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굼뜬 지성' 한국은행…국민 불만 왜 높아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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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건에 맞춰 '유연한 사고' 필요
'예비금융통화위' 설치 고려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예비금융통화위' 설치 고려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금리가 또 동결됐다. 13개월째다. 금리 이외 다른 통화정책 수단도 특별하게 추진된 게 없다. 세월호 참사 등으로 꽉 막힌 경제 숨통을 터주기 위해 ‘뭔가 시원한 정책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던 국민의 기대는 또다시 무너졌다. 한국은행의 ‘굼뜬 지성’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곳곳에서 ‘요즘 금융통화위원들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터져나오고 있다.
물가 안정이 최우선 목표란 점에서 한은도 나름대로 금리 동결 이유는 갖고 있다. 전임 김중수 총재 시절에는 ‘우리의 물가는 총공급 측 요인에 의해 더 좌우된다’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원자재값이 올라 잠재 물가불안 요인이 있을 때는 금리를 내릴 수 없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작년 5월 이후 원자재값이 하향 안정된 점을 감안하면 한은의 예측력에 문제가 있다는 게 그대로 드러났다.
최근 들어서는 금리 동결의 이유를 총수요 측 요인으로 돌렸다. 앞으로 성장률이 4%에 근접해 ‘인플레 갭’이 예상되는 만큼 일부에서 주장하는 금리 인하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된 시대에서는 ‘월마트 효과’ 때문에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물가가 과거처럼 오르지 못한다. 각국 중앙은행이 당혹스러워하는 ‘디스인플레이션 현상’이다. 한은도 마찬가지다.
최근처럼 금리 인상과 인하 요인이 공존할 때도 한은은 우선순위를 정해 금리를 비롯한 통화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이때 우선순위는 마땅히 정책 수용층이 당면한 경제현안을 풀어주는 쪽으로 둬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 등 대부분 중앙은행은 물가안정 외에 경제성장, 고용창출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중시하고 있다.
정책 수용층이 처한 여건과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다수 국내 기업들의 최대 현안은 ‘원화 절상’이다. 각국의 통화 가치가 금리 차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인 만큼 원화 가치를 절상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명목과 실질금리 모두 우리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들이 금리 인하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다.
국민은 부동산 경기가 언제 살아날지가 최대 관심사다. 세계 부동산이 거품을 우려할 정도로 활황을 보이는 것은 각국 중앙은행의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 때문이다. 하지만 한은이 금리를 내렸다든가, 돈을 시원하게 풀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오래됐다. 재산의 70% 정도를 부동산에 쏟아부은 국민의 눈에 한은은 마뜩지 않을 수밖에 없다.
금리를 꼭 0.25%포인트씩 내려야 할 필요는 없다. 금리를 내리는 데에는 ‘큰 걸음(big step)’ ‘보통 걸음(ordinary or normal step)’ ‘짧은 걸음(short or baby step)’ 방식이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6월 정책회의에서 0.1%포인트 내린 것처럼 의지와 뜻만 있다면 상징적으로 폭을 줄여서 금리를 내리면 된다.
금리를 쉽게 변경할 수 없다면 다른 통화정책 수단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보다 운신의 폭이 더 좁은 다른 중앙은행은 한동안 쓰지 않았던 ‘지급준비율 정책’을 다시 손질해 쓰고 있다. Fed는 새로운 환경에 맞춰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단기채 매도 및 장기채 매입)’로 장기금리를 내려 기업들의 설비투자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한은과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고 판단될 경우 ‘도덕적 설득(moral suasion)’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정책의 성패는 정책당국이 보낸 신호를 수용층이 의도대로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다. 한은도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모든 정책은 손발이 맞아야 한다. 정책 결정과 집행은 시장과 국민 입장에서 만들어야 한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고,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중심으로 하는 2기 경제팀도 꾸려졌다. 통화정책 주무부서인 한은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이쯤해서 우리도 미국의 예비공개시장위원회(SOMC·Shadow Open Market Committee)에 상응하는 ‘예비금융통화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 SOMC는 금융학자와 시장참여자로 구성된 순수 민간기구다. 1973년 당시 로체스터대학 교수였던 칼 브루너 등에 의해 SOMC가 구성된 것은 금리 결정과 같은 통화정책은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만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만 전적으로 맡겨 놓을 수 없다는 데서 출발했다.
SOMC의 건의는 구속력은 없지만, 직간접적으로 미국 통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쳐 왔다. FOMC가 금리 변경을 선제적으로 단행할 수 있었고, 다른 기관을 의식하지 않고 통화정책의 핵심인 △적시성 △투명성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SOMC의 역할이 컸다. 우리 통화정책 추진에 있어서도 이런 기구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물가 안정이 최우선 목표란 점에서 한은도 나름대로 금리 동결 이유는 갖고 있다. 전임 김중수 총재 시절에는 ‘우리의 물가는 총공급 측 요인에 의해 더 좌우된다’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원자재값이 올라 잠재 물가불안 요인이 있을 때는 금리를 내릴 수 없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작년 5월 이후 원자재값이 하향 안정된 점을 감안하면 한은의 예측력에 문제가 있다는 게 그대로 드러났다.
최근 들어서는 금리 동결의 이유를 총수요 측 요인으로 돌렸다. 앞으로 성장률이 4%에 근접해 ‘인플레 갭’이 예상되는 만큼 일부에서 주장하는 금리 인하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된 시대에서는 ‘월마트 효과’ 때문에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물가가 과거처럼 오르지 못한다. 각국 중앙은행이 당혹스러워하는 ‘디스인플레이션 현상’이다. 한은도 마찬가지다.
최근처럼 금리 인상과 인하 요인이 공존할 때도 한은은 우선순위를 정해 금리를 비롯한 통화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이때 우선순위는 마땅히 정책 수용층이 당면한 경제현안을 풀어주는 쪽으로 둬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 등 대부분 중앙은행은 물가안정 외에 경제성장, 고용창출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중시하고 있다.
정책 수용층이 처한 여건과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다수 국내 기업들의 최대 현안은 ‘원화 절상’이다. 각국의 통화 가치가 금리 차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인 만큼 원화 가치를 절상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명목과 실질금리 모두 우리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들이 금리 인하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다.
국민은 부동산 경기가 언제 살아날지가 최대 관심사다. 세계 부동산이 거품을 우려할 정도로 활황을 보이는 것은 각국 중앙은행의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 때문이다. 하지만 한은이 금리를 내렸다든가, 돈을 시원하게 풀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오래됐다. 재산의 70% 정도를 부동산에 쏟아부은 국민의 눈에 한은은 마뜩지 않을 수밖에 없다.
금리를 꼭 0.25%포인트씩 내려야 할 필요는 없다. 금리를 내리는 데에는 ‘큰 걸음(big step)’ ‘보통 걸음(ordinary or normal step)’ ‘짧은 걸음(short or baby step)’ 방식이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6월 정책회의에서 0.1%포인트 내린 것처럼 의지와 뜻만 있다면 상징적으로 폭을 줄여서 금리를 내리면 된다.
금리를 쉽게 변경할 수 없다면 다른 통화정책 수단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보다 운신의 폭이 더 좁은 다른 중앙은행은 한동안 쓰지 않았던 ‘지급준비율 정책’을 다시 손질해 쓰고 있다. Fed는 새로운 환경에 맞춰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단기채 매도 및 장기채 매입)’로 장기금리를 내려 기업들의 설비투자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한은과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고 판단될 경우 ‘도덕적 설득(moral suasion)’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정책의 성패는 정책당국이 보낸 신호를 수용층이 의도대로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다. 한은도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모든 정책은 손발이 맞아야 한다. 정책 결정과 집행은 시장과 국민 입장에서 만들어야 한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고,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중심으로 하는 2기 경제팀도 꾸려졌다. 통화정책 주무부서인 한은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이쯤해서 우리도 미국의 예비공개시장위원회(SOMC·Shadow Open Market Committee)에 상응하는 ‘예비금융통화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 SOMC는 금융학자와 시장참여자로 구성된 순수 민간기구다. 1973년 당시 로체스터대학 교수였던 칼 브루너 등에 의해 SOMC가 구성된 것은 금리 결정과 같은 통화정책은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만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만 전적으로 맡겨 놓을 수 없다는 데서 출발했다.
SOMC의 건의는 구속력은 없지만, 직간접적으로 미국 통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쳐 왔다. FOMC가 금리 변경을 선제적으로 단행할 수 있었고, 다른 기관을 의식하지 않고 통화정책의 핵심인 △적시성 △투명성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SOMC의 역할이 컸다. 우리 통화정책 추진에 있어서도 이런 기구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