소득 얼마까지가 평균수명에 비례합니까.
“몇 년 전엔 1인당 5000달러로 봤는데 요즘은 1만달러까지는 비례해요. 쿠바는 특이하게 1000달러인데도 평균수명이 길고요.” 200년전만 해도 서양의학도 한의학처럼 진맥하고 생약재 썼죠
강신익 교수는 영국에서 동서양 의학 체계와 관점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공부해 보니 동서양 의학이 어떤가요.
“양의학을 공부했지만 한의학의 사유 양식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동양의학을 보충 내지 융합하기 위해서죠.”
▷구체적으로.
“서양의학은 데카르트 이후 기계론, 즉 모든 것을 잘게 쪼개서 분석하는 환원주의에 치우쳤습니다. 특히 심신이원론에 근거해서 정신을 따로 떼어 놓고 신체 장기의 조직을 분석했어요. 반면 동양의학은 신체조직 간의 연결 기능을 중시했죠.”
▷공통점은 없나요.
“2500년 전쯤에 그리스하고 중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어요. 기본이론 구조가 비슷합니다. 서양은 물 불 흙 공기 등 4개 원소를 중요시했죠. 동양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5개를 중심으로 음양오행설을 내세웠습니다. 200년 전만 해도 서양도 진맥하고 생약재를 썼죠.”
▷차이점은.
“서양은 4개라서 조화 구조상 건강 건습 한열만 갖고 설명하느라 관계가 많지 않아요. 반면 동양은 5개로 별을 그리면 상생 상극 등 연관관계가 아주 많이 나옵니다. 상상력을 발휘할 소지가 많지요. 근대의 눈으로 보면 동양과 서양 모두 상상력에 근거한 실체가 없는 형이상학적인 추론이죠. 추론이 다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서양의학의 부작용은.
“서양에서는 4개 원소설 중 지나치게 한 가지를 강조해서 피를 뽑아내는 방혈(또는 사혈)이 광범위하게 행해지죠. 그게 큰 피해로 나타납니다. 이론 근거는 열이 많이 나면 그 피가 많기 때문이라며 부위의 피를 뽑아서 열을 내려야 한다는 거였죠.”
▷서양에서는 소독제와 페니실린을 개발했는데 동양은 왜 기존 치료법을 고집했나요.
“안타깝죠. 한의학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한약 효과는 결정적으로 비방주의예요.”
▷한의학에서 배울 점은.
“다양한 기능의 조화, 즉 전체를 보는 사유의 양식이죠.”
▷한의학 효능을 인정하는 게 아니고 철학을 배우자는 겁니까.
“그렇죠. 효능은 제가 잘 모르니까요. 동서양을 합친 의학이 필요합니다.”
■ 강신익 교수는…
1957년 경기 안양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 치과대를 나와 인제대에서 의학박사 취득. 치과의사로 일하다 마흔 살에 영국에서 인문의학으로 석사학위. 의학과 관련된 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장을 거쳐 현재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료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몸의 역사·몸의 문화’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Philosophy for Medicine’(공저) 등의 책을 썼다. 현재 한국의철학회장.
정구학 편집국 부국장 cgh@hankyung.com
▷남산 야외식물원 멋있죠.
“참 좋네요. 언제 이렇게 조성했나요.”
▷오세훈 서울시장 때 해놨어요.
“저도 부산대 치대가 있는 양산에서 객지 생활을 하는데 지방에도 멋진 데가 많아요. 지방자치제를 해서 그런지 도서관도 잘 돼 있습니다.”
▷이런 공원이 건강에 도움을 줍니까.
“큰 도움을 줍니다.”
▷얼마나 자주 걷나요.
“오전 6시에 일어나 출근할 때 대학교까지 1.5㎞를 걷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퇴근 후에 집에서 바로 나가면 양산천이 잘 가꿔져 있어요. 양산타워에 혼자 올라가서 차 한잔 하죠.”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합니까.
“남들이 저보고 ‘활자 중독’이라고 합니다. 갤럭시 탭에 책을 스캔한 콘텐츠를 1000권 정도 저장해서 갖고 다녀요. 아무 곳에서나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
▷산책이 건강에 좋죠.
“원래 건강이라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의사인데도 건강에 신경을 안 씁니까.
“온통 여기저기서 건강을 얘기하는데 저는 건강에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건강지식을 많이 알아서인가요.
“의학은 수천년 동안 연구해온 걸 19세기 말에서 20세기까지 100년 동안 다 발전시켰을 정도로 엄청나죠. 20세기에 와서 평균 수명이 2~3배 늘어났는데 사람들은 모두 의학 덕분이라고 오해합니다.”
▷위생이 가장 큰 요인입니까.
“손을 잘 씻는 위생 덕도 있고요. 제가 어렸을 적엔 목욕은 명절 때나 했습니다. (웃음) 평균수명이 늘어난 영향은 위생과 영양이 거의 3분의 2 이상입니다. 의학이 기여한 바는 3분의 1쯤 될까요.”
▷아침 저녁에 샤워하는 것도 좋겠네요.
“샤워가 건강에 좋다고요? 그건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라고 봅니다.”
▷선생님은 매일 샤워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삼일에 한 번 정도 합니다. (하하) 냄새날 정도는 아니고요. 지나친 위생이 몸을 병들게 한다는 이론인 위생가설도 있거든요. (하하) 저는 수염도 잘 안 깎아요.”
▷흔히 거꾸로 생각하는데.
“면역력이 지나치게 강할 경우 외부 세균이나 박테리아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강하게 공격한다는 얘기입니다. 어려서부터 흙도 만지고 뒹굴면 우리 몸이 세균에 점점 적응하죠.”
▷강대강(强對强)이 됩니까.
“내 몸 밖에 사는 미생물도 친구거든요.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세균의 수가 몸 세포(60조개)보다 10배나 많습니다.”
▷샤워를 안 하면 600조개에 달하는 세균이랑 같이 사는 셈이네요.
“같이 사는 거죠. 샤워하면 떨어져 나갔다가 또다시 붙어요. (웃음)”
▷암 세포도 마찬가지입니까.
“암 세포의 경우는 다를 겁니다. 통제받아야 하는데 통제받지 않고 무조건 증식하는 거잖아요.”
▷건강의 개념을 바꿔야 하나요.
“진시황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갈구한 무병장수나 영생은 이상적인 말이죠. 그건 무망(無望)한 겁니다. 만약 그 일이 벌어진다면 재앙이죠. (웃음) 원래 치료(heal)와 전체(whole)가 합쳐져서 헬스(health)가 생겼죠. 어원을 보더라도 지금 건강 개념하고 달라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체·심리·사회적인 안녕 상태를 건강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걸 목표로 삼지 말고 과정으로 봐야죠.”
▷무슨 뜻입니까.
“우리말의 건강(健康)이라는 말 자체가 100년쯤 전에 만들어졌어요. 동아시아에선 미병(未病)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아직 병이 아닌 상태죠. 미사(未死)가 아직 안 죽은 상태라면 미병은 병이 나지 않은 상태죠. 극단적인 암의 경우는 피하는 게 좋지만 언젠가 걸리는 병은 그냥 받아들이자고요. 저는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몇 년 전부터 안 해요. 불가능하거든요. 누구나 조그만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은 완벽하지 않나요.
“완벽한 몸이나 건강한 몸이란 없습니다. 지금 보디빌딩하면 건강한 건가요? 조금 나아지는 거지요. 연예인들이 TV에 나와서 심장 나이가 몇 살이냐고 검사 결과를 말하는데, 실제로 그런 게 어딨습니까. 우리가 뭐 기계인가요. 우리는 암암리에 몸을 기계로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기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죠.”
▷사람은 왜 아픈가요.
“(반문하며) 왜 아프지 않아야 하죠? 아프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가치가 내재된 겁니다.”
▷아프면 주변 사람도 고통스럽잖아요.
“그 질문은 인간 중심적인 질문입니다. 자연의 입장에선 아무 의미가 없어요.”
▷왜 의미가 없습니까.
“자연은 인간이 아프고, 안 아프고에 관심이 없어요. (웃음) 아픈 것도 우주가 돌아가는 작동 원리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픔이란 게 생긴 이유는 아픔을 유도하는 행동을 피하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죠.
“예컨대 어린애가 난로에 손을 대서 뜨거우면 다시는 안 대잖아요. 아픔은 대개 신체를 해하는 물리적 자극과 함께 오니까 그걸 피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라는 겁니다.”
▷본인이 못 느끼는 아픔도 있는데.
“못 느끼는 경우가 많죠. 통증은 기본적으로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지 완벽한 몸이 고장 나서 아픈 게 아닙니다.”
▷디자인의 의미는.
“창조주가 만든 게 아니고, 진화론적으로 디자인됐는데 우리 몸은 누더기 같은 거라는 겁니다. 필요할 때마다 갖다 붙이다 보니까 완벽할 수 없죠.”
▷몸은 자연선택이 진행 중인가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은 계속되고 있죠. 우리 몸은 수만년 전 수렵 채취 원시시대에 적응한 것인데 실제 생활은 21세기 문명생활을 하고 있으니 미스매치되는 게 많습니다. 인간은 비타민C를 못 만들어서 먹어야 하거든요. 원시시대에는 열매를 여기저기서 따먹으니까 비타민C가 풍부했죠. 그런 상태에서 우리 몸이 진화했기 때문에 굳이 비타민C를 몸 안에서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아픈 건 싫어하죠.
“아픈 걸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다른 사람이 아프면 어떤가요.
“네덜란드의 영장류 동물원에서 침팬지와 비슷하고 인간과 가까운 보노보를 관찰했습니다. 두 발로 걷는 시간이 길고, 발정기가 따로 없죠. 호전적인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는 다른 개체를 ‘왕따’시키지 않는다고 해요. 싸울 일이 있으면 섹스부터 하고요.”
▷섹스 하면 옥시토신 호르몬이 나와서인가요.
“(웃음) 그러니까요. 평생 개미를 연구한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과 동물 같은 자연계 개체들은 이기적 행동과 협동을 같이 한다고 했습니다. 인비저블 핸드(invisible hand·보이지 않는 손)만 있는 게 아니라 인비저블 핸드셰이크(invisible handshake·안 보이는 악수)도 있다는 거죠.”
▷의철학은 왜 필요한가요.
“저는 실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의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사실은 학생들한테도 이 질문에 답해주기가 힘들어요.”
▷사람의 몸은 무엇입니까.
“몸은 나죠, 뭐.”
▷나는 뭔가요.
“글쎄요. 제 얘기가 아니라 현상학 쪽 철학자들이 한 얘기인데 ‘몸은 나고, 나는 몸이다’라는 거죠. 쪼개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인식이 합쳐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의학적인 사실을 발견하려면 분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삶의 몸은 앎입니다.”
▷몸의 역사는.
“시간적인 단위로 보면 진화, 역사, 생애 등 세 가지가 있죠. 첫째 진화는 인간 이전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걸 담았죠. 둘째 역사는 기록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죠. 이집트 시대의 미라,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의 유골을 보면 그들이 어떻게 살았을까를 추론할 수 있죠. 셋째 사람의 생애는 100년쯤 되는데, 생애가 짧은 초파리 같은 동물의 생애를 보고 추론 분석하죠.”
▷인간 질병과 치료의 역사는.
“수렵 채취 시대엔 맹수한테 물리거나 나무에서 떨어져서 외상이 많았겠죠. 수명이 짧아서 지금과 같은 당뇨 대장암 같은 내과 질병은 없었을 겁니다. 전염병들은 있었겠죠. 지금도 아프리카에선 야생동물이 유행병으로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질병이 언제부터 늘었나요.
“수렵 채취 시대엔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에서 먹어서 청소할 필요가 없었죠. 모여 살면서부터 쓰레기가 쌓여서 쥐나 해충이 들끓어 전염병이 생겼습니다. 산업혁명기엔 주거 상태가 안 좋아서 폐결핵이 많았죠. 지금처럼 건강한 때가 전무했죠.”
▷모여 살면 병 생기는데 왜 오래 살게 됐나요.
“인구 전체로 보면 약한 사람은 다 죽어요. 견딜 수 있는 사람만 살아남죠.”
▷1910년대는 우리 평균수명이 35세였는데.
“100년 동안 지금의 평균수명인 남자 77세, 여자 84세로 늘어난 요인은 경제적인 성장 말고는 달리 설명할 게 없어요.”
▷소득 얼마까지가 평균수명에 비례합니까.
“몇 년 전엔 1인당 5000달러로 봤는데 요즘은 1만달러까지는 비례해요. 쿠바는 특이하게 1000달러인데도 평균수명이 길고요.” 200년전만 해도 서양의학도 한의학처럼 진맥하고 생약재 썼죠
강신익 교수는 영국에서 동서양 의학 체계와 관점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공부해 보니 동서양 의학이 어떤가요.
“양의학을 공부했지만 한의학의 사유 양식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동양의학을 보충 내지 융합하기 위해서죠.”
▷구체적으로.
“서양의학은 데카르트 이후 기계론, 즉 모든 것을 잘게 쪼개서 분석하는 환원주의에 치우쳤습니다. 특히 심신이원론에 근거해서 정신을 따로 떼어 놓고 신체 장기의 조직을 분석했어요. 반면 동양의학은 신체조직 간의 연결 기능을 중시했죠.”
▷공통점은 없나요.
“2500년 전쯤에 그리스하고 중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어요. 기본이론 구조가 비슷합니다. 서양은 물 불 흙 공기 등 4개 원소를 중요시했죠. 동양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5개를 중심으로 음양오행설을 내세웠습니다. 200년 전만 해도 서양도 진맥하고 생약재를 썼죠.”
▷차이점은.
“서양은 4개라서 조화 구조상 건강 건습 한열만 갖고 설명하느라 관계가 많지 않아요. 반면 동양은 5개로 별을 그리면 상생 상극 등 연관관계가 아주 많이 나옵니다. 상상력을 발휘할 소지가 많지요. 근대의 눈으로 보면 동양과 서양 모두 상상력에 근거한 실체가 없는 형이상학적인 추론이죠. 추론이 다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서양의학의 부작용은.
“서양에서는 4개 원소설 중 지나치게 한 가지를 강조해서 피를 뽑아내는 방혈(또는 사혈)이 광범위하게 행해지죠. 그게 큰 피해로 나타납니다. 이론 근거는 열이 많이 나면 그 피가 많기 때문이라며 부위의 피를 뽑아서 열을 내려야 한다는 거였죠.”
▷서양에서는 소독제와 페니실린을 개발했는데 동양은 왜 기존 치료법을 고집했나요.
“안타깝죠. 한의학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한약 효과는 결정적으로 비방주의예요.”
▷한의학에서 배울 점은.
“다양한 기능의 조화, 즉 전체를 보는 사유의 양식이죠.”
▷한의학 효능을 인정하는 게 아니고 철학을 배우자는 겁니까.
“그렇죠. 효능은 제가 잘 모르니까요. 동서양을 합친 의학이 필요합니다.”
■ 강신익 교수는…
1957년 경기 안양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 치과대를 나와 인제대에서 의학박사 취득. 치과의사로 일하다 마흔 살에 영국에서 인문의학으로 석사학위. 의학과 관련된 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장을 거쳐 현재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료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몸의 역사·몸의 문화’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Philosophy for Medicine’(공저) 등의 책을 썼다. 현재 한국의철학회장.
정구학 편집국 부국장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