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지의 ‘얼굴’격인 패션그룹형지의 2009년 매출은 2639억원이었다. 당시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362억원에 달했다. EBITDA는 영업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4년이 흐른 지난해 패션그룹형지의 매출은 4047억원으로 53% 불어났다. 그러나 EBITDA는 226억원으로 38%나 쪼그라들었다. 실속없이 외형만 커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인수합병(M&A)은 재무구조를 악화시켰다.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작년에만 동대문 바우하우스 빌딩을 사느라 777억원을 썼고, 인천 송도에 제2 본사 부지를 구입하느라 100억원가량을 투입했다. 그러다 보니 2009년 116억원이던 순차입금은 지난해 2199억원으로 4년 만에 19배나 불었다. 올 상반기에 270억원을 줄이긴 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1312억원)과 유동성장기부채(200억원)가 전체 빚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빚의 ‘질’도 나빠졌다.

현금흐름 역시 좋지 못하다. 지난해 패션그룹형지의 순영업활동현금흐름(NCF)은 -610억원. NCF는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얼마나 벌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자금사정이 나빠지자 패션그룹형지는 지분 100% 보유한 ‘유일주주’인 최병오 회장에게 매년 지급해온 배당금을 작년에는 주지 않았다.

강수호 상무는 “가을·겨울 옷 생산량을 대폭 줄이고 재고를 처분해 올해 1000억원 안팎의 단기차입금을 감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IB) 업계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유니클로 H&M 자라 등 해외 제조·직매형 의류(SPA·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형지가 움켜쥐고 있는 ‘중저가 옷 시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유니클로 한국판매법인인 FRL코리아의 지난 회계연도(2012년 9월~2013년 8월) 매출은 6940억원으로 1년 전(5049억원)보다 37% 늘었지만, 패션그룹형지는 4150억원에서 4047억원으로 뒷걸음질쳤다.

신사업도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2011년 아웃도어 브랜드인 ‘노스케이프’와 ‘와일드로즈’를 내놓았지만 노스페이스 K2 등의 벽을 넘기엔 역부족이다. 신규 진출한 유통업 역시 롯데 신세계 현대 이랜드 등 ‘유통공룡’들과 맞붙어야 한다는 게 부담이다.

따라서 일부 재무전문가들은 보다 적극적인 ‘빚 갚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유휴자산을 매각하거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재무적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패션그룹형지와 샤트렌을 상장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동혁/오상헌 기자 otto8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