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해외에 두면 매각가격에 0 하나 더 붙어"
해외로 본사를 옮기거나 아예 창업 때부터 본사를 외국에 설립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대부분 사업 기반은 국내지만, 본사 주소지는 해외에 두는 것이다. 본사가 미국 등에 있으면 해외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를 받기 쉬울 뿐 아니라 기업 매각 때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어서다. 각종 사업 규제에서 자유롭고, 세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매력이다.
지난해 일본 최대 인터넷 오픈마켓인 라쿠텐에 2200억원에 팔린 비키가 좋은 본보기가 됐다. 비키는 호창성·문지원 씨 부부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해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긴 동영상 사이트 업체다. 국내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최근 한국에 본사가 있는 올라웍스(얼굴인식 기술 벤처)는 350억원, 엔써즈(이미지 인식 기술벤처)는 360억원, 매드스마트(모바일 메신저 개발벤처)는 170억원에 팔렸지만 해외에 본사가 있었다면 매각가격에 0이 하나 더 붙었을 것”이라며 “요즘 창업자들은 창업할 때부터 본사를 해외에 세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비키를 매각했던 호창성·문지원 대표는 새로 창업한 관심사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빙글’도 본사를 해외에 뒀다. 싱가포르에 대부분 직원이 있었던 비키와 달리 한국에서 개발과 서비스 등이 이뤄지지만 본사는 미국에 등록했다. 나중에 높은 가격에 회사를 매각하기 위한 포석이다.
소셜커머스 ‘쿠팡’을 서비스하는 포워드벤처스도 한국에서만 사업을 벌이지만 본사 소재지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있다. 델라웨어주는 기업친화적인 제도와 낮은 세금 때문에 구글, 애플, 월마트, 벅셔헤서웨이, JP모간, 포드 등 주요 미국 기업들이 이곳에 페이퍼 컴퍼니를 두고 있다. 미국 벤처캐피털로부터 주로 투자받은 포워드벤처스는 미국 나스닥에서 기업공개(IPO)를 할 예정이다.
또 수학 교육 스타트업 노리도 본사는 미국에 있지만 직원들은 대부분 한국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소셜 쇼핑 스타트업 티드도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본사는 미국 뉴욕에 뒀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는 창업하기는 쉬워도 IPO를 하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수익을 실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기술로 한국 스타트업들이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지만 한국에 있다는 이유로 투자로 연결되지 못하는 점도 해외로 본사를 옮기는 이유로 꼽힌다. 국내 엔젤투자사 더벤처스의 김현진 파트너는 “엄격한 외국환거래법 등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면 6개월 정도 걸린다”며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두고 돈세탁을 하는 폐단을 막기 위한 것이란 점은 이해하지만 시대에 맞게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