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듯한 건물도, 커리큘럼도 없는데…'창업 요람' 문래동, 매년 10~20개 강소기업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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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훈의 현장 속으로
다양한 기계·금속 공장 밀집…여러 기술 다 배울 수 있어
창업자들, 반월·시화 등 주변지역에서 맹활약
요즘은 젊은층 줄어 고민
다양한 기계·금속 공장 밀집…여러 기술 다 배울 수 있어
창업자들, 반월·시화 등 주변지역에서 맹활약
요즘은 젊은층 줄어 고민
독일 뮌헨에 있는 MAN은 업력 250년이 넘는 회사로 ‘디젤엔진의 원조’로 불린다. 트럭이나 버스 선박 등에 들어가는 디젤엔진을 만든다. 품질 기준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이 회사에 선박 발전기용 디젤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충남 공주 삼영기계의 설립자 한금태 사장(73)은 서울 문래동에서 창업의 꿈을 키웠다. 한 사장은 한양대 공대에 입학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한 학기만 마치고 중퇴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문래동 중소기업에서 일했고, 1975년 삼영기계를 창업했다. 한 사장은 “선반과 밀링 드릴 프레스 등 기계 작업과 금속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문래동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기계·금속기업 창업의 요람
번듯한 건물은커녕 소규모 공장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문래동은 기계·금속기업 창업의 요람이다. 이곳 출신들이 창업하는 기업이 매년 10~20개에 이른다.
문래동에서 출발한 대표적 기업으로는 삼영기계 현대호이스트 대양롤랜트 대한정공 상익엔지니어링 등을 꼽을 수 있다. 충남 당진에 3만3000㎡(1만평) 규모의 공장을 두고 있는 현대호이스트의 송근상 사장(58)은 10대 때 상경해 문래동 공장에서 먹고 자면서 기술을 배웠다. 선반 밀링 드릴 용접 기술을 익혔고 20대 초반에 공장장을 맡았다. 송 사장은 “문래동에 있는 금속가공업체마다 무거운 쇠를 나르는 호이스트가 설치돼 있는 것을 보고 ‘앞으로 호이스트 분야가 유망하겠구나’라고 생각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화멀티테크노밸리에 있는 대양롤랜트의 나복남 사장(61)은 영등포시장에서 기계부품 유통을 하다가 37세에 문래동에서 대양롤랜트를 창업했다. 20㎡짜리 월세 공장이 그의 창업보금자리였다. 나 사장은 “문래동의 작업환경은 열악했지만 각종 부품을 구하거나 기술을 배우는 데는 최고의 입지”라고 평가했다.
부천몰드밸리에 있는 상익엔지니어링의 윤진한 사장(56)도 10대 후반부터 문래동에서 금형기술을 배웠다. 정밀금형을 만드는 이 회사는 독일 자동차업체인 BMW에 금형을 납품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산업용 나이프를 만들어 10여개국에 수출하는 경기 파주 대한정공의 심면섭 사장(53)도 문래동 출신이다. 지금도 자택은 문래동에 있다.
이 밖에 시화산업단지에 자리 잡은 스틸랜드 및 당진 철강단지 내 많은 중소기업인이 문래동에서 창업의 꿈을 키웠다.
○기술·인력·원자재·시장 갖춰
서울 문래동은 일제시대 때부터 영세한 기계·소재 공장이 몰려있던 곳이다. 서울 청계천 재개발로 이곳에 있던 공장들이 1980년대 문래동으로 들어오면서 급팽창했다. 공장 터가 부족해 일반 가정집에까지 공장이 밀고 들어왔다. 선반가공부터 밀링 프레스 금형 표면처리 용접 등 거의 모든 금속가공 분야 기업이 이곳에 들어섰다. 여러 기술을 익히는 데 좋은 환경이 됐다.
서울에 있어 일할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장점이다. 인근 양평동에서 태어나 문래동에서 30년 가까이 소방기기부품 등을 만들어 온 엄봉남 삼진정공 사장(58)은 “요즘은 금속가공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적지만 예전에는 매우 많았다”고 말했다.
원자재 조달이 편리한 것도 강점이다. 인근에 파이프 환봉 강판 등을 취급하는 철강자재 유통업체 수백 곳이 널려 있다. 차로 10분만 가면 구로기계공구상가에 닿는다. 이곳에는 1700여 업체가 모터 기어 공구 볼트 너트 펌프 전기부품 유공압기계 공작기계 등 5만여종의 제품을 판다.
수요처도 가까운 곳에 있다. 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주안 가좌 남동 반월 시화산업단지가 있다. 반월(7076개), 시화(1만151개), 남동(6918개) 3개 공단에만 2만4000개가 넘는 기업이 입주해 있다.
곽의택 한국소공인진흥협회 회장은 “제조업 창업을 하려면 기술과 인력, 원자재, 시장 등 4개 요소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문래동은 이런 면에서 최적”이라고 말했다.
○노령화 문제로 고민
요즘 문래동은 예전에 비해 활기가 많이 떨어졌다. 유태호 일성정밀 사장(60)은 “요즘 문래동에서 30대 기능인력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노령화됐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시설이 낡았고 젊은이들의 취업 눈높이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금속가공 기술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나만의 특화된 제품’ 개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도 부담이다.
곽의택 회장은 “문래동에 있는 상당수 기업이 자기 분야에서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시스템에 익숙해 있다 보니 차세대 먹거리 사업을 개발하는 데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래동이 앞으로도 경쟁력을 가지려면 지금처럼 임가공만 해서는 곤란하고 협업 시스템으로 ‘나만의 간판 제품’을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이 회사에 선박 발전기용 디젤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충남 공주 삼영기계의 설립자 한금태 사장(73)은 서울 문래동에서 창업의 꿈을 키웠다. 한 사장은 한양대 공대에 입학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한 학기만 마치고 중퇴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문래동 중소기업에서 일했고, 1975년 삼영기계를 창업했다. 한 사장은 “선반과 밀링 드릴 프레스 등 기계 작업과 금속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문래동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기계·금속기업 창업의 요람
번듯한 건물은커녕 소규모 공장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문래동은 기계·금속기업 창업의 요람이다. 이곳 출신들이 창업하는 기업이 매년 10~20개에 이른다.
문래동에서 출발한 대표적 기업으로는 삼영기계 현대호이스트 대양롤랜트 대한정공 상익엔지니어링 등을 꼽을 수 있다. 충남 당진에 3만3000㎡(1만평) 규모의 공장을 두고 있는 현대호이스트의 송근상 사장(58)은 10대 때 상경해 문래동 공장에서 먹고 자면서 기술을 배웠다. 선반 밀링 드릴 용접 기술을 익혔고 20대 초반에 공장장을 맡았다. 송 사장은 “문래동에 있는 금속가공업체마다 무거운 쇠를 나르는 호이스트가 설치돼 있는 것을 보고 ‘앞으로 호이스트 분야가 유망하겠구나’라고 생각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화멀티테크노밸리에 있는 대양롤랜트의 나복남 사장(61)은 영등포시장에서 기계부품 유통을 하다가 37세에 문래동에서 대양롤랜트를 창업했다. 20㎡짜리 월세 공장이 그의 창업보금자리였다. 나 사장은 “문래동의 작업환경은 열악했지만 각종 부품을 구하거나 기술을 배우는 데는 최고의 입지”라고 평가했다.
부천몰드밸리에 있는 상익엔지니어링의 윤진한 사장(56)도 10대 후반부터 문래동에서 금형기술을 배웠다. 정밀금형을 만드는 이 회사는 독일 자동차업체인 BMW에 금형을 납품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산업용 나이프를 만들어 10여개국에 수출하는 경기 파주 대한정공의 심면섭 사장(53)도 문래동 출신이다. 지금도 자택은 문래동에 있다.
이 밖에 시화산업단지에 자리 잡은 스틸랜드 및 당진 철강단지 내 많은 중소기업인이 문래동에서 창업의 꿈을 키웠다.
○기술·인력·원자재·시장 갖춰
서울 문래동은 일제시대 때부터 영세한 기계·소재 공장이 몰려있던 곳이다. 서울 청계천 재개발로 이곳에 있던 공장들이 1980년대 문래동으로 들어오면서 급팽창했다. 공장 터가 부족해 일반 가정집에까지 공장이 밀고 들어왔다. 선반가공부터 밀링 프레스 금형 표면처리 용접 등 거의 모든 금속가공 분야 기업이 이곳에 들어섰다. 여러 기술을 익히는 데 좋은 환경이 됐다.
서울에 있어 일할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장점이다. 인근 양평동에서 태어나 문래동에서 30년 가까이 소방기기부품 등을 만들어 온 엄봉남 삼진정공 사장(58)은 “요즘은 금속가공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적지만 예전에는 매우 많았다”고 말했다.
원자재 조달이 편리한 것도 강점이다. 인근에 파이프 환봉 강판 등을 취급하는 철강자재 유통업체 수백 곳이 널려 있다. 차로 10분만 가면 구로기계공구상가에 닿는다. 이곳에는 1700여 업체가 모터 기어 공구 볼트 너트 펌프 전기부품 유공압기계 공작기계 등 5만여종의 제품을 판다.
수요처도 가까운 곳에 있다. 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주안 가좌 남동 반월 시화산업단지가 있다. 반월(7076개), 시화(1만151개), 남동(6918개) 3개 공단에만 2만4000개가 넘는 기업이 입주해 있다.
곽의택 한국소공인진흥협회 회장은 “제조업 창업을 하려면 기술과 인력, 원자재, 시장 등 4개 요소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문래동은 이런 면에서 최적”이라고 말했다.
○노령화 문제로 고민
요즘 문래동은 예전에 비해 활기가 많이 떨어졌다. 유태호 일성정밀 사장(60)은 “요즘 문래동에서 30대 기능인력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노령화됐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시설이 낡았고 젊은이들의 취업 눈높이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금속가공 기술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나만의 특화된 제품’ 개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도 부담이다.
곽의택 회장은 “문래동에 있는 상당수 기업이 자기 분야에서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시스템에 익숙해 있다 보니 차세대 먹거리 사업을 개발하는 데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래동이 앞으로도 경쟁력을 가지려면 지금처럼 임가공만 해서는 곤란하고 협업 시스템으로 ‘나만의 간판 제품’을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