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00년 전인 1914년 6월28일 일요일. 보스니아(현재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수도 사라예보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오픈카에 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부부가 쓰러졌다. 보스니아를 합병한 지 6년 만이었다. 저격자는 열아홉 살 세르비아계 청년 프린치프. 배후를 캐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한 달 뒤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전 유럽을 피바다로 만든 1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영국·프랑스·러시아가 세르비아 편에 서고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언하면서 전장은 갈수록 넓어졌다. 군인 900여만명과 민간인 500여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구가 된 군인도 700만명 이상이었다. 전례없는 야만의 역사였다. 2차대전으로 이어지며 대살육을 촉발한 민족주의의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발칸의 화약고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으로 꼽힌다. 인구 460여만명에 이슬람 신자인 보스니아계(약 50%),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30%), 가톨릭 신자인 크로아티아계(15%)가 섞여 있다. 대통령도 민족별로 1명씩, 3명을 뽑아 번갈아가며 통치한다. 민족 뿌리는 같은 남슬라브족인데도 툭하면 싸운다. 내전(1992~95년)으로 20만명이 죽고 230만명이 유랑걸식했다.

저격범 프린치프를 둘러싼 논란도 현재진행형이다. 보스니아계와 서방 역사학자들은 그를 과격 슬라브민족주의자로 보는 반면 세르비아계는 제국주의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려 했던 투사로 평가한다.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처럼 프린치프의 얼굴을 프린트한 티셔츠가 인기를 끌 정도다. 1차대전 100주년 기념 행사도 따로 연다. 오늘(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콘서트를 열지만, 세르비아계는 이 행사를 보이콧하고 동부 도시 비제그라드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열기로 했다.

100주년 관련 행사는 전 유럽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진다. 세계 최대 사이클대회인 ‘제101회 투르 드 프랑스’(7월5~27일) 출전 선수들도 주요 격전지를 연결하는 코스를 달린다. 엊그제에는 유럽연합(EU) 28개국 지도자들이 최대 격전지였던 벨기에의 이에페르에서 추모 행사를 열었다. 모두가 전쟁의 참상을 잊지 말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것이다.

그러나 사라예보의 표정은 어둡다. 우리에게는 1973년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에서 이에리사·정현숙이 우승한 ‘사라예보의 기적’으로 친숙한 도시. 역사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