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서점가에는 독한 제목의 자기계발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전문가로 성공하려면 1만시간을 투자하라는 ‘아웃라이어’에 이어 아예 ‘10년 법칙’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더 나아가 ‘미쳐야 산다’는 제목의 도발적인 책도 있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서점가 대세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며 독자를 위로하는 책이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던 자기암시의 효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한 보험회사 광고는 ‘미쳐야 산다’는 식의 자기계발서를 배경으로 “미치지 마세요”라며 대놓고 말한다. 가뜩이나 힘든데 미칠 필요까지 있냐면서 말이다.

한국 사회는 오랜 기간 ‘미치도록 열심히’를 금과옥조로 여겨왔다. 전쟁 후 폐허에서 사회를 재건한 대한민국은 성공신화에 특히 취약하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불굴의 의지와 초인적인 능력으로 폐허 속에서 성공을 일구어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이만큼 성장하지도 못했을 테니 일거에 폐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누구든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래서 이 사회는 여전히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이제는 한숨 돌리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성공에 대한 열망이 뜨거운 만큼 가난과 소외에 대한 냉랭한 태도는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난과 소외=게으름의 결과’라는 암시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상태를 게으른 자의 죗값이라고 본다.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다. 어찌 게으른 사람에게만 가난과 소외가 찾아오랴. 타고난 성격, 불의의 사고, 자연재해, 범죄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자세한 사정을 알려하지 않고 소외계층을 실패자 취급하는 것은 얄팍한 성과주의 논리에 세뇌된 결과다.

얄팍한 성과주의는 순수해야 할 젊은 세대마저 세속화시키고 기득권층처럼 서열화, 계급화에 동의하도록 조장한다. 한 언론사가 20년째 하고 있는 대학 평가 결과를 놓고 학생들은 자부심을 느끼거나 심리적 위축을 느낀다. 예전에도 이 사회가 대학의 서열을 논했지만 지금처럼 공개적이지는 않았다. 학생들도 이른바 우수 대학을 부러워했으나 ‘지잡대(지방대학을 비하하는 말)’라는 말로 다른 학교의 학생들을 비하하지는 않았다. 모 대학에서 지방캠퍼스 학생들을 커뮤니티에서 배제하려다가 논란이 일었다거나, 자기들끼리 ‘성골, 진골’로 학생들을 구분한다는 말도 나온다. 지나친 자기계발 열풍이나 서열화 경향은 이처럼 불필요한 교만과 자기비하, 갈등을 만들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사회적 약자에게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는 기업은 소비자의 격려와 주목을 받기도 한다. 탐스슈즈가 대표 사례다. 이 회사는 창업 이래 소비자가 신발을 한 켤레 구입하면 신발 한 켤레를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1 대 1 기부 공식을 유지하고 있다. 창업자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맨발의 어린아이들에게 신발을 선물하겠다며 기업을 시작했다. 신발이 한 켤레 팔릴 때마다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하는 정책은 파산을 향한 지름길로 보였다. 그런데 유명인들이 ‘소외계층을 돕는 의식 있는 소비자’가 되고자 앞다퉈 신발을 구매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탐스슈즈는 단지 생활용품이나 패션 아이템을 넘어 사회 참여의 상징이 된 것이다. 어쩌면 탐스슈즈의 본질은 신발 제조기업이 아닐 수도 있다. 가난하고 불쌍한 소외계층을 돕는 자선단체로서 기부자들에게도 기부액만큼 신발을 선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한국은 여전히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기부문화가 취약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해외 원조를 적게 하는 나라로 분류된다. 올해 초 방한한 프랑스 지식인 기 소르망은 한국의 대기업 오너가 감옥을 피하려고 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따뜻한 시선' 가진 기업이 그립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기부와 구제를 사명으로 여기는 기업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움직임에 동참할 만큼 성숙해졌다. 이 사회 구성원들은 이미 구속 위기에 처한 기업 대표의 일시적인 봉사활동 이면을 꿰뚫어볼 만큼 성숙하다. 조금은 비싸더라도 공정거래 기업의 커피를 사 마실 만큼 사회정의 구현에 관심이 많다. 소외계층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가진 기업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릴 것이다.

김용성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