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를 타고 홋카이도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유명한 관광지보다 이름 없는 풀들이 피어있는 대지가 더 아름다웠고,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머물 수 있어서 좋았다. 렌터카를 타고 둘러본 4박5일 홋카이도 여행은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고가산책로
고가산책로
하얀 눈을 인 산과 푸른 밭

신치토세 공항에서 렌터카를 받고 길을 떠나니 익숙한 듯 다른 풍경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 문득 눈이 환해진다. 마치 노르웨이의 산맥도로를 타는 것 같은 눈부신 원시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홋카이도는 자연이 스스로 빛나는 곳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길을 따라 150㎞ 떨어진 홋카이도 동쪽 끝 도가치의 시골마을 나카사쓰 나이에 도착하니 잘 생긴 미송들이 쭉쭉 뻗어 있는 독일풍의 전원지대가 펼쳐진다. 페리엔도르프다. ‘휴가의 마을’이라는 뜻의 이 전원지대에는 90개가 넘는 코티지(통나무집)들이 숲속에 세워져 있다. 페리엔도르프의 풍경은 낮과 밤이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도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과 푸른 빛의 밭이 뚜렷하게 대조를 이룬다.

쿠시로 습지를 볼 수 있는 노롯코 관광열차.
쿠시로 습지를 볼 수 있는 노롯코 관광열차.
페리엔도르프에서 2시간 정도 가면 구시로 역이 나타난다. 구시로 역에서는 후라노~비에이 구간을 왕복하는 노롯코 관광열차가 명물이다. 노롯코 관광열차를 타는 이유는 구시로 습지를 보기 위해서다. 일본에서 가장 큰 구시로 습지는 1980년 국제습지조약인 람사르 조약에 가입하면서 보호지로 지정된 일본의 자연유산이다. 천연기념물인 두루미를 비롯해 무려 2000여종의 동물들이 서식하는 자연의 보고다.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갈대와 하천, 호수와 늪지대가 차례로 펼쳐진다. 녹색의 향연이 약간 지루해질 즈음 하얀색 두루미가 떼를 지어 군무를 펼친다. 열차의 속도는 경치를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도록 시속 30㎞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달린다. 이상 저온 때문에 바람은 약간 쌀쌀하지만 콧속으로 스며드는 대자연의 향기가 은근하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차를 타고 1시간30분 정도 가니 어디선가 매캐한 유황 냄새가 몰려온다. 유황산(硫黃山)인 이오잔이다. 산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연기가 솟아오르고, 노란색 유황 지대에서 지하수가 끓어오르는 소리가 마치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것 같다.
아름다운 해변과 설산이 이어지는 시레토코 고개는 드라이브 명소로 이름이 높다.
아름다운 해변과 설산이 이어지는 시레토코 고개는 드라이브 명소로 이름이 높다.
마슈 호수의 청록색 매혹

시레토코 5호(湖) 주변 풍경.
시레토코 5호(湖) 주변 풍경.
홋카이도 도동에는 다양한 호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호수는 산꼭대기의 마슈호수다. 청색을 띠고 있어 ‘마슈블루’로 불리는 이 호수는 일본에서도 가장 맑은 호수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 이어 두 번째로 투명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마슈호수의 푸른 빛을 볼 수 없었다. 산을 향해 올라가는 도중 안개가 스멀거리며 산 위로 돌격했다. 호숫가에 도착하니 이미 호수는 안개가 점령해 버렸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차를 몰고 홋카이도의 동쪽 끝이자 대지의 끝으로 불리는 시레토코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시레토코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관광지다. 그중에서 호수 5개를 보는 트레킹 코스의 인기가 가장 높다. 호수 주변에는 홋카이도의 대표 동물인 불곰이 살고 있다. 홋카이도 전역에 600마리 정도 있는 불곰은 호수 주변에 6~7마리가 살고 있지만 5월이 발정기여서 곰과 마주치면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투어 인솔자는 곰을 만나면 절대 동요하지 말고, 소리를 지르거나 뛰어서 도망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두려움과 설렘이 반반씩 섞인 채 조심스럽게 트레킹 코스에 오르니 곰이 올라간 나무와 이동로가 보였다. 인솔자인 시레마쓰는 곰이 나무에 살고 있는 벌레를 좋아해 거대한 앞발로 나무 속을 파고 벌레를 잡아 먹는다고 설명했다. 시레토코 5호에는 곰과 사슴 등의 동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아한 풍광을 지닌 호수가 자리 잡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호수는 산에 둘러싸인 채 고요한 미소를 흘려 보냈다.

스스로 빛나는 자연, 아칸호수

홋카이도 자연 여행의 끝은 아칸호수다. 시레토코 아래 쿠시로 시에 있는 아칸호수는 오아칸 산이 분화해 만들어진 것으로 둘레 30㎞, 최대 수심 45m에 이른다. 거대한 호수는 바다처럼 광대하다. 호수 주변에는 많은 이들이 보트를 타거나 낚시를 하며 고즈넉한 시간을 보낸다.

아칸호수의 명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마리모라는 작은 녹조다. 파래처럼 생긴 작은 녹조가 마치 둥근 공처럼 생겨서 ‘해조구’, 일본말로 마리모라고 불렀다고 한다. 콩자반처럼 작은 크기의 마리모는 1년에 5~10㎜씩 성장해 100~150년이 되면 야구공만해진다. 마리모는 홋카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이 처음 발견했다. 마리모에는 슬픈 사랑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아칸호 주변에 살던 아이누 족장의 딸이 자기 집의 하인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아이누족의 엄한 신분제로 인해 그 사랑은 이뤄질 수 없었다. 딸이 말을 듣지 않자 족장은 아칸호수에 투신했고, 이를 전해 들은 딸과 하인 청년 역시 호수에 몸을 던졌다. 이들의 영혼이 신기한 모양의 해조로 변했으니 이것이 ‘마리모’라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어려움을 이기고 소망을 이루라는 상징으로 마리모를 선물한다.

호수를 따라 어느덧 어둠이 몰려왔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별들이 쏟아질 듯 가득하다. 별들은 호숫가에도 떨어지고 마음속에도 떨어져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주변 볼거리

신선한 회덮밥 사케오야코동.
신선한 회덮밥 사케오야코동.
삿포로 근처의 오타루는 꼭 들려볼 만한 여행지다. 영화 러브레터의 고장이기도 한 이곳은 겨울에 가도 운치가 있지만 피서여행지로도 그만이다. 오타루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운하와 오르골 박물관. 유럽의 운하를 닮은 오타루 운하는 석조창고단지가 죽 늘어서 있고 길 왼편에는 현대식 호텔이 있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저녁이 되면 가스등에 불이 들어오고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변한다. 오르골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다양한 오르골이 전시되어 있다. 물론 구입할 수도 있다.

삿포로에서 들러볼 만한 곳은 삿포로 맥주 박물관. 1869년 메이지 시대부터 시작된 기나긴 맥주의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도록 했다. 시음도 할 수 있다. 박물관에서만 파는 삿포로 가이타쿠시(개척사)맥주를 200엔에 시음할 수 있다. 맥주 티켓을 구입하면 플레인치즈나 크래커 같은 안주를 무료로 준다. 관람료 무료.

렌터카 여행 필수팁!

홋카이도는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지만 워낙 면적이 넓어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 해외여행객들 사이에 렌터카를 이용한 여행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보다 기름값이 저렴한 데다 (휘발유 1L당 기준 1600원 내외) 해외여행객을 위한 할인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홋카이도 익스프레스웨이 패스HEP(Hokkaido Expressway Pass)라 불리는 고속도로 정액 요금제 상품을 이용하면 고속도로 이용료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한국의 하이패스처럼 정해진 기간만큼 자유롭게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이다. HEP을 구매하면 현금을 받는 구간이 아니라 자동으로 HEP를 읽는 ETC(Electronic Toll Collection System)를 통과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용 일수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데 2일은 3600엔, 5일의 경우 6700엔이며 그 기간 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국제공항이 있는 삿포로에서 130km 거리에 위치한 아사히카와까지 톨게이트 비용만 3000엔 이상인 것을 감안할 때 평균 40-50% 이상 저렴한 셈이다. 도요타 닛산 등 일본 주요 렌터카의 홋카이도 각 지점에서 신청할 수 있다. 여권 필수. HEP 한국어 안내 페이지(e-nexco.co.jp/news/hep/k/)를 참조하면 좀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에나프투어 홋카이도 렌터카 여행상품

일본 전문 여행사 에나프투어(enaftour.co.kr)는 렌터카를 이용해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캠핑 휴양형 상품을 내놓았다. ‘삿포로 오타루 렌터카 3박4일’ 상품은 원켄빌리지와 오토캠핑장에서 묶으며 홋카이도의 풍성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오타루에 들러 오르골 박물관, 오타루 운하 등을 구경할 수 있는 매력적인 상품이다.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 높은 니세코 사코탄 해안을 달려보는 것도 이색적인 체험이다. 삿포로 시내관광도 포함돼 있어 캠핑과 드라이브, 온천까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상품이다. 64만9000원부터.
日 홋카이도  렌터카 여행
‘도동 대자연체험 5일’은 홋카이도의 속살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여행상품이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받은 후 홋카이도의 동쪽인 오비히로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구시로 대습원으로 가 노롯코라는 관광열차를 타고 돌아본 후 아칸호수를 관람한다. 물빛이 물감처럼 아름다운 마슈호와 네이처크루즈를 타고 고래를 보는 이색적인 체험도 할 수 있다. 시레토코로 이동해 원시림 속에서 호수와 불곰을 볼 수 있는 트레킹도 준비돼 있다. 독일식 통나무 집, 온천호텔과 콘도미니엄 등 다양한 숙소에서 번갈아 가며 숙박을 할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매력이다.114만9000원부터. 6일 체험은 124만9000원부터. (02)337-3088

홋카이도=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취재협조: 일본관광청, 일본관광청 캠페인 사이트 (www.jroute.or.kr)
日 홋카이도  렌터카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