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 회장 내정자의 사퇴, 은행 전산개발팀장의 자살, 지주 사외이사의 중도 사퇴, 은행 임직원에 대한 대규모 징계….

2009년 12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국민은행 및 KB금융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일들의 배경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전산시스템 교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주 불거진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 관련 국민은행과 KB금융의 일부 경영진, 감사, 사외이사 간 갈등은 4년 전 일들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분석이다.
KB, 4년 전에도 전산교체 이전투구
2009년 12월 초 KB금융 차기 회장에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이 내정된 후 금감원은 국민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KB금융의 한 사외이사는 국민은행의 차세대 전산시스템 기종 선정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사외이사가 IBM 기기 선정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이를 포함해 여러 이유로 강 내정자는 사퇴했다.

이듬해 이어진 금감원의 검사 과정에서 사외이사였던 조담 KB금융 이사회 의장도 중도 사퇴했다. 이어 국민은행 전산개발팀장이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금감원의 고강도 검사 때문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해 8월 금감원은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사외이사를 포함해 전·현직 임직원 88명을 징계했다.

때문에 4년이 지나 또 전산시스템 교체를 두고 갈등이 일어난 것은 비슷한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당시와 다른 것은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이 오히려 IBM 기종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국민은행 내에서 전산시스템에 대한 IBM의 영향력이 상당한 것이 사실”이라며 “은행 내 IBM과 가까운 사람들을 중심으로 전산시스템 교체 시도 때마다 갈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정 정보기술(IT) 업체에 대한 추종 세력이 있다는 말이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이번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싸고 또 외압이나 리베이트가 있었을 가능성을 두고 검사를 진행 중이다. IBM뿐 아니라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당초 은행 측이 선정한 유닉스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는 업체들과 은행 및 지주사 임직원과의 관계도 들여다볼 방침이다. 일부에서는 전산업체와 은행 및 지주사 임직원 간 부적절한 관계보다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내부 권력 다툼을 벌이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21일 전산시스템 교체 관련 입찰제안서를 받았으나 SK C&C만 단독 입찰해 오는 29일까지 추가 신청을 받기로 한 상태다.

김일규/장창민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