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위기’다. 특히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세계 금융위기가 이런 현상을 부채질했다. 금융에서 시작된 세계자본주의 위기는 경제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위기가 시작된 지 몇 년 지났지만 끝은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는 일시적으로 피했지만 상황은 부정적이다. 악화되는 국가재정은 위기 관리에 지렛대로 쓸 정부의 영향력마저 박탈하고 소비자는 소비를 줄였으며 복지국가는 초기 단계로 후퇴했다.

《여파》는 15명의 사회과학자들이 세계자본주의 위기를 분석한 책이다. 저자들은 “대중이 ‘일상적 불안’을 안고 살지만 전문가들의 이야기로부터 그들이 처한 현실에 관한 납득 가능한 설명이나 이렇다 할 돌파구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며 “불안을 느끼면서도 계속되는 위기상황에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종전의 정치·경제학과는 다른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저자들은 익숙한 ‘경제위기’라는 현상이 어떤 ‘여파’를 가져왔는지 미국과 포르투갈의 예를 중심으로 두루 살피고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위기’는 이미 일상이자 문화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위기가 만들어낸 여파는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

이 책의 핵심 주장은 “경제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문화”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사회 시스템에 위기가 찾아온다면 그곳에는 반드시 인간 행동의 근본 원리로 작동하던 어떤 가치관이 지속가능하지 않게 되는 ‘문화 위기’의 조짐이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현재 진행 중인 경제위기의 원인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나 신자유주의로 한정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들은 ‘지금이 그런 역사적 이행기라는 가설 하에 어떤 문화적·사회적 상태가 위기로 이어졌는지’를 검증하고 있다.

책은 규제가 사라진 세계자본주의의 역동성이 만든 ‘파괴적 흐름’에서 현재의 위기가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역설적이게도 기술혁신과 네트워킹, 고학력 노동력을 활용해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늘린 ‘신경제’가 위기를 불러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1998~2008년 누적 생산성이 30% 가까이 증가했지만 실질임금은 같은 기간 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책은 경제위기 여파로 네 가지 새로운 경제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에너지·나노기술·생물정보학 등 전문 계층이 주도하는 정보자본주의 경제 △국가재정 악화로 고용과 수요를 창출하는 능력이 상실된 공공 및 반(半) 공공 부문 △비숙련·저생산의 전통적 경제활동 △삶의 의미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을 조합한 대안 경제 부문 등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