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의 데자뷔인가.’(파이낸셜타임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시장과 함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구조화 금융시장이 올 들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부채담보부증권(CDO)과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등 전통적인 구조화 채권 발행 규모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2000억달러(약 204조3400억원)를 다시 넘어설 전망이다. 형태도 다양해져 기존 구조를 응용한 신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가 내달 발행 예정인 새로운 구조화 채권 수요 조사에는 이미 13억3500만달러의 투자자금이 몰렸다. 골드만삭스는 추가로 최대 133억5000만달러의 구조화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지난달 판매한 80억달러 규모의 주택담보채권유동화증권(MBS)도 예상보다 많은 기관투자가가 몰려 매진됐다. 마켓워치는 “선진국의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 MBS 가격이 크게 하락할 위험이 있는데도 시장 유동성이 과열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금융리포트] 투기적 금융상품 다시 과열…"시장수요 부응" vs "월가의 탐욕"
○올 들어 급성장

미 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SIFMA)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글로벌 CDO 발행 규모는 650억달러(약 66조9044억원)로 집계됐다. 블룸버그는 지금 추세라면 연말까지 1000억달러 이상의 CDO가 발행될 것으로 전망했다. 2007년 이후 최대 규모다. CLO는 미국에서만 상반기에 632억달러가 발행됐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0% 이상 증가했다.

CDO와 CLO는 MBS와 함께 금융위기 전에 가장 성행했던 구조화 채권이다. 구조화 채권이란 채권과 파생상품이 결합된 상품이다. 원금과 이자가 금리 주식 통화 등 다양한 기초자산에 연동돼 결정된다.

구조화 채권은 1970년대 등장해 1990년대부터 인기를 끌었다. 저금리 추세가 나타나면서 플레인 바닐라 채권(단순한 기본형 구조의 상품)의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시장 유동성이 풍부했던 2006~2007년은 구조화 금융시장의 전성기였다. 글로벌 IB들은 대출채권 등 다양한 기초자산을 유동화해 유통시켰다. 이런 구조화 채권은 금융위기의 전조가 된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심화시킨 원인이 됐다. 당시 구조화 채권을 대거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거둔 IB들은 MBS에 악성 주택담보대출이 상당수 포함된 것을 알면서도 버젓이 투자자들에게 팔았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았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급격하게 위축됐던 구조화 금융시장이 올 들어 다시 과열되고 있는 건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진 결과다. 저금리 상황이 길어지면서 투자자들은 연 2%대 초·중반의 미 국채수익률(10년 만기 기준)에 만족할 수 없게 됐다. 소시에테제네랄은 “금융위기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재정위기 여파로 세계적으로 초우량 등급 채권이 부족해졌다”며 “고수익에 목마른 투자자들에게 구조화를 통해 신용등급과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융상품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유동화할 수 있는 기초자산도 많아졌다. 사업 영역을 확대하려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인수합병(M&A)이 늘었기 때문이다. 상반기 글로벌 M&A 규모는 작년 동기 대비 75% 증가한 1조7000억달러다. 이 과정에서 자금동원 능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앞다퉈 차입대출(레버리지론)을 활용했다.

○‘투자 거품 조장’ 우려

최근 미국과 유럽 기관투자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새로운 구조화 상품은 골드만삭스가 내달 발행하는 복합 구조화 채권이다. CDO 등의 구조를 응용한 상품이다. MBS나 회사채 등에서 나오는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투자자들에게 원리금을 지급한다는 점에서는 CDO와 비슷하지만 골드만삭스와 미쓰이스미토모보험이 지급 보증을 해 안전장치를 추가했다는 점에서 기존 구조화 채권과 다르다.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5~7년 만기에 금리는 연 3% 안팎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골드만삭스의 지급 보증이라는 안전장치를 감안해 이 구조화 채권에 최고등급인 ‘AAA’를 줬다. 앤드루 잭슨 케언캐피털 최고운용책임자(CIO)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실제로 특정 자산을 사지 않고도 그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누릴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며 “다른 AAA 채권에 비해 높은 금리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금융 중심지 월가에서는 이 같은 구조화 금융시장의 부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새로운 구조화 채권만 봐도 기초자산에 어떤 것이 포함되는지 투자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던 CDO의 선례를 따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또 다른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안전장치 수준이 미흡한 데다 전반적으로 투자 위험이 크다”며 “이 구조화 채권에 신용등급 AAA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월가 일각에서는 “IB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의 파생상품 판매에 몰두하면 또 한 차례 투자 거품이 조장될 수 있다”며 “고위험 구조화 금융시장이 다시 가파르게 커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라고 우려하고 있다.

■ 부채담보부증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회사채나 대출채권 등 기업 채무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유동화증권을 말한다. 금융회사는 채권 만기 이전에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신용위험을 투자자에게 전가할 수 신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은행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유동화증권을 말한다. 금융회사는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며, 부채가 많은 기업은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

■ 주택담보채권유동화증권(MBS)

mortgage backed securities. 금융회사가 주택을 담보로 장기 대출을 해준 주택담보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유동화증권을 말한다. 예컨대 A은행이 B에게 주택을 담보로 1억원을 대출해주고 B는 20년에 걸쳐 원리금을 갚기로 했다. 이때 A은행은 담보로 잡은 주택과 주택담보채권을 근거로 증권을 발행해 투자자에게 직접 매각하거나,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증권을 발행해 투자자에게 팔아 대출자금을 미리 회수할 수 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