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6월23일 오후3시20분

[신용 잃은 신용평가사] 신평사, 외국대주주에 이익 90%배당…인력 등 투자 '뒷전'…평가質 떨어져
“단기 이익 중시 경영으로 한국 신용평가사들의 중장기 경쟁력이 고갈되고 있다.”(한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

글로벌 신용평가회사가 최대주주인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수년째 순이익의 최대 90%에 달하는 고배당을 실시하는 것을 놓고 업계 안팎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신평사들의 ‘고배당 잔치’는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중장기 투자를 가로막고 분석·능력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은 물론 부적절한 업계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등급 장사’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디스가 경영권을 갖고 있는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76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이 중 68억원을 배당했다. 순이익 중에서 현금배당액이 차지하는 비중인 배당성향이 89%에 달했다. 한국신용평가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90%의 배당성향을 유지했다. 1년간 벌어들인 순이익 중 10% 정도만 내부에 유보돼 장기 투자 재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피치가 대주주로 있는 한국기업평가도 마찬가지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122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79억원을 배당했다. 배당성향이 65%다. 한국기업평가는 2010년 이후 적게는 65%, 많게는 99%의 배당성향을 보였다. 한국기업평가는 특히 결산기 변경을 위해 작년 10월부터 3개월간 한시적으로 결산을 하면서도 이 기간 중 순이익의 62%를 배당해 “해도 너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신용평가회사들은 공식적으로 “신용평가 업무는 제조업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진 않아 고배당을 유지하더라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내 자본시장은 물론이고 신용평가사 내부의 목소리는 다르다. 무엇보다 “인력 충원 등에 필요한 투자 재원 부족을 초래해 평가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기업평가의 평가 대상 기업 수 대비 평가 인력 증가를 보면 이런 상황은 잘 나타난다. 이 회사의 평가 기업은 2007년 275개에서 작년 말 391개로 116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평가 인력(실장급 포함)은 45명에서 50명으로 늘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선 애널리스트들이 1인당 7~8개 기업을 분석하지만 신용평가사는 업종별로 1인당 최대 20~25개를 분석한다”며 “정기평정 기간에는 업체당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없어 분석 깊이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신용평가사 출신 증권사 직원은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고배당 재원 마련을 위한 이익 증대에만 몰두해 신용평가사들이 부적절한 영업경쟁을 벌이고 결국엔 등급 장사까지 나서게 된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융감독당국 등이 나서 신용평가사들이 내부 유보를 확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의 특별검사 결과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장사 정황이 포착된 만큼 신용평가사의 손해배상 소송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회계법인처럼 신용평가사 매출의 일정액을 손해배상충당금으로 쌓도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