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국공항의 늑장 공시
한국거래소 공시 접수 마감시간(오후 6시)을 한참 넘긴 지난 13일(금요일) 밤 9시35분.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국공항이 두 건의 공시를 연달아 올렸다. 전(前) 직원이 2004~2005년 회사 보유 계열사 주식을 몰래 빼내 759억원 규모의 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이 기소를 했고, 관할 세무서가 이를 문제삼아 거액의 추징금을 물렸다는 내용이다. 직원이 얻은 매매 차익이 사실상 회사에 귀속됐을 수 있으니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게 세무당국의 판단이다. 매매차익은 20억여원에 불과했지만, 횡령한 주식을 사실상의 ‘증여’로 간주하다 보니 추징액은 무려 450억원에 달했다.

10년 전에 일어난 일을 회사가 까맣게 몰랐다는 것도 황당한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투자자들에게 ‘이실직고’한 공시 시점이다. 직원 횡령 사건은 이미 지난 4월 검찰 기소까지 된 일이기 때문이다. 무려 2개월이 지난 ‘늑장 공시’인 셈이다. 더욱이 한국공항은 공시 접수 마감시간인 오후 6시 가까이에 추징금 관련 공시내용을 제출하면서 중요한 횡령기소 사실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가 거래소 지시로 별도 공시했다. 횡령사실을 눈에 잘 안 띄게 하려고 한 거라는 의혹을 받을 만하다.

한국공항은 “횡령된 주식을 모두 돌려받아 손해가 없다고 보고 공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세무서에서 추징금을 매긴 만큼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횡령액도 무려 759억원으로 자기자본의 31.2%에 달한다. 상장사는 자기자본 5% 이상의 횡령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공시를 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인터넷 주식매매 사이트 등에 “회사의 허술한 재무 감독을 그냥 모른 채 넘어갈 뻔했다”며 비난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올 4윌 이후에 한국공항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들은 횡령 사실을 알았다면 주식을 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국공항 주식이 향후 거래되면서 주가가 급락한다면 투자자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된다. 자칫 모 회사의 브랜드까지 훼손될 수 있다.

증권거래소는 여러 차례 문제로 지적된 ‘야밤’ 기습공시에 대한 근본적 처방을 고민해야 한다.

임도원 증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