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을 맞아 <하이틴 잡앤조이 1618>은 제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묵묵히 바른 교육을 실천하는 전국 열혈교사들을 만나봤다. 전국 특성화고?마이스터고(이하 특?마고)에 재직 중인 교사들이 말하는 ‘교사가 되기까지’, ‘학생들과의 잊지 못할 이야기’ 등등 우리네 스승들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제가 ‘열혈교사’라고요? 교사로서 당연한 일인데….”>
‘전국 특?마고 열혈 교사’ 취재에 앞서 각 시?도 교육청 담당 장학사들로부터 ‘열혈 교사’ 추천을 받았다. 장학사들이 보낸 수많은 추천교사 명단에 포함된 선생님들은 대부분 자신의 추천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몇몇 교사들은 “교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라며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교사로서 당연한 본분일 것이다. 이번 <1618> 5월호에서 소개하는 ‘특?마고 열혈 교사’들은 교사의 본분을 넘어, 열정이 없으면 이뤄낼 수 없었던 사례를 중심으로 전국 열혈 교사들을 집중 조명했다.
<“교사의 꿈, 아이들이 만들어줬어요”>
경북 안동 출신인 이재남 교사(서울방송고)의 학창시절 장래희망은 교사가 아니었다. 공고를 나와 평생 기술자로 살아갈 생각이었던 그는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열정적인 교사의 길을 걷고 있다.
충남대 전기전자학과를 나온 그는 18개월간의 전기공사 현장 경험을 뒤로한 채 중학교로 발령받았다. 부전공이 수학이었던 이 교사는 서울에 있는 중학교 수학 선생님으로 가게 됐다. “중학교로 발령을 받고 난 다음에도 학교를 언제 그만둘까 하는 생각뿐이었죠. 공사현장에서 일할 때보다 월급도 반절이었고, 당시 ‘전교조’가 만들어지기 전이라 교내 분위기도 안 좋았어요.”
교편을 잡은 지 7년이 지난 어느 날, 이 교사는 서울공고로 발령을 받았다. 서울공고에서 그는 학생들과의 미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제가)공고 출신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남 같지 않았어요. 수학이 아닌 전기전자를 가르치니 재미도 있었고, ‘여기선 내 역할이 있겠구나’ 싶었죠.”
그는 서울공고에서 방송반을 담당하면서 교내 라디오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영상물을 기획해 공모전에 출품하면서 학생들과의 교류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이 교사는 2003년 동호공고(현 서울방송고)로 발령받았다. 발령받은 학교 분위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학교를 둘러싼 주변 인근에서는 학교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고,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학교를 없애겠다는 공약으로 민심을 얻을 정도였다. 학생들 역시 이 교사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여기서 내가 밥벌이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사로서 자책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문득 ‘어차피 이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내가 끌어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스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재정비하던 무렵 방송고로 개편하는 작업에 들어가 2008년 정식으로 방송고로 새 출발하게 됐다. 이 교사를 비롯한 선생님들은 여름방학 동안 동아방송대에서 30시간씩 2년간 연수를 받았다. 방송에 관심 있는 신입생들이 입학하면서 차츰 학교 분위기는 달라졌다. “정말 말하지 못할 정도로 학교 분위기가 어수선했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아이들을 포기할 순 없었죠.”
이후 서울방송고 콘텐츠과 과장을 맡은 이 교사는 영상과에 비해 신입생 지원률이 떨어진 콘텐츠과에 기능영재반을 개설해 2011년 전국기능대회에서 금메달(애니메이션 부문)을 획득하기도 했다. “매일 밤 11~12시까지 학교에서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2011년엔 학교기업(Sound&Light)을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큰돈은 아니지만 수익도 내고 있어요. 요즘같이 행복한 날은 없었던 거 같아요.”
<잊지 못할 제자와의 추억>
전주공고 산?관?학 협력부장을 맡고 있는 정병노 교사는 제자와의 잊지 못할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택시를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급정거를 하더라고요. 택시 앞에 누가 서 있길래 누군가 봤더니 제자였어요. 제가 택시 안에 있는 걸 보고 반가워 택시를 세웠다고 하더군요.”
정 교사는 모두가 힘들던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그냥 보지 못했다. 그는 사비를 털어 아이들의 학창시절 추억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성공해서 ‘선생님 연락처를 물어물어 알아냈어요’ 하면서 울먹거리며 전화가 올 때면 보람도 느끼고 교사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그는 학생들에게 수준 높은 취업처를 찾아주기 위해 공무원반 특별프로그램과 공기업?대기업반 프로그램을 개발해 취업률을 높이고 있다. “아이들이 좋은 곳으로 취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대학 나와도 들어가기 힘든 직장에 우리 학생들이 들어가는 걸 보면 뿌듯합니다.”
<“이건희 회장 덕분에 취업 성공했어요”>
2008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내보낼 국가대표 선발대회에서 서울로봇고 김인목 교사가 지도한 학생들이 1위를 차지했다. 국가대표가 된 것이다. 하지만 대회에 출전하기까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대회 참가를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대회를 준비하고 출전하는 기간이 7~8개월 정도 걸리는데, 입상조차 못하면 아이들에게는 그만큼 시간이 날아가기 때문에 큰 손해거든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강남이라는 지역 특색 탓인지 학부모들의 ‘대학 찬양’은 어느 지역보다 강했다. 학교에서의 지원도 넉넉지 않았다. 김 교사는 사비를 털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늦은 밤까지 연습하고 연구에 매진했다. “이 악물고 할 수밖에 없었어요. 입상을 못하면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피해가 가게 되니까. 그렇게 되면 안 되잖아요.”
결과는 어땠을까. 이듬해 ‘제 40회 캐나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모바일로보틱스 부문에 참가한 서울로봇고 팀은 금메달 획득과 함께 최연소, 최고득점, 대회 MVP를 싹쓸이했다. 학교를 넘어 나라에 영광을 안겨준 큰 성과였다.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정말 기뻤어요.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죠. 묵묵히 따라준 아이들한테 정말 감사했어요.”
김 교사는 금메달 획득 이후의 일화도 털어놨다. “이명박 정부 당시 금메달을 딴 아이들을 청와대로 초청했습니다. 당시 청와대 행사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오셨어요.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메달을 딴 학생을 삼성전자에서 채용하면 어떻겠느냐’고 불쑥 물었는데, 이 회장이 흔쾌히 수락했다는 거예요. 현재 그 학생은 삼성전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1위보다 더 값진 4위>
학생이 교사를 변화시킨 사례도 있다. 2001년 인천전자공고(현 인천전자마이스터고)의 한 학생이 컴퓨터제어 기능반에 들어가고 싶다고 지원했다. 당시 담당교사였던 윤부성 교사는 기능반에 지원한 아이가 성적도 낮고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터라 금방 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윤 교사의 생각은 빗나갔다. 그 학생은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함께 연구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잠재력을 발견해 나갔다. 윤 교사는 “그 아이를 보고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느꼈어요.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때부터 저도 그 아이의 숨어있는 재능을 끄집어내는 데 집중했죠.”
제자의 가능성을 본 윤 교사는 학생과 함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프로그래밍 연구를 이어나갔다. 이듬해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처녀 출전한 인천전자공고는 4위를 입상했다. “전자 분야에서 첫 출전이었고 큰 기대도 안했는데 4위로 입상했죠. 1위보다 더 값진 4위였습니다.”
<시골 학교의 ‘반란’>
지리산 자락에 걸쳐 있는 함양제일고는 진주 같은 도시로 나가려면 자동차를 타고도 1시간 이상 걸리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도내에서 ‘공무원사관학교’로 유명하다. 그 중심에는 윤점이 교사가 있다. 윤 교사는 “몇 년 전 전국에서 고졸 채용 활성화 바람이 불 때도 함양은 모두 진학을 선호했어요. 워낙 시골이고 학부모들도 농공단지 등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많아 아이들이 취업을 한다고 하면 급여는 낮고 일은 힘든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죠.”
학부모들에게 고졸 채용의 인식 변화가 필요했다. 2011년 윤 교사는 전국상업정보실무능력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신청했다. 경험도 없고 실력도 부족했지만, 다른 학교 학생들의 실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회 참가를 통해 아이들에게도 취업문화를 심어준다는 취지였죠. 처음에는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대회나 기업 공채가 뜨면 밤낮 안 가리고 준비하는 습관이 들었어요. 주말이나 방학도 없이 매일 밤 9~10시까지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죠. 그때부터 아이들의 머리 속에도 ‘하면 된다’는 인식이 심어졌어요.”
첫 출전한 전국상업정보실무능력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함양제일고는 같은 해 경제골든벨 은상, EPR분야 동상을 수상했다. 더불어 2011년 1명, 2012년 6명 등 고졸 공무원을 꾸준히 배출해내고 있다. “최근에는 주변 학교에 공무원 시험 컨설팅도 해주고 있어요. 제 꿈은 ‘특성화고 공무원 롤모델 학교’로 만들어 전국에서 ‘고졸 공무원 채용’ 하면 함양제일고가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부산 특?마고를 변화시킨 ‘3총사’>
부산기계공고 정윤규 교사는 2011년을 잊을 수 없다. 정 교사가 가르친 제자인 유예찬 군이 ‘제 41회 런던기능올림픽대회’ 폴리메카닉스 직종에서 국내 최초로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예찬 군은 먼저 2009년에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정 교사는 금메달을 따기까지 2년간 참 힘들었지만 교직생활 중 가장 보람찬 일이었다고 전했다. “기능반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거쳐 갔던 선배들의 부족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가르쳤어요. 예찬이가 적극적으로 따라줬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산공고 최규식 교사는 악착같은 노력으로 취업처를 발굴했다. 주조 분야 기능반을 담당한 최 교사는 기업에서 비인기 분야인 주조 전공 학생들을 부산 인근의 중소기업에 취업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처음에는 업체에서 주조 전공을 좋아하지 않았다”며 “취업을 시키고도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최 교사는 취업한 학생들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기업 인사담당자와 현장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면서 직무를 분석하고 보완하는 등 학생들의 취업 후 관리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꾸준히 지도한 결과 처음에는 반가워하지 않던 기업에서 공장 증설에 새로운 인력이 필요하다고 추가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죠. 교사로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부산진여상 송영대 교사의 ‘지옥훈련’은 교내에서 유명하다. 2007년부터 회계동아리를 만들어 학생들을 지도한 송 교사는 수도권에 비해 열악한 지역 환경을 딛고 ‘전국정보과학경시대회’ 전산회계 고등부 부문 5년 연속 우승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주말이나 방학 없이 매일 저녁까지 훈련을 했어요. 거의 지옥 훈련이었죠. 사실 수도권 학교에 비해 시스템적인 부분이 많이 미흡해 5년 연속 우승은 한국 축구가 브라질을 이긴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밖 ‘열혈교사’ 광주시교육청 이을호 교사>
학교 밖에서도 열혈교사는 있었다. 바로 38세 늦깎이로 교직에 입문한 광주광역시교육청 취업지원센터 이을호 교사다. 이 교사는 대학 졸업 후 자동차회사에 입사해 8년간의 경력을 쌓고, 2002년 경기 이천제일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어 2010년 광주공고로 옮겼고, 2012년부터는 광주시교육청 취업지원센터에서 관할 13개 고등학교의 취업처를 발굴하기 위해 쉼 없이 달리고 있다. “광주공고 근무 당시 가장 보람 있었어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취업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학생들의 취업마인드를 높이기 위해 취업 희망학생 300명에게 취업마인드 함양과 인성교육을 강행했습니다. 또 학부모 취업지원단 활동을 통해 학부모들의 취업에 대한 마인드를 서서히 변화시켰죠.”
열혈 취업 마인드 강화로 주목을 받은 이 교사는 매년 100개가 넘는 기업체를 방문해 취업처를 발굴하고, 전국 17개 취업박람회를 통한 취업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광주만 해도 지방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수업지도보다 생활지도에 시간을 더 할애하고 있어요.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수업지도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취업처를 발굴하는 게 제 사명이죠.
”
♣전국 특·마고 열혈교사 분포도▷서울=이재남(서울방송고), 김인목(서울로봇고), 정광우(동구마케팅고)▷경기도=김순효(삼일상고), 정현주(수원농생명과학고)▷인천=윤부성(인천전자마이스터고)▷전북=정병노(전주공고), 최선홍(원광정보예술고), 김수연(김제자영고)▷전남=이을호(광주공고)▷경북=최창원(구미전자공고)▷경남=윤점이(함양제일고)▷부산=최규식(부산공고), 송영대(부산진여상), 정윤규(부산기계공고)▷울산=김세영(울산마이스터고)▷강원=조종찬(춘천기계공고)▷제주=김상복(한국뷰티고등학교)
강홍민 한경매거진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