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시간 있다가 다시 오시겠어요? 아직 회사에서 새 지침이 안 내려와서….” 지난 주말 경기 안양시에 있는 한 통신사 대리점을 찾은 A씨는 ‘정중한’ 문전박대를 당했다. “휴대폰을 바꾸겠다는데도 나중에 오라길래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했어요.”

휴대폰 시장이 다시 과열이다. 통신회사가 대리점에 내려보내는 판매지침은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바뀌기 일쑤다. 보조금 규모는 그럴 때마다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한다. 100만원을 훌쩍 넘는 화끈한 보조금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대리점에서 ‘때에 따라’ 손님을 가리는 이유다. 휴대폰 제조회사들도 과열된 시장에 기름을 붓고 있다. 신제품 출시 일자가 겹치면서 제조사가 지급하는 보조금인 ‘장려금’ 규모도 대폭 커졌다. “지금이 휴대폰을 바꿀 최적기다.” 통신시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속삭임이다.
○신형 휴대폰값 웃도는 보조금

휴대폰 시장엔 일찌감치 ‘5월 대란설’이 나돌았다. 영업정지에서 풀려난 통신 3사가 치열한 마케팅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지금까진 예언이 맞아들어가는 분위기다. 통신 3사가 모두 정상영업을 시작한 지난달 20일의 번호이동 건수는 5만7154건에 달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장 과열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는 2만4000건의 두 배를 훨씬 넘는 규모다.

첫날은 몸풀기에 불과했다. 하루 뒤인 21일엔 곧바로 7만건에 육박했고, 정상영업 첫 주말인 24, 25일엔 10만건에 달하는 가입자가 통신회사를 갈아탔다. 보다 못한 방통위가 26일 시장에 경고 메시지를 던졌지만 예전과 달리 파괴력이 크지 않았다. 지난달 30일까지 하루 평균 번호이동 건수는 여전히 5만건을 웃돌았다. 한 대리점 관계자는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보조금이 횡행하고 있다”며 “한때는 120만~130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이 풀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신형 휴대폰인 ‘갤럭시S5’와 ‘G3’ 출고가는 90만원에 못 미친다. 단말기를 공짜로 팔더라도 대리점엔 수십만원의 돈이 남는다. 일명 ‘마이너스폰’의 등장이다. 문제는 이 같은 혜택이 골고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통신사 관계자는 “‘호갱님’이 공짜폰 고객의 할부금을 대신 내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호갱(호구+고객)은 제값 주고 단말기를 사는 어수룩한 소비자를 일컫는 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치킨게임’

과도한 보조금은 고스란히 통신회사의 손해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죽기살기식 치킨게임은 오히려 도를 더하는 모습이다. 통신사 관계자는 “시장을 과열시킬 만한 요인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두 모이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우선 통신업계 사상 가장 길었던 영업정지의 여파가 주범으로 꼽힌다. 통신 3사는 지난 3월부터 돌아가며 단독 영업을 했다. 그때마다 나머지 두 경쟁사는 ‘집토끼 이탈’을 눈뜨고 바라만 봤다. 10년 이상 지속됐던 ‘5 대 3 대 2’ 구도도 위태롭다. 후발주자인 LG유플러스는 지난달 창사 이래 처음 시장점유율 20%를 돌파한 반면 KT는 30% 선이 무너졌다. SK텔레콤은 간신히 50%를 유지했지만, 타격이 작지 않았다. 영업정지라는 족쇄가 풀리자마자 ‘총동원령’이 떨어진 건 당연한 수순이다.

마침 제조업체들의 신제품 출시도 잇따랐다. 인하된 출고가에다 장려금까지 얹어서라도 자사 제품을 많이 밀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초 통과된 ‘단말기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도 과열을 촉발한 요인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통신사는 물론 제조사의 장려금도 제재 대상에 포함된다. 단통법의 시행일자는 오는 10월1일. 제조사든 통신사든 그 전에 승부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

방통위 관계자는 “최근의 보조금 지급 여부와 규모를 분석해 조만간 제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면서도 “포화상태인 현 통신 시장에서 불법 보조금을 완전히 뿌리 뽑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