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마비 부른 금감원의 '오판'…비난여론 확산
지난 21일 밤 11시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11층. 마라톤 회의를 거듭하던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는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내분사태와 관련해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징계 수위가 같아야 한다는 결론을 먼저 냈다. 문제는 두 사람의 징계 수위였다. 사전통보된 ‘중징계’와 ‘경징계’ 감경 여부를 놓고 자정이 넘도록 격론을 벌였다.

결론은 중징계를 주도한 금감원 검사국의 ‘완패’였다. 제재심은 새벽 1시가 다 돼 주전산기 교체 내분사태와 관련해 법적 제재 근거가 약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제재심 관계자는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데는 공감했지만 중징계 조치를 내릴 만한 사안은 아니라는 데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22일 제재심 결론에 대한 브리핑을 할 계획이었지만 “할 말이 없다”며 갑자기 취소했다. 최수현 금감원장(사진)이 결재 과정에서 제재심의 감경 결정을 거부하고 원안대로 중징계 조치를 내릴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지금까지 전례도 없다.

금감원이 ‘헛발질’을 한 꼴이 되자 금융권 안팎에선 비판 여론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무리한 제재’를 추진해 KB금융과 금융권 전체에 혼란만 부추겼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의 무리한 ‘군기 잡기’로 수개월간 금융회사의 영업과 투자, 인사 업무가 마비된 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느냐”고 되물었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책임을 놓고 ‘핑퐁 게임’을 벌이며 내분 직전 양상이다. 금감원의 한 임원은 “역풍이 확산되면 금감원의 ‘힘’을 더 빼야 한다는 말이 나올 텐데…”라며 말 끝을 흐렸다. “법과 원칙에 따라 중징계가 불가피하다”고 공언해 온 최 원장이 직접 나서 해명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제재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금융연구센터는 금감원 자문기구인 현행 제재심을 폐지하고 독립된 별도의 제재기구를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금융사에 대한 검사조치서를 공개해 검사·제재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 검사 및 제재 시스템을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바꾸기 위한 대책을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