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6월17일 오후 4시40분

[마켓인사이트] '신용등급 조작' 검은 커넥션 첫 적발
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이 평가 대상 기업과 신용등급을 미리 조율한 뒤 해당 회사와 계약을 맺는 이른바 ‘등급 장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문이 무성하던 신평사와 기업 간 ‘검은 커넥션’이 감독당국에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상당한 파문이 예상된다.

17일 금융감독원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평사들이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혐의를 잡고 각 사의 해당 평가담당 임직원에게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 계획을 통보했다. 금감원은 각 신평사의 소명을 들은 뒤 다음달 해당 안건을 제재심의위원회에 올려 징계 내용을 확정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사기성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 등으로 다수의 피해자가 나온 동양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작년 말부터 3대 신평사에 대해 특별검사를 벌였다.

금감원 조사 결과 A신평사는 애초 B기업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강등할 계획이었지만 “조만간 회사가 지급보증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 계획이 있으니 도와달라”는 B사 요청을 받고 ABCP 발행 이후로 등급 조정을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B사는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했지만, 해당 ABCP를 산 투자자는 이후 신용등급 하락으로 손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C신평사는 신용평가 업무를 수주하기 위해 “좋은 등급을 줄 테니 신용평가 업무를 맡겨달라”고 기업들에 제안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업들이 예상 신용등급을 묻고 가장 높은 등급을 제시한 신평사와 계약을 맺는 소위 ‘등급 쇼핑’도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평사가 ‘예상 신용등급’을 알려주고 계약을 따내는 것은 자본시장법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사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은 신평사들이 엄정한 잣대로 신용등급을 매길 수 있도록 ‘평가조직과 영업조직 분리’를 강제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신평사 관계자는 “신평사의 평가 오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평가 대상 기업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접촉했을 뿐 ‘등급 장사’를 한 사실은 없다”고 반박했다.

오상헌/하헌형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