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생일 파티를 하루 앞두고 양로원에서 도망친 스웨덴 노인. ‘이제 그만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다니던 그가 삶의 연장전을 즐기기로 결심한 순간, 세상은 유쾌한 놀이터로 변한다. 버스 터미널에서 우연히 돈가방을 손에 넣고 갱단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는 과정에서 그는 현대사 100년의 대사건 주인공들과 얽힌다. 6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는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얘기다.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청년 같은 100세가 수두룩하다. 101세에 농사일을 하며 장작까지 패는 김복성 할아버지, 103세에도 팔굽혀펴기를 거뜬히 해내는 대만의 최이 할아버지, 몇 달 전 116회 생일상을 받은 기네스북 최고령자 일본의 미사오 할머니…. 안전행정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거주불명 등록인구 포함)에 따르면 한국의 100세 이상 노인은 지난달 말 1만4592명에 이른다. 2008년 2335명에서 2010년 1만1130명으로 급증한 뒤 지난해 1만3793명으로 늘었다고 했는데 올 들어서도 799명이 더 늘었다.

이들의 표정과 성격은 대부분 밝고 긍정적이다. 독일 사진작가가 촬영한 100세 노인들이 생각보다 쪼글쪼글하지 않고 선한 외모를 가진 것과 상통한다. 통계청이 100세 이상 노인 159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소식(54.4%)과 낙천적인 성격(31%)이 장수비결로 나타났다. 103세 한윤하 할아버지가 “누굴 미워하거나 화를 내면 병난다”며 “고마워요, 미안해요를 많이 사용하라”고 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머리 기른 원숭이》의 영국 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알려주는 100세 장수인의 특성은 ‘부드러운 운동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성정이 평온하면서도 활달하다’ ‘과거에 젖지 않는다’ ‘작은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고기와 야채가 섞인 음식을 먹고 적당량의 술을 즐긴다’ ‘규칙적인 일상을 누린다’ ‘유머 감각을 잊지 않는다’의 일곱 가지다.

굳이 농촌이나 산골로 들어가 헨리 소로를 흉내 내지 않아도 건강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100세 이상 노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 서울(4522명)인 것만 봐도 그렇다. 전국(1만4592명)의 30%이니 인구 비중(20%)보다 10%포인트나 높다. 그 다음은 부산이다. 서울 중에서는 은평구(325명)가 가장 많다. 이어 성북(257명), 용산(242명), 영등포(238명) 순이다. 대부분이 강북권이다. 이래저래 사는 곳은 문제가 안된다는 얘기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