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선 가전제품 '이온수기'…한국선 의료기기
국내에서 이온수기를 제조하는 중소기업 A사는 수년째 해외에서만 제품을 팔고 있다. 이온수기는 전기로 물을 분해해 칼슘이온 마그네슘이온 칼륨이온 등이 함유된 알칼리성 이온수와 염화이온 황이온 등이 있는 산성 이온수를 만드는 기기다. 이온수는 체내 흡수가 빠르고 항산화 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국내에서도 이온수기를 쓰는 가정이 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온수기는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이온수기를 팔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판매 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의료기기 판매 허가는 판매소가 건축법상 근린생활시설이어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롭다.

A사 관계자는 “자사 홈페이지도 한글 홈페이지를 없애고 해외 바이어만 접속할 수 있도록 바꾸는 등 영업 제약이 심하다”며 “한국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이온수기를 정수기와 같은 일반 생활용품이나 주방용품으로 다시 분류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온수기뿐만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일반 용품에 해당하는 제품이 국내에서는 의료기기나 의약품으로 분류돼 국내 기업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소비자의 안전과 관련이 있는 규제는 강할수록 좋다는 주장도 있으나 글로벌 트렌드와 동떨어졌다는 불만도 적지 않게 나온다.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에 쓰이는 원료인 ‘에키네시아’는 유럽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하지만 한국에서는 의약품으로 취급한다. 에키네시아는 국화과 식물로, 면역력을 높이고 감기를 예방하는 데 좋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에키네시아가 함유된 제품을 감기약 대신 먹기도 한다.

한국에서 에키네시아를 수입하려면 의약품법에 따라 정부로부터 일일이 인증을 받아야 한다. 에키네시아가 함유된 일부 제품은 아예 수입이 금지돼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에키네시아를 섭취하면 복통 호흡곤란 근육통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업계에선 “한국이 유독 규제가 심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외국에서 화장품으로 분류하는 치약, 치아미백제, 구강제 등 구강용품과 염색약, 제모제, 냄새 제거제(데오도란트) 등은 국내에서는 의약외품에 속한다. 의약외품은 질병 치료나 예방을 위해 쓰는 의약품은 아니지만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제품을 뜻한다.

의약외품을 제조·판매하려면 식약처장에게 제조업 신고 및 품목허가를 받거나 품목신고를 해야 한다. 식약처는 최근 화장품 업계의 규제완화 요구를 받고 나서야 피부용과 모발용에 한정된 화장품 범위를 구강용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염색약이나 데오도란트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의료기기에 속했던 안마의자는 관련법이 바뀌면서 전기용품안전관리법에 따라 인증을 받으면 일반 전기기기로 판매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근육통이 완화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광고하려면 의료기기 허가를 따로 받아야 한다. 일반 전기기기는 질병 치료, 예방, 완화 등의 병에 대한 효과를 내세우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의료기기 제조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식약처의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인증을 별도로 획득하고 매년 관련 교육을 받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나선 만큼 의료기기나 의약품 분야도 국제 기준에 맞게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