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머코스키 지음 / 김유미 옮김 / 흐름출판 / 360쪽 / 1만7000원
책은 충분히 논쟁적이다. 종이책 시대의 진짜 종언은 이제 시간문제라는 전형적인 기술결정론적 시각이나 ‘전자책 독서 혁명’을 일으켰다는 킨들팀 창업 멤버로서 가질 만한 자부심 과잉은 다소 부담스럽다. 그러나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읽기 매체의 형태론적 화두나 관점이 아니다.
‘리딩 2.0’ 시대에 조응하는 디지털 네트워크형 읽기의 무한 확장과 연계를 그리는 대목은 상당히 강렬하다. 우리는 지금 ‘리딩 2.0’의 입구에 서 있으며 궁극적으로 세상의 모든 책이 ‘거대한 한 권의 책’으로 바뀔 것이라는 상상적 전망이 던지는 통찰의 파장이 무척 세다. 그 한 권의 책은 인류가 생산한 모든 책을 하나로 연결한 것으로, 본문·주석·비평·댓글은 물론이고 이미지·비디오·오디오·게임·소셜 네트워크상의 대화를 모두 포함한다. 모든 인류 문화의 책이 서로 뒤엉킨 뿌리처럼 연결된 하이퍼링크 유기체의 네트워킹 시대를 맞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 하는 오래된 기 싸움의 철 지난 연장전으로 오독돼서는 안 된다. 책 읽기, 책 쓰기, 책 만들기, 책 판매하기, 책의 성소인 도서관과 학교 등 온갖 책의 문명과 문화가 디지털 사회에서 어떤 모양새로 변모할 것인지 자문자답한다. 이런저런 미래의 그림을 그리는 저자의 예상은 맞거나 틀릴 수 있다. 큰 방향성은 있지만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신문사에 다니던 아버지 덕분에 “핏속에 잉크가 흐른다”고 장담하는 저자는 책벌레답게 읽고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책 생태계의 변화상을 조감한다. 저자나 독자가 아닌, 출판사와 오프라인 서점 등 이해 관계자들에게는 매우 불편할 수도 있는 이런 시각이 오히려 가까운 미래의 책 생태계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촉구한다.
우리가 아는 독서 방식이 문자 체계에서 벗어나 구술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 말이 ‘입말처럼 자연스럽고 몸에 달라붙는 책’의 시대가 디지털과 네트워크에 힘입어 도래할 수도 있음을 강조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디지털 환경을 기회 요인으로 생각할수록 문화도 산업도 커질 수 있을 터이다. 이를테면 종이책 없는 기존 출판사를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현대의 출판사가 본래 인쇄소가 아니라 콘텐츠 기업이란 점을 상기한다면 디지털 체제 적응과 시장 기회 창출 방안은 보다 명료해질 것이다.
사실 인류의 매체 발달사를 보면 기록 매체인 책이 진화하는 결정적인 변수는 몇 가지로 집약된다. 쉽게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의 이용, 경제성, 보존성, 가독성이 그것이다. 나아가 독서 자료를 실어 나르는 매체의 정합성 측면에서는 지속 가능성, 대체 불가능성, 소유와 장식의 현시(顯示) 욕구, 매체 생태계의 강력한 가치사슬 유지 본능, 사회적 관습과 문화까지 두루 고려해야 한다. 저자가 과소평가한 종이책의 장점이나 저력이 상당수 여기에 해당한다.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아마존닷컴은 전자책에 모든 것을 걸었다. 종이책을 파는 사람 모두를 실업자로 만들 것처럼 맹렬한 기세로 디지털 사업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인위적으로 전자책 시장을 만들기 위해 거대 출판사들을 협박하고 출판과 서점 생태계의 파괴자가 됐다. 그렇지만 오락장과 같은 태블릿PC가 아니라 킨들을 통해 이용자들에게 디지털 도서관 환경을 제공한 것은 아마존닷컴의 공적이라 하겠다.
책, 출판산업, 독서를 둘러싼 디지털 패러다임 전환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매체 변환 논란에도 불구하고 읽기 습관이라는 사회자본을 키워가야 한다는 명제에는 변함이 없다. 위기는 전자책이 아니라 독서문화의 지반과 지형도에 있다.
백원근 <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