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티롤과 돌로미테 트레킹
여름 휴가로 알프스 산맥 쪽 티롤과 돌로미테 트레킹을 다녀왔다. 닷새 연속 다섯 시간 안팎 산행을 하는 ‘극기훈련’ 수준이라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제주도에 가서 한라산 등정 9시간을 포함해 사흘 동안 다섯 시간 이상 걷는 훈련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여행사 프로그램이 그렇게 돼 있는 것일 뿐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곳임을 알게 됐다. 첫째날, 악천후 속에 비옷을 입고도 신발까지 폭삭 젖어가며 올라간 산은 알고 보니 정상까지 등산전철이 있었다. 악천후에 모두 손을 들었기 때문에 하산길은 이걸 타고 내려왔다. 다음날 디즈니 로고에 나오는 성의 모델로 알려진 노이슈반스타인성의 뒷산에 올라가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왔는데, 사실 케이블카가 있었다.

셋째날은 더 가관이었다. 1740m의 역에서 5분도 안 걸려 2840m로 올려주는 지하철을 타고 올라가, 다시 케이블카로 3440m의 정상 부분까지 올라갔다. 산행은 1100m가량을 내려오는 것이었는데 빙하지대 등을 두 시간 내려가다 2759m 지점까지 다시 올라가 점심을 먹고 내려오는 코스였다.

넷째날 이탈리아 돌로미테 지역에서는 해발 2168m 산장까지 차로 올라간 후 2100m가량 고원 풀밭을 줄곧 걸어간 뒤 점심을 먹었다. 마지막날은 알프스의 유명한 봉우리인 트레치메를 크게 원으로 돌면서 2344m의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중간에 200m를 올라가는 부분이 있었지만 큰 무리는 없었다.

알프스 지역은 케이블카와 스키 리프트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물론 여름에는 일부만 운영하지만, 산장이 곳곳에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명색이 관광객 유치를 꿈꾸면서 먹을 것, 마실 것을 다 짊어지고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1200m를 걸어서 올라가라고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국민이 수두룩한 나라에서 산장이 이렇게 없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늙으면 이 나라를 떠나라는 얘긴가.

박병원 < 은행연합회장 bahk0924@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