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쟁의조정 남용하는 자동차 노조
최근 국내 자동차산업은 내수 침체와 수입차의 시장 잠식, 원고 및 엔저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라는 만만찮은 상황을 맞고 있다. 특히 원고 추세가 가팔라지면서 심각한 수익성 악화에 직면해 있다. 자칫 파업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자동차업계의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이 우려되는 까닭이다.

올해 자동차업계 임단협은 통상임금 범위 확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교대제 개편, 정년연장 등 쟁점 현안이 많다. 인건비 등 사측의 고정비 부담을 크게 늘려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동맹파업 참여 독려 등 강경 투쟁을 주장하는 목소리만 가득하다. 자동차업계 노동조합은 직면한 어려운 현실을 외면한 채 강성 투쟁으로 자기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노조는 벌써 쟁의권 확보를 위한 조정신청을 진행하고 있다. 진지하고 성실한 협상을 하지도 않고 서둘러 파업의 칼을 꺼내들어 사측을 압박하는 양상이다. 노조도 자동차업계가 처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임단협 교섭을 벌이는 게 마땅하다. 회사의 성장이 고용 안정성을 높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파업에 돌입하기 전 노사 간에 임금 등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데 주장의 불일치로 발생한 분쟁상태를 ‘노동쟁의’라고 정의한다. 노동쟁의는 노사 간 합의를 위한 노력에도 더 이상 자주적 교섭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경우에 노조는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노조에서 유리한 교섭을 위한 쟁의권의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곤 한다. 노조는 노동쟁의 조정을 단순한 형식적 절차로 인식해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의 파업 일정에 맞추는 경향도 있다. 이런 조정신청에 대해 노동위원회는 실제로 노조법상의 노동쟁의 상태에 이르렀는지 먼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며, 단순히 형식에 사로잡힌 판단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뽕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오는 것을 알아야 하듯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해야 한다. 노동위원회는 노사 간 교섭차수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실질적인 교섭 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사 모두 자동차업계가 처한 냉혹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자주적 교섭에 의한 의견의 합치를 위해 좀 더 노력하라고 강력히 주문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주장의 불일치에 의한 분쟁상태인지, 당사자 간 협의를 위한 노력이 충분한지, 자주적으로 교섭할 여지는 없는지 등을 낱낱이 따져야 한다. 그래야 ‘파업’이라는 극한 대치상황을 막을 수 있다.(자칫 소의 뿔을 자르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결국 노동위원회는 노동쟁의가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노사로 하여금 자주적으로 더 교섭하라는 취지의 행정지도를 활용함으로써 노사 간 분쟁을 최소화해야 한다. ‘복지부동’의 형식적 일처리가 아니라 ‘콜럼버스의 달걀’의 실행자가 필요한 시기다. 노동위원회는 법과 제도를 원래 취지에 맞게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노사는 교섭에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임해 파업보다는 교섭으로 단체협약을 타결하고, 자신의 몫을 더 키운다는 자세로 경영 목표 달성에 힘쓰는 상생의 노사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합리적인 노사 간 자주교섭의 관행이 정착돼 산업현장의 평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형식적 절차를 이용한 속전속결 파업으로는 첨예한 노동쟁점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없다. 막무가내식 파업 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감안해서라도 쟁의행위 개시를 위한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실질적인 쟁의 조정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이승길 <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sglee79@ajo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