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안데르센’ 연극에는 그의 명작동화 ‘미운 오리새끼, 쓸모없는 여자, 길동무, 인어공주, 프시케, 성냥팔이소녀, 놋쇠병정’ 7편을 옴니버스로 묶고 안데르센의 삶을 따라간다.
동화를 연극으로 묶은 방법이 예사롭지 않다. 배우를 꿈꾸었던 안데르센의 삶과 작가로써 고단했던 그의 인생이 자서전을 펼치듯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밀양 연극촌에서 매주 토요일 한 달 동안 안데르센 공연을 하면서 이야기를 손질하고 다듬었다.
이야기에 틈이 생기는 것은 좁혔고, 과다한 인물설정과 다양한 탈 인형놀이들의 조정기술들도 다소 제자리를 찾았다. 무대에서 인형과 탈을 활용해 감정을 전달하고 인물표현의 중심이 인형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배우의 육체와 인형이 동일시되어야 한다. 배우의 움직임과 인형의 움직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이야기는 산만해 질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동된 극장을 잘 활용했다. 다듬고 손질한 만큼, 옴니버스의 함정을 좁힌 셈이다.
수백편의 그의 동화 중에 7편을 묶은 것은 그의 인생과 투영된 그의 결핍의 자아적 시선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동극은 한편의 이야기를 선택해 다양한 연극적인 방식으로 묶어낸다. 아동극 일수록 무대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쉽지 않다. 많은 아동극 연출가들이 이야기의 단순함만 믿고 대상층의 특수성을 생각해 이야기를 펼치듯 간소하게 전달하는 방식은 잘못된 오류다.
이러한 아동극은 차라리 집에서 동화한편을 읽는 것이 아이들 상상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된다. 알려진 이야기에 무대를 활용한 단순한 연극적 입체감 만들기는 좋은 아동극이라고 할 수 없다.
○‘연희단거리패’의 특별한 ‘안데르센’ 이야기
‘연희단거리패’가 들고 나온 ‘안데르센’은 특별하다. 흩어진 명작들을 잘 묶고 안데르센의 삶의 시선을 더했다. 무대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입체감으로 그대로 옮겨놓았다. 7편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배열한다. 단원들은 특유의 표현방법으로 힘 있게 이야기를 끌고나간다. 1장은 배우를 꿈꾸고 덴마크의 지방도시 오덴세를 떠나 코펜하겐으로 떠나온 14세의 안데르센의 자전적 이야기가 채워진다. 문법학교도 다니지 못한 안데르센의 삶에 작가는 자전적인 사실성을 버무리고 그를 14세로 무대에 세운다. 시간을 끌어당기고 연극적인 상상을 더 한다.
극장관리인과의 안데르센의 대화에서는 외모의 결핍, 학력 콤플렉스, 특별한 가족사 등이 쏟아진다. 도입부터 자칫 무거워 질수 있는 압축된 안데르센 삶에 배우 박인화(안데르센 역)는 특유의 인형놀이, 복화술, 마임과 마술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시선을 잡는다. 평면적인 자전적 인생이야기의 함정을 노래로써도 표현하면서 무대를 유도하고 있지만 안데르 센의 자아적 결핍과 콤플렉스의 무거움이 배우의 내면적 인식으로 인지해 유지되면 감정은 극의 전반을 무겁게 만들 수 있다. 오히려 안데르센은 결핍된 자아,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초기 코펜하겐 생활에서는 적극성을 유지했고, 사람들을 대 할 때 밝은 성격으로 표현했다는 점을 감정이입에서 환기 할 필요가 있다.
안데르센은 변성기에 목소리를 잃기 이전과 그 이후의 성격은 다르다. 안데르센의 삶의 표면적 무거운 내면성은 외부로 표현되어지는 무거움보다는 존재하는 자아다. 이러한 인물의 자아를 배우가 그대로 정서로 입히고 일관되게 끌고 가면 자기중심적인 감정이 될 수 있는 표현의 오류가 생길 수 있다. 툭툭 끊겨 있는 옴니버스 이야기는 더욱 무거워 질 수 있고 함정에 빠질 수 있다.
2장부터는 ‘안데르센’의 동화가 펼쳐진다.
‘연희단거리패’의 특유의 장면 구성력과 배우들의 움직임은 다양한 오브제 활용을 통해 연출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영상을 이용한 오리들의 물놀이 수영장면, 오리탈의 상징성과 놀이적 활용, 그림자극, 박스를 활용한 미운오리새끼의 탄생은 시선을 잡아당긴다. 미운오리새끼를 안데르센 자신으로 극에 투영함으로써 연출은 결핍된 자아 속에서도 희망과 꿈을 잃지 않은 안데르센의 확고한 다름의 가치를 짜임새 있게 잘 펼쳐 보이고 있다. 어미오리를 맡은 배우 김미숙을 비롯해 새끼 오리들의 극적 구성과 장면설정은 간결한 균형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
3장은 ‘쓸모없는 여자’이야기로 평생 세탁부로 살아온 안데르센의 어머니의 이야기다.
안데르센은 이 이야기에 손상된 출생의 자아를 투영한다. 안데르센의 성장기는 출생과 그의 가족사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태생적인 차이와 환경의 다름은 인간을 평가 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그의 시선이 그대로 녹아있다. 자칫 너무 연극적인 형식으로 치우칠 수 있는 이 두 번째 이야기를 국립극장 판 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앞, 뒤 ‘미운오리새끼,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놋쇠병정’의 다소 동화적인 이야기와 흡수 될 수 있도록 장면 배치에서 극적템포감을 좁히고 있다. 시장집안의 자손이라는 아들의 출생의 비밀을 회상하는 장면에서의 그림자극의 활용은 연극적으로 무거워 질 수 있는 이야기를 동화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어미니 역을 맡은 배우 김미숙도 전작 피의결혼의 어머니 역의 정서를 덜어내기 전에 이번 역할을 맡았음에도 동화적 캐릭터를 특유의 정서로 잘 소화해 내고 있다.
3장과 4장은 ‘길동무와 인어공주’ 이야기다. 길동무에서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사내 1 이건희, 사내 2, 황보권) 를 등장시키면서 처질 수 있는 앞의 이야기를 잡아당기고 장면을 살려낸다. 길동무는 안데르센 아버지의 이야기다. 안데르센 성장기의 결핍된 자아는 가족사에 중요한 요소다. 인간은 인생의 다양한 길동무를 만나면서 살아간다. 소년은 길동무의 도움을 받아 공주의 마법을 풀어주고 왕이 된다는 동화적 이야기의 설정은 안데르센에게 버릴 수 없는 내면의 세계이다.
이번 안데르센 작품에서 ‘길동무’ 역할을 맡고 전작 ‘피의결혼’ 공연에서 레오나르도를 맡은 윤정섭은 배우로써 연기의 절제력과 인물의 흡수력이 매우 뛰어난 배우다. 배우로써 공간의 활용, 인물의 정서적 표현, 감정의 절제, 움직임 등이 다양한 호흡으로 표현 되고 무대를 흡수한다. 인물의 내면은 그의 연기문법으로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내면서 시선을 가도록 만들어 내는 배우다.
5장 ‘인어공주’ 이야기는 동화적 요소와 시각적인 설정 등이 총 동원된다. ‘판자 인형, 막대인형, 탈 인형, 그림자극’을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야기를 무대공간에 동화적으로 입체감 있게 담아내고 있다. 천을 활용한 폭풍우 장면과 인형을 활용한 인어공주와 왕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도 연출은 알려진 인어공주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입체적 시각화를 시켜낸다. 인형을 활용하는 장면에서는 인형의 형태만보이고 표현은 배우중심으로 하니 집중감이 저하될 수 있고 무대를 바라보는 몰입에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축약되고 밀집 되지 못하면 극은 산만해 질수 있다.
인형을 활용할 때에는 철저하게 인형이 감정을 품고 있어야한다. 배우가 보이면 시선이 분산되고 극의 밀도는 떨어질 수 있다. 설정된 ‘어항’은 인어공주 이야기의 바다 속의 신비함을 살려내기에는 부족하다. 무대공간의 전체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잘 만들어 놓은 장면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옴니버스 이야기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6장은 조각상 ‘프시케’ 이야기다. 안데르센은 그의 나이 25세 때(1830년)에는 ‘리보로 보이그트’ 라는 여자를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다. 안데르센의 소심한 성격으로 첫 사랑에 실패 한다. 이후 못생긴 외모, 자라온 환경, 목소리, 가족사 등 에서 공통점이 많은 코펜하겐의 신인 가수 ‘예니 린드’를 만나면서 친구가 되고 그를 모델로 한 ‘미운오리 새끼’를 탄생시킨다. 프시케는 변하지 않는 안데르센 내면의 영원한 사랑이 담겨 있다.
한 여인을 닮은 조각상을 만들고 사랑고백을 실패한 조각가는 조각상을 땅속에 묻는다.
6백년이 흘러 수도원 땅속에서 발견된 프시케상은 그 아름다움이 변하지 않은 채 세상으로 튀어 나온다. ‘리보그 보이그트’를 사랑했던 안데르센은 죽는 그 순간까지 고독과 마주한 그의 내면과 아름다운 영혼이 잘 드러나 있는 이야기다. ‘프시케’의 이야기에서 연희단거리패 배우 김아라의 신체를 활용한 조각상 표현은을 보여준다. 단지 육체의 활용 차원이 아닌, 안데르센의 마음의 깊이와 조각가의 감정을 잘 드러내준다.
마지막 ‘성냥팔이 소녀와 놋쇠병정’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안데르센의 명작임에도 불구하고 입체동화를 펼쳐 보이는 듯한 장면구성과 공간 활용이 인상적 이였고 특히 ‘놋쇠병정’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비로소 사랑을 구원하고 희망을 얻을 수 있다는 동화적 메시지를 놋쇠병정의 탄력적인 움직임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한쪽 다리를 잃은 놋쇠병정이 꿋꿋이 서서 북을 치는 장면은 무대를 강하게 울려낸다.
이번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안데르센’은 아동극으로도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고 있다. 안데르센 동화이야기를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적 요소가 강한 옴니버스와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묶여진다면 안데르센의 이야기 힘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7월6일 국립극장 판 소극장을 끝내고 밀양연극제 및 각 지역별로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이윤주 연출 프로필
연희단거리패 배우·연출
연출
-<레드 채플린><이상한 사이버나라>
-<홀연했던 사나이><스크루지>
-<주머니 속의 연기>< 울고있는 저여자>
-<로미오를 사랑한 줄리엣의 하녀>
-<맨발의 청춘><숙희정희>
-<영화배우 이성룡><서툰사람들>
-<토우><소시민의 결혼>
출연
-<코마치후텐><바보각시>
-<사랑에속고 돈에 울고><하녀들>
-<어머니><눈물의여왕><햄릿>
-<서툰사람들>
-제46회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 수상 공연 리뷰 김건표(대경대학교 연극영화방송학부 교수)/연극·뮤지컬·공연·평론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