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처절한 한 모금, 은밀한 정보교환…'담피아'를 아시나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주차장·옥상·계단…흡연장소 찾아 '삼만리'
척박한 흡연 환경에 끈끈한 우애로 뭉쳤다
흡연구역에선 무슨 일이
회의시간엔 잔소리만 가득…흡연장에 모여 진짜 기획회의
실세 임원 담배 태우는 시간, 줄서기 나선 부장들도 우르르
정보에 소외되는 비흡연자들 "자리 비우는 동료들 얄미워"
척박한 흡연 환경에 끈끈한 우애로 뭉쳤다
흡연구역에선 무슨 일이
회의시간엔 잔소리만 가득…흡연장에 모여 진짜 기획회의
실세 임원 담배 태우는 시간, 줄서기 나선 부장들도 우르르
정보에 소외되는 비흡연자들 "자리 비우는 동료들 얄미워"
2012년 12월 대형 건물을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국민건강증진법이 시행되자 김과장 이대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비흡연자들은 “간접흡연의 피해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환영했다. 흡연자들은 “담배 피울 때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이나 옥상에 가란 얘기냐”며 반발했다.
그러나 외부의 적이 강할수록 내부 구성원은 더 단결하는 법. 사내 흡연실에서 만나 정보를 공유하던 ‘담피아(담배+마피아)’들의 결속은 더 단단해졌다. 흡연실에서 우연히 만나던 담피아들이 이제는 서로 ‘담배 피우러 가자’고 권하면서 동질감을 높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사이좋게 사라지는 애연가들을 보면 비흡연자들은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흡연과 관련한 직장인들의 에피소드를 모아 봤다.
한 대 피우러 가는 데 10분…‘차라리 끊지’
“사무실이 30층에만 있어도 참 좋을 겁니다.” 국내 최고층 빌딩인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근무하는 한화생명의 애연가 박모 과장의 푸념이다. 그의 사무실은 52층. 엘리베이터가 한창 붐빌 때는 1층 흡연장소까지 내려가는 데에만 20분 넘게 걸리기도 한다.
“한 번 내려가서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 순 없잖아요. 두 개비도 아쉬워요. 마침 동기라도 만나면 서너 개비는 기본이죠. 다만 30분 이상 비울 순 없으니 하루에 한두 번밖에 담배 피울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쉽네요.”
올해부터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무하게 된 신임 공무원 김모 사무관은 요즘 ‘흡연자의 비애’를 단단히 느끼고 있다. 힘든 고시 준비 시절을 함께한 담배이건만, 이제 한 대 피우고 오면 부서원 모두가 냄새난다고 한마디씩 한다. 청사 내 흡연실에 다녀오는 데 15분가량 걸린다는 것도 문제다. 1층 청사 별관 쪽 통로로 가거나, 20층 옥상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단축 운행을 하는 일과 시간에는 옥상으로 바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단 한 대뿐이다. “이렇게 힘들게 피우느니 차라리 담배를 끊는 게 낫겠어요”라는 게 김 사무관의 푸념이다.
‘흡연 특급작전’ 덕에 커가는 동지애
서울 강남의 한 대형빌딩에 입주한 A사 정모 대리는 흡연을 위해 밖에 나가는 것도 힘들어졌다. 비흡연자인 부장이 업무 시간에 담배 피우러 나가는 것에 눈치를 엄청 주기 때문이다. 모험을 감행하기로 한 정 대리가 요즘 몰래 찾는 지역은 복도 계단. ‘단속반’에 적발되면 사장에게 직접 보고가 들어가 경을 치게 되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정 대리는 “손바닥에 물티슈 몇 장을 깐 뒤 담배를 피우다가 누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물티슈에 담배를 끄고 통화하는 척하는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며 “애연가 동료들과 함께 이런 ‘스릴’을 경험하며 동지애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전자업체의 경기 용인 공장은 아예 흡연 공간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황모 대리가 입사 뒤 흡연 문제로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까닭이다. 출근 전에 한두 대 피우고 오전 내내 참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는 회사 근처 공사장까지 걷는다. 빠른 걸음으로 왕복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담배를 피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매일 같은 산책(?)에 지친 그는 최근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우선 사내 흡연자 서너 명과 함께 회사 주차장으로 간다. 이후 한 명씩 돌아가면서 각자 승용차에서 담배를 즐긴다. 냄새가 빠지도록 차문을 살짝 열어두고 나온다. “차에서 마치 불이 난 것처럼 연기가 오르기도 하지만 먼 길을 걷는 것보다 낫네요. 사내 금연도 중요하지만 흡연자를 배려한 장소는 마련해 줬으면 좋겠어요.”
진짜 회의는 ‘흡연장 회의’
강모 과장이 근무하는 한 중견 게임 업체에서는 ‘진짜 회의는 부서 회의가 끝나고 난 뒤 하는 흡연장 회의’라는 말이 있다. 강 과장의 부서는 매주 금요일 오전 한 시간가량 회의를 한다. 그러나 부원들은 사실상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여긴다. 부장의 잔소리로 시작해 잔소리로 끝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부 부원들의 아첨과 공허한 기획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아까운 업무 시간이 한 시간여 흐른 뒤 ‘진짜 회의’가 시작된다. 바로 흡연장에서다. 강 과장은 “부서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전혀 내지 않던 동료들이 흡연장에서는 팍팍 튀는 기획거리를 내놓곤 한다”며 “이렇다 보니 흡연장 회의에 비흡연 직원들까지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 여의도 A증권사 본사에서 일하는 장모 과장은 회사 밖 흡연실로 나가선 꼭 주위를 살핀다. 회사 근처에 본사가 있는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목에 ‘금감원’ 출입증을 걸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 멀리 떨어져서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피우며 동료들끼리 나누는 은밀한 이야기가 금감원 직원 귀에 들어가 검사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때문이다. 금감원 직원이 술집 옆 테이블에서 증권맨들끼리 나누는 뒷이야기를 듣고 윗선에 보고해 ‘한 건’을 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최근 눈에 불을 켜고 증권업계의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를 단속하고 있다.
얄미운 ‘담피아’…소외되는 비흡연자
이모 대리가 근무하는 금융회사는 오너를 향한 줄서기가 유난히 심하기로 유명하다. 인사철이 되면 각종 ‘설’이 난무한다. 오너가 신임하는 X전무의 오른팔 Y부장과 Y부장이 아끼는 Z차장이 승진하고, 눈 밖에 난 W차장은 ‘물먹고’ 한직으로 발령난다는 등이다.
이 모든 인사 정보가 가장 먼저 알려지는 곳은 회사 건물 뒤편 주차장 한쪽의 흡연구역. 건물 내 흡연이 금지되면서 자리잡은 비공식적인 흡연 공간이다. 실세로 불리는 X전무가 흡연을 하러 오는 시간에 맞춰 나오는 부장급이 많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X전무 파벌을 ‘담피아’라고 부를 정도다.
여성인 데다 비흡연자인 이 대리의 불만은 계속 쌓여만 간다. 일도 똑부러지게 잘하고 내부 평판도 좋지만 늘 중요한 정보에는 늦고, 원하는 부서로도 발령받지 못해서다. “비흡연자가 차별받는 게 확실해요. 장소가 그러니 괜히 어슬렁거리는 것도 이상하고요. 담배 피우고 오면서 정보를 하나 얻었다는 듯이 의기양양한 남성 동료도 조금 얄미워요!”
강현우/안정락/김은정/황정수/김대훈/김동현 기자 hkang@hankyung.com
그러나 외부의 적이 강할수록 내부 구성원은 더 단결하는 법. 사내 흡연실에서 만나 정보를 공유하던 ‘담피아(담배+마피아)’들의 결속은 더 단단해졌다. 흡연실에서 우연히 만나던 담피아들이 이제는 서로 ‘담배 피우러 가자’고 권하면서 동질감을 높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사이좋게 사라지는 애연가들을 보면 비흡연자들은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흡연과 관련한 직장인들의 에피소드를 모아 봤다.
한 대 피우러 가는 데 10분…‘차라리 끊지’
“사무실이 30층에만 있어도 참 좋을 겁니다.” 국내 최고층 빌딩인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근무하는 한화생명의 애연가 박모 과장의 푸념이다. 그의 사무실은 52층. 엘리베이터가 한창 붐빌 때는 1층 흡연장소까지 내려가는 데에만 20분 넘게 걸리기도 한다.
“한 번 내려가서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 순 없잖아요. 두 개비도 아쉬워요. 마침 동기라도 만나면 서너 개비는 기본이죠. 다만 30분 이상 비울 순 없으니 하루에 한두 번밖에 담배 피울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쉽네요.”
올해부터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무하게 된 신임 공무원 김모 사무관은 요즘 ‘흡연자의 비애’를 단단히 느끼고 있다. 힘든 고시 준비 시절을 함께한 담배이건만, 이제 한 대 피우고 오면 부서원 모두가 냄새난다고 한마디씩 한다. 청사 내 흡연실에 다녀오는 데 15분가량 걸린다는 것도 문제다. 1층 청사 별관 쪽 통로로 가거나, 20층 옥상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단축 운행을 하는 일과 시간에는 옥상으로 바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단 한 대뿐이다. “이렇게 힘들게 피우느니 차라리 담배를 끊는 게 낫겠어요”라는 게 김 사무관의 푸념이다.
‘흡연 특급작전’ 덕에 커가는 동지애
서울 강남의 한 대형빌딩에 입주한 A사 정모 대리는 흡연을 위해 밖에 나가는 것도 힘들어졌다. 비흡연자인 부장이 업무 시간에 담배 피우러 나가는 것에 눈치를 엄청 주기 때문이다. 모험을 감행하기로 한 정 대리가 요즘 몰래 찾는 지역은 복도 계단. ‘단속반’에 적발되면 사장에게 직접 보고가 들어가 경을 치게 되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정 대리는 “손바닥에 물티슈 몇 장을 깐 뒤 담배를 피우다가 누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물티슈에 담배를 끄고 통화하는 척하는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며 “애연가 동료들과 함께 이런 ‘스릴’을 경험하며 동지애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전자업체의 경기 용인 공장은 아예 흡연 공간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황모 대리가 입사 뒤 흡연 문제로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까닭이다. 출근 전에 한두 대 피우고 오전 내내 참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는 회사 근처 공사장까지 걷는다. 빠른 걸음으로 왕복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담배를 피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매일 같은 산책(?)에 지친 그는 최근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우선 사내 흡연자 서너 명과 함께 회사 주차장으로 간다. 이후 한 명씩 돌아가면서 각자 승용차에서 담배를 즐긴다. 냄새가 빠지도록 차문을 살짝 열어두고 나온다. “차에서 마치 불이 난 것처럼 연기가 오르기도 하지만 먼 길을 걷는 것보다 낫네요. 사내 금연도 중요하지만 흡연자를 배려한 장소는 마련해 줬으면 좋겠어요.”
진짜 회의는 ‘흡연장 회의’
강모 과장이 근무하는 한 중견 게임 업체에서는 ‘진짜 회의는 부서 회의가 끝나고 난 뒤 하는 흡연장 회의’라는 말이 있다. 강 과장의 부서는 매주 금요일 오전 한 시간가량 회의를 한다. 그러나 부원들은 사실상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여긴다. 부장의 잔소리로 시작해 잔소리로 끝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부 부원들의 아첨과 공허한 기획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아까운 업무 시간이 한 시간여 흐른 뒤 ‘진짜 회의’가 시작된다. 바로 흡연장에서다. 강 과장은 “부서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전혀 내지 않던 동료들이 흡연장에서는 팍팍 튀는 기획거리를 내놓곤 한다”며 “이렇다 보니 흡연장 회의에 비흡연 직원들까지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 여의도 A증권사 본사에서 일하는 장모 과장은 회사 밖 흡연실로 나가선 꼭 주위를 살핀다. 회사 근처에 본사가 있는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목에 ‘금감원’ 출입증을 걸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 멀리 떨어져서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피우며 동료들끼리 나누는 은밀한 이야기가 금감원 직원 귀에 들어가 검사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때문이다. 금감원 직원이 술집 옆 테이블에서 증권맨들끼리 나누는 뒷이야기를 듣고 윗선에 보고해 ‘한 건’을 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최근 눈에 불을 켜고 증권업계의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를 단속하고 있다.
얄미운 ‘담피아’…소외되는 비흡연자
이모 대리가 근무하는 금융회사는 오너를 향한 줄서기가 유난히 심하기로 유명하다. 인사철이 되면 각종 ‘설’이 난무한다. 오너가 신임하는 X전무의 오른팔 Y부장과 Y부장이 아끼는 Z차장이 승진하고, 눈 밖에 난 W차장은 ‘물먹고’ 한직으로 발령난다는 등이다.
이 모든 인사 정보가 가장 먼저 알려지는 곳은 회사 건물 뒤편 주차장 한쪽의 흡연구역. 건물 내 흡연이 금지되면서 자리잡은 비공식적인 흡연 공간이다. 실세로 불리는 X전무가 흡연을 하러 오는 시간에 맞춰 나오는 부장급이 많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X전무 파벌을 ‘담피아’라고 부를 정도다.
여성인 데다 비흡연자인 이 대리의 불만은 계속 쌓여만 간다. 일도 똑부러지게 잘하고 내부 평판도 좋지만 늘 중요한 정보에는 늦고, 원하는 부서로도 발령받지 못해서다. “비흡연자가 차별받는 게 확실해요. 장소가 그러니 괜히 어슬렁거리는 것도 이상하고요. 담배 피우고 오면서 정보를 하나 얻었다는 듯이 의기양양한 남성 동료도 조금 얄미워요!”
강현우/안정락/김은정/황정수/김대훈/김동현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