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과학계와 언론이 최근 ‘위대한 발명품’을 두고 들썩이고 있습니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 컴퓨터가 탄생했다”는 게 핵심인데요.

2014년 6월 9일 영국 레딩대의 발표를 인용한 외신에 따르면 미국에 사는 러시아 출신의 블라디미르 베셀로프와 우크라이나 출신 유진 뎀첸코가 공동으로 개발한 슈퍼컴퓨터 ‘유진 구스트만’이 영국 왕립학회 주최의 인공지능 판정 컨테스트에서 ‘기준선’을 처음 통과했습니다.

유진 구스트만은 이번 행사에서 5분간 대화를 나눈 심사위원 30명 가운데 10명 (33%)을 자신이 컴퓨터라는 사실을 모르게 하는데 성공했다는 게 외신 보도입니다. 이는 현대 과학계에서 인공지능 컴퓨터의 판별 기준으로 삼는 이른바 ‘튜링 테스트’를 넘어선 거란 설명이고요.

튜링 테스트는 영국의 천재 수학자로 컴퓨터의 ‘실질적’ 시조로 불리는 앨런 튜링이 1950년대에 발표한 논문에서 비롯했다 합니다. 튜링은 논문들에서 “진정한 인공지능 컴퓨터는 사람이 5분간 질문을 할 수 있고, 이럴 경우 질문하는 사람이 30% 이상 확률로 컴퓨터를 인간으로 착각하는 수준”이라고 예시했다는 얘긴데요.

그러나 이 발표가 나오고 하루 뒤 “유진 구스트만이 진짜 인공지능 컴퓨터인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또 다른 외신의 전언입니다. 예컨대 앨런 튜링은 애초에 ‘30% 이상 속이면 인공지능 컴퓨터’란 주장을 한 적이 없다는 반박이 그 하나입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60년여 전 제안된 튜링 테스트는 21세기 인공지능 판별 척도로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때문에 논란이 앞으로 크게 확산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유진 구스트만이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 컴퓨터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번 일은 2012년에 탄생 100주년을 지나고 올해 2014년으로 별세 60주년을 맞은 앨런 튜링의 천재성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잘 알려지다시피 앨런 튜링은 '보편적 기계'란 개념을 제안해 컴퓨터와 인공지능 (AI)의 실질적 창시자로 꼽힙니다. 그는 제2차세계대전 중 '콜로서스 Colossus‘라는 기계식 암호 해독기를 만들어 독일군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했습니다. 이는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지요.

흥미로운 사실 가운데 앨런 튜링의 이름이 지면 등에 등장할 때 마다 빠지지 않는 과일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반쯤 베어 물은 사과’인데요. 실제 국내 한 신문은 오늘 6월 10일자 ‘앨런 튜링은 누구?’라는 기사에서 이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왜일까?

거대한 업적을 통해 현대 역사를 바꾼 이 천재가 1954년, 41세를 일기로 짧은 생애를 마감한 자리 (침대 옆 테이블)에 반쯤 베어 먹은 사과가 놓여 있었다고 해서입니다.

그의 죽음을 조사한 영국 경찰은 당시 (치사량을 정확하게 계산한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물고?) 그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는 기록입니다. 그는 또 살아 생전 백설공주에 나오는 '독사과'에 집착했다는 설도 따릅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한 이 같은 자살 결론은 2012년 6월 23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에서 ‘자살 아닌 사고사 가능성’이 제기돼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당시 외신보도에 따르면 학계는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이 사과에 청산가리 성분이 들어있는 지 검사 조차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 자살 결론에 대한 증거 부족을 그 이유로 제시했습니다.

아무튼 튜링 주검 근처에서 발견된 반쯤 베어 문 이 사과는 이후 색다른 ‘전설’ 탄생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세를 더했는데요. 바로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앨런 튜링의 이 같은 슬픈 죽음을 기려 자사의 두 번째 로고를 ‘한 입 베어 문 사과’로 했다는 설입니다. 오늘 10일자 국내 신문의 기사 내용도 그것이고요.

이 같은 애플 로고의 앨런 튜링설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 지 확인되지 않은 채 상당히 오랜 시간 국내외에서 기정사실 처럼 통해 왔지요. 한국에선 심지어 TV프로그램 (MBC 서프라이즈)에도 내용이 소개돼 확산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는 누군가 약간 오버해 창작한 거라는 사실이 스티브 잡스의 사후 밝혀졌습니다. 이를 밝힌 주인공은 스티브 잡스의 전기 ‘스티브 잡스’를 쓴 월터 아이작슨 입니다.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한 '서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제) 딸이 어디에선가 앨런 튜링 관련설을 듣고와 물어 보기에 스티브 잡스에게 이메일을 보내 확인해 보았다. 잡스는 답신을 통해 ‘내가 그런 사실까지 염두에 두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그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컴퓨터 시조이자 전쟁 영웅으로 평가되는 앨런 튜링을 마흔 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이든 사고사든) 죽음으로 이끈 배경은 무엇일까? 그가 전쟁이 끝난 뒤 ‘동성애자’란 죄목으로 체포돼 남자에겐 죽음보다 더 치욕적인 '화학적 거세' 형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남자 동성애자를 비하할 때 '패것 faggot‘이라는 말을 쓴다고 하는데요. 원래 뜻이 ‘땔감’ 또는 ‘장작’인 이 단어는 영국에서 과거 동성애자를 화형에 처할 때 사용한 ‘장작’에서 유래했습니다.

동성애자에 대해 이처럼 관용적이지 않은 영국의 전통은 2차세계대전 이후에도 마찬가지 였다는 겁니다.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해 강력하게 처벌했다는 얘긴데요. 앨런 튜링은 동성애자임이 밝혀진 뒤 ‘영어 [囹圄-감옥에 감]의 몸’이 되거나 ‘화학적 거세’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강요당했으며 연구를 위해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여자처럼 젖가슴이 나오고 목소리도 여성스러워 지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는 그가 결국 죽음을 택한 이유로 지적되고요. 영국의 동성애 금지법은 그가 사망한 지 10년여의 세월이 흐른 1967년에 비로소 폐지됐습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2013년 12월 23일자로 앨런 튜링의 동성애죄에 대해 사면했습니다. 앨런 튜링의 가슴에 찍힌 ‘동성애자’란 주홍글씨가 그의 사후 59년 만에 마침내 떨어진 것입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