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DL 직원들이 새로 출시할 화장품 의 디자인 콘셉트를 잡기 위해 토론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ABDL 직원들이 새로 출시할 화장품 의 디자인 콘셉트를 잡기 위해 토론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4일 열린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서 가장 주목받은 국내 기업은 전자도, 자동차도 아닌 화장품 회사 아모레퍼시픽이었다. 1994년 중국에 진출해 지금은 해외 매출의 60% 이상을 중국에서 벌어들이고 있는 이 회사가 한국 기업을 대표해 ‘중국 진출 성공 사례’를 발표한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중국에서 성공한 것은 뛰어난 기술과 한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눈길까지 사로잡는 고급스러운 디자인도 큰몫을 하고 있다. 7일 찾은 서울 수표동 아모레퍼시픽 본사 13층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디자인 랩(ABDL)’은 38개에 달하는 이 회사 브랜드의 디자인을 통합 개발하는 ‘디자인 경영의 산실’이었다.

“컬러는 노란색을 더 강조하고, 글씨는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옆에 다른 화장품과 같이 놨을 때 너무 튀어 보이지 않을까요?” 디자이너들이 출시를 앞둔 신상품들을 모아놓고 이런저런 품평에 한창이었다.

ABDL은 제품 용기부터 설명서, 포장 상자, 글씨체, 매장 인테리어, 브랜드 콘셉트에 이르기까지 연구영역이 광범위하다. 7개 팀에 140여명의 디자이너가 근무 중이다. 백인우 디자이너는 “경기 용인에 있는 기술연구원이 아모레퍼시픽의 좌뇌(左腦)라면 ABDL은 제품에 감성과 스토리를 입히는 우뇌(右腦)”라고 소개했다.

‘화장품 회사에 이런 게 있나’ 싶은 것들이 적지 않았다. 사무실 한복판에는 두어 평 남짓한 욕실이 있다. 요즘 신규 분양되는 아파트의 일반적인 욕실을 옮겨 와 샴푸, 보디워시, 치약 등 여러 제품이 나란히 놓였을 때 조화를 이루는지 평가한다. 다른 한쪽엔 백화점 판매대를 떼어다 놓고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할 진열법을 연구하는 방도 보였다.

아모레퍼시픽은 기존 디자인센터를 지난해 1월 ABDL로 확대 개편하고 현대카드 출신 오준식 씨를 상무로 영입했다. 오 상무는 “화장품에 디자인을 입히는 건 궁극적으로 잘 팔리게 하기 위한 것이고, 실제로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방 화장품 ‘한율’이다. 2007년 출시된 한율은 ‘설화수’에 가려 그다지 큰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ABDL은 한율의 브랜드 콘셉트를 ‘전통 민간 처방의 자연 화장품’으로 새로 잡아 지난 3월 재출시했다. 그 결과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2% 늘며 순항 중이다.

ABDL은 아모레퍼시픽이 글로벌 5대 전략 브랜드로 육성 중인 ‘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에뛰드’ ‘이니스프리’를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감안한 디자인 고급화에 주력할 계획이다. 오 상무는 “‘샤넬’ ‘루이비통’ 덕에 프랑스의 이미지가 더욱 높아지지 않았냐”며 “아모레퍼시픽은 한국의 헤리티지(유산)를 화장품에 담아내 국가 이미지도 높이는 회사가 되려 한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