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와 한국인 메이저 최다승 '어깨 나란히'
연장접전 끝에 40야드 더 나간 린시컴 꺾어
박인비는 18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피츠퍼드의 먼로GC(파72·6717야드)에서 열린 웨그먼스LPGA챔피언십 마지막날 2타를 줄여 최종합계 11언더파 277타로 브리트니 린시컴(미국)과 동타를 이룬 뒤 연장 첫 번째 홀에서 파를 기록, 2년 연속 우승컵을 차지했다. 박인비는 이 대회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회 연속 우승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이후 9년 만에 타이틀을 방어한 선수로 기록됐다. 시즌 2승(통산 11승)째며 우승상금은 33만7500달러.
◆박세리를 넘어 새로운 전설로
박인비는 이미 박세리가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상금왕을 2연패(2012, 2013년)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 최초의 올해의 선수상(2013년)까지 수상해 박세리를 능가하는 신화를 작성했다. 박세리의 기록 가운데 박인비가 깨지 못한 것은 투어 최다승과 명예의 전당 멤버 가입뿐이다.
박인비는 현재 11승으로 박세리의 25승에 14승이 모자란다. 박세리는 박인비와 비슷한 만 26세인 2003년까지 21승을 올렸다. 박세리는 이후 슬럼프가 찾아오며 하향세로 돌아서 지난 10년간 4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만 26세1개월5일인 박인비는 현재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어 앞으로 10년간 14승 이상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
박인비는 한국 선수 투어 최다승에서 신지애와 공동 2위가 됐다. 신지애가 올해부터 일본 투어에 전념하기로 해 박세리의 최다승 경신은 박인비의 몫이다.
◆막판 2개홀서 2타 차 뒤집어
이번 대회는 페어웨이가 넓어 장타자를 위한 코스였다. 박인비와 연장전을 벌인 린시컴은 장타 랭킹 3위(269.43야드)에 올라 그 덕을 톡톡히 봤다. 그러나 드라이버보다 퍼팅이 더 강했다.
400야드가 넘어 어려운 파4 두 개홀을 남겨두고 박인비는 2타 차로 뒤져 사실상 역전이 어려워 보였다. 박인비는 17번홀(파4)에서 3m 버디 퍼팅을 집어넣으며 뒷조의 린시컴에 1타 차로 따라붙었다. 18번홀(파4)에서 박인비의 두 번째 샷은 그린 오른쪽 러프에 빠졌다. 어프로치샷마저 짧아 사실상 우승은 린시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박인비는 ‘천금 같은’ 4m 파세이브 퍼팅을 성공시키며 꺼져가던 역전의 불씨를 되살렸다.
장타자 린시컴은 막판 중압감에 흔들렸다. 린시컴은 18번홀 그린 에지 약 10m 거리에서 2퍼트만 하면 우승이었으나 첫 퍼트가 홀에서 2.4m가량 못 미쳤고 파 퍼트도 놓치며 연장을 허용했다.
18번홀에서 치른 연장 첫 번째 홀에서 박인비는 203야드 지점에서 우드샷이 그린을 살짝 오버해 러프로 갔다. 티샷이 40야드 더 나간 린시컴은 164야드를 남겨두고 아이언을 쳤으나 훅이 나며 그린 왼쪽 프린지에 멈췄다.
김미현 J골프 해설위원은 “린시컴은 긴장하면 당기는 습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인비는 침착하게 홀 1m 옆으로 보내 파세이브를 했으나 린시컴은 웨지로 공략한 공이 홀을 1.8m가량 지나쳤고 파세이브 퍼팅이 홀을 외면하면서 무릎을 꿇었다. 김 해설위원은 “린시컴이 그린 프린지에서 퍼터를 사용할 줄 알았다”며 “그러나 18번홀에서 퍼팅이 짧았던 린시컴이 웨지를 선택하면서 실수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퍼팅으로 ‘침묵의 암살’
‘침묵의 암살자’라는 표현처럼 박인비는 조용하게 상대방을 무너뜨렸다. 박인비는 경기 후 “연장전을 자주 치르다보니 익숙해져 마음이 편했다”며 “3라운드 경기를 하는 것처럼 하나도 긴장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린시컴은 “난 낙엽처럼 흔들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박인비는 지난 6월 매뉴라이프파이낸셜클래식에서도 마지막날 10언더파 61타를 몰아쳐 크리스티 커(미국)에 역전한 데 이어 또 역전극을 펼쳤다. 2승을 모두 미국 선수 상대로 거둬 올 시즌 강세를 보이는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 다시 도전
박인비는 이번 우승으로 시즌상금 141만6814달러가 돼 3위로 올라서며 남은 12개 대회에서 상금왕 3연패에 도전할 발판을 마련했다. 현재 상금 랭킹 1위는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로 203만1832달러다. 아울러 올해의 선수상도 160포인트로 1위 루이스에 40포인트 차로 따라붙어 2년 연속 올해의 선수상 수상도 노리게 됐다.
세계랭킹 2위로 도약한 박인비는 다음달 다섯 번째 메이저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생애 통산 4대 메이저 우승)에 재도전한다.
리디아 고(뉴질랜드)는 막판 17, 18번홀에서 연속 보기를 하며 합계 8언더파 3위에 그쳤다. 지난주 우승자 이미림(24·우리투자증권)은 합계 공동 6위에 올랐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