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저 바람 타고 온 ‘큰손’ 한국인 … “일본이야? 한국이야?”
지난 27일 일본 도쿄 오다이바의 쇼핑몰 다이버시티 도쿄플라자는 사람들로 붐볐다. 2012년 문을 연 다이버시티는 일본 및 해외 브랜드 매장 150여 개와 건담까페 · 영화 · 전시 등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갖춘 초대형 복합쇼핑몰이다.
양 손에 가득 쇼핑백을 든 이들은 대부분 한국인 또는 중국인이었다. 쇼핑몰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렸다. 일본인지 한국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20~30대 일본인 여성들도 있었지만 물건 값을 계산하는 이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부지런히 물건을 골라 담는 곳은 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100엔샵 ‘다이소’뿐이다.
인근 다른 쇼핑몰도 상황은 비슷했다. 오다이바에는 다이버시티 외에 아쿠아시티, 덱스 도쿄 비치, 비너스포트 등 대형 쇼핑몰들이 몰려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들은 이들 쇼핑몰을 옮겨 다니며 부지런히 지갑을 열었다.
한 옷가게 점원은 한국인 손님이 익숙한 듯 서툰 한국어 몇 마디를 던지기도 했다. 그는 “중국이나 한국 여성들이 옷을 많이 사간다” 며 “최근 손님들이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만난 교민들은 최근 한국인 관광객 수가 부쩍 늘어난 것이 엔저 현상의 영향이라고 입을 모아다. 엔화 가치는 일본의 통화 완화 정책인 ‘아베노믹스’ 영향으로 최근 1년 이상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2012년 100엔 당 1300~1400원이던 원·엔 환율은 최근 100엔 당 1000원 대까지 떨어졌다.
엔저 현상으로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선 ‘일본 물가는 비싸다’란 인식이 많이 사라졌다. 실제로 쇼핑몰 내 옷가게의 경우 브랜드별로 차이가 있었지만 일본 영캐주얼 브랜드 기준 3000~4000엔(한화 3만~4만 원)이면 티셔츠 한 장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일본인 줄서 먹는 라멘집… “싸고 맛있다. 외식 잘 안해”
일본인 소비자들을 많이 발견한 곳은 오다이바에서 전철로 40분 떨어진 시부야였다. 이날 오후 도쿄 시부야 골목. 길인지 가게인지 구분이 안 되는 곳에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다. 특별한 인테리어 없이 단출하고 소박한 라멘집이었다. 가게 안에는 근처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깨를 맞댄 채 라면을 먹고 있다.
라멘집 앞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과 넥타이 부대가 줄을 서있다. 기자에게 라멘집을 추천해준 일본인은 이 곳이 현지인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통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시부야 근처에는 IT관련 회사들이 많아 젊은 회사원들이 많다” 며 “저렴한 가격에 맛도 좋아 회사원 학생 할 것 없이 점심시간마다 줄을 서서 먹는다”고 말했다.
음식 맛을 확인하기 전에 메뉴판의 ‘저렴한 가격’이 눈에 들어왔다. 라멘 가격은 600~700엔 정도. 오다이바 쇼핑몰 내 식당은 물론 시부야 근처 라멘집과 비교해 훨씬 저렴했다. 오다이바 쇼핑몰 내 음식 가격은 대부분 1000엔을 넘었다.
라멘 양도 꽤 많았다. 일본인들은 소식하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푸짐했다. 면은 1회 무료 리필도 해줬다. 사람들의 발길이 모이는 이유가 짐작됐다. 일본인 미토마 요시호 씨는 “일본 경제는 아직 어렵다. 사람들은 외식이나 쇼핑에 돈을 잘 쓰지 않고 투자자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한국 경제 상황은 어떤지 되물었다. 이어 “일본 기업들이 올 들어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늘리긴 했다” 며 “그렇다고 이를 좋은 신호로 받아들이는 낙관적인 분위기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돼지뼈로 육수를 낸 라멘 국물 맛은 어딘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싼 가격에 일본 서민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 주는 라멘 한 그릇에서 한국 돼지국밥이 떠오른 건 기자의 기분 탓이었을까.
한경닷컴 박희진 기자 hotimp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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