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수성이 창업보다 어려운 이유
한국 기업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크다. 최근 발표된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일제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엔저 속 원화 강세에 따른 영향도 있었다지만 믿음직한 ‘제조업 맏형’들의 체질이 약화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어떤 기업도 언제까지 쾌속 성장을 이어갈 순 없다. 기업도 사람이 하는 건데,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따르고 부침을 피할 수 없다. 이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관행이 문제다.

삼성전자가 작년 3분기 10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스마트폰 시장의 ‘빅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으로 선보인 지 7년여 만에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연간 350조원 규모로 급격히 팽창했다.

사업포착 능력이 삼성 경쟁력

삼성은 전례없는 산업변화의 물결에 기막히게 올라탔다. 그만큼 저력이 있었다. 운도 따랐다. 삼성 경영진은 플래시 메모리, 디스플레이(스크린), 중앙처리장치(CPU) 등을 애플에 납품하면서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를 간파했다.

하지만 해가 뜨면 어디론가 사라지는 아침 이슬처럼 신화가 오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웨이, 레노버, 샤오미 등 중국 전자업체들이 치고 들어오면서 삼성전자는 2분기 스마트폰 사업 부문(IM)에서만 2조원(작년 같은 기간 대비) 이상 이익이 급감했다. 시장이 정체되고 경쟁이 격화되면 수익 감소는 불가피하다. 애플처럼 왜 소비자를 ‘마니아’로 만들지 못했냐고 탓할 수 있다. 이치야 쉽지만 현실이 어디 그리 간단한가 말이다.

삼성의 진짜 경쟁력을 분기 이익으로만 따지면 결과론자들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또 다른 기회가 왔을 때 사업 기회를 낚아챌 수 있는가와 미래 신사업을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로 평가하는 게 옳다. 글로벌 경쟁업체에 비해 턱없이 짧은 업력에도 세계 자동차 4위를 넘보고 있는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시스템 경영과 젊은 리더십

‘캐시카우(확실한 돈벌이가 되는 상품)’를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인내하면서 치밀한 준비과정이 있어야 한다. 최근 미국 클리어에지파워를 인수해 건물용 연료전지 사업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두산은 신사업을 찾는 데 6년이 걸렸다고 한다.

SK의 하이닉스 인수도 최태원 회장이 벤처 투자 등 시행착오를 겪으며 미래 신사업 찾기에 골몰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최 회장은 새 사업 하나를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주위의 만류에도 뚝심있게 인수를 밀어붙였던 것이다.

미래 사업은 화폭에 전경을 담아내듯, 누가 붓을 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유능한 화가는 붓끝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경영을 예술에 비유하는 이유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할 때는 수성(守成)이 창업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궁예가 삼한 땅의 3분의 2를 장악하고도 실패한 데는 권력을 잡은 후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탓이 크다. 앞선 세대의 성공신화에 기죽지 말고 배포 있게 10년 후를 대비하는 젊은 리더십과 시스템 경영을 기대해본다.

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