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안화 허브' 기회 열렸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원·위안 직거래 체제 구축에 합의했다. 큰 변화다. 무역과 투자 등 실물분야에 머물렀던 한·중 경제협력이 금융통화 분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원·위안 직거래 체제란 한·중 양국 간에 돈이 오갈 때, 굳이 달러를 거쳐 두 번 환전하지 말고, 또 위안화 결제를 위해 매번 홍콩 금융기관을 경유하지도 말자는 얘기다. 이를 위해 중국교통은행 서울지점을 위안화 청산결제은행으로 지정하고, 국내에 들어온 위안화를 중국에 다시 투자할 수 있는 쿼터도 800억위안(RQFII·약 13조4000억원)을 확보했다. 앞으로 은행 간 외환시장에서도 원·달러 거래처럼 원·위안 사이의 직거래 또한 가능해진다. 특히 이번에 거래시스템(청산결제은행, 외환 직거래 시장)과 거래수요(RQFII)를 동시에 확보함으로써 원·위안 시장의 조기 활성화가 가능해졌다. 영국과 중국이 비슷한 시스템을 3월에 합의하고도 6월 말에야 결제은행이 지정된 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속전속결이다.

그러나 원·위안 직거래로 거래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정작 기업과 투자자가 당장 체감할 정도의 변화는 아니다. 충분한 거래량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달러 거래가 더 싸고 편할 수도 있다. 직거래 체제의 더 큰 의의는 우리 금융회사들이 중국 자본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확대됐다는 데 있다.

중국 자본시장은 수익성이 높고 성장전망도 밝다. 중국 부자들의 해외투자 여력도 크다. 다만 아직 외국 금융회사에는 그 문을 닫아두고 있다.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은 외국인 기관투자가들만 엄격한 쿼터 안에서 진입할 수 있다. 이른바 적격외국인투자자(QFII) 제도가 그것이다. 그것을 위안화(RMB) 자금에 적용한 것이 RQFII다. 이번 직거래 체제는 최소한 RQFII 쿼터 800억위안만큼 그 문을 여는 효과가 있다. 한국보다 더 많은 쿼터를 받은 곳은 중화권인 홍콩(2700억위안)과 대만(1000억위안)뿐이다.

정부는 제 몫을 했다. 이제 공은 한국 금융회사들에 넘어왔다. 이 직거래 체제를 활용하는 것은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의 몫이다. 이미 2009년부터 위안화 역외허브가 형성된 홍콩을 제외하면, 위안화 금융의 출발선에 선 서울, 타이베이, 싱가포르,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의 상황은 비슷하다. 누가 수익을 더 많이 내는 금융상품을 제공하느냐가 관건이다. 수익이 높은 곳에 돈이 모이고 돈이 모이면 허브가 된다.

한국은 유리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위안화의 실물-금융 환류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은 매년 중국에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2013년 628억달러).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아직 자본시장이 개방되지 않은 중국에서 저렴하게 위안화를 조달할 수 있는 실물적 기초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또 중국의 자산가들이 공산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리하게 역외자산을 운용할 수 있는 거점이 될 수 있다. 2013년 430만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다녀갔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부자들에게는 홍콩보다 서울이 더 가깝다. 나아가 양국의 비슷한 성장경험과 밀접한 분업구조를 잘 분석한다면 한국은 중국의 산업과 기업의 미래수익을 누구보다 잘 판단할 수 있다.

위안화 국제화는 전 세계 금융통화질서의 장기적 변화와 직결된다. 자본시장 개방도 안 된 나라의 통화를 거래하려고 세계적 금융허브들이 너도나도 나서는 것은 그 때문이다. 판도 변화는 늘 후발자들에게 기회다. 마침 한국은 그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실물경제적 기초도 갖고 있다. 그야말로 천재일우(千載一遇)다. 정부도 관련 작업반을 만든다고 한다. 한국 금융산업이 가진 창의력을 한번 제대로 시험할 때가 왔다.

지만수 <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jmansoo@kif.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