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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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월 부산시 중앙동에 자리 잡은 리스회사 ‘부은리스’ 앞에서 한 남자가 직원들에게 끌려 나오고 있었다. 부은리스 노조원 여럿이 그의 팔과 다리를 잡고 문밖으로 강제로 밀어냈다. 지나가는 사람들로서야 곡절을 알 수도 없었지만 내동댕이쳐질 만큼 험한 대우를 받는 이 남자의 태도에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반항하거나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침착한 목소리로 “왜 이러십니까. 한 번 믿어주세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바로 그 남자가 성세환 BS금융지주 회장 겸 부산은행장(62)이다. 외환위기 직후 부산은행 차장 때였던 그는 부실이 커진 부은리스 청산작업에 투입됐다. 부산은행은 부은리스 지분 55%를 갖고 있는 대주주였다. 이 자회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으면 부산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 이하로 떨어져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처지였다.

완강하게 저항하던 부은리스 노조는 진심으로 접근해오는 성 회장의 태도에 결국 손을 들었다. 그는 청산이 최상의 선택이라는 점을 피력했다. 가교회사인 한국리스여신에 넘어가면 상당수 직원을 부산은행 자회사 혹은 한국리스여신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처음에는 그의 말을 믿는 노조원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성 회장의 진지한 모습을 접한 노조원들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 달리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부은리스 직원 절반가량이 새 일자리를 얻었고 청산작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당시의 깔끔한 부은리스 청산 작업은 지금까지도 BS지주 내에서 회자된다. 노조와의 갈등을 푼 것은 성 회장의 타고난 부드러움과 뚝심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진심을 담아 소처럼 우직하게

성 회장은 BS금융 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기획통’이다. 재무와 전략, 기획 등 부문을 두루 거치면서 최고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쌓아왔다. 2011년 BS금융의 지주체제 전환을 진두지휘하며 미래 청사진을 짠 주역이기도 하다. 자산양수도 작업부터 지주 전환 이후의 장기 전략 수립 등의 역할을 도맡았다. 민영화되는 우리은행에서 경남은행을 인수하는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도 전략가로서의 성 회장 면모를 잘 보여준다.

보통 기획력이라고 하면 머리를 잘 써서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성 회장은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로 나오는 게 기획 성과라고 강조한다. 그의 업무스타일에 대해 함께 일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 뒤, 그 결과로 성과를 얻으려 한다고 평한다.

은행 지점장 시절 보여준 영업스타일에서도 그런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성 회장은 부산의 사상공단·녹산공단지점 등을 거치면서 영업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대단한 영업비법이 있었던 건 아니다. 거래처로 만들고 싶은 기업이 생기면 끊임없이 찾아갔다. 최고경영자(CEO)가 자리에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았다. “나를 피하던 사장들도 쉬지 않고 찾아와 명함을 맡겨두고 가는 모습을 좋게 여겨 차 한잔 할 시간을 주고, 그렇게 친해지다 보니 저절로 우량 고객들이 확보되더군요.”

외환위기 당시 경쟁 은행들이 대출을 회수할 때는 오히려 잠재력 있는 고객을 발굴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어려운 때일수록 역발상을 통해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게 그의 비즈니스 철학이다. 성 회장은 “CEO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재기할 기회를 준 뱅커를 잊지 못한다”며 “그렇게 거래를 튼 기업들 덕분에 결과적으로 부산은행도 부실률 낮은 우량 자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소통은 눈높이를 맞추는 것”

경영인의 길은 도전의 연속이다. 요즘 그에게 떨어진 막중한 과제는 인수 막바지 단계인 경남은행과의 시너지를 내는 계획을 치밀하게 마련하는 일이다. 인수가 목적이 아니라 인수 후 지주의 체질을 강화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여야 고생했던 인수 작업이 결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택한 방식은 ‘소통’이다. 성 회장은 직원들과의 접점을 넓히고 허물없이 대하다 보면 진심이 전달되고 앙금도 풀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그가 신입 행원들의 입행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말춤’을 추고,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함께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도 남다르다. 그는 비행기로 서울과 부산을 오갈 때 비즈니스석을 타지 않는다. “은행 고객들은 이코노미석을 타는데 은행장이 비즈니스석을 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고객들에게서 받은 이자로 월급을 받는 사람이 그 돈을 함부로 써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다.

옆자리 승객으로부터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이코노미석을 고집하는 이유다. 자칫 현장에 대한 감이 떨어질까봐 실생활에서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 회장은 은행원으로서 개인적인 삶은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행원으로 출발해 조직의 수장자리에 올랐으니 이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살다 보면 다양한 경영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주는 퇴보…진짜 경쟁은 지금부터”

BS금융지주는 경남은행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요즘 금융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 중 하나다. 경남은행을 인수하면 현재 51조원인 BS금융의 자산은 86조원으로 껑충 뛴다. 인수가 예상대로 오는 9~10월께 마무리되면 KB 신한 하나 농협 등에 이어 5대 금융그룹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성 회장은 “새로운 성장발판이 마련된 데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만 지금부터 더 장기적인 안목과 전략이 절실하다”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인수 성공에 만족하고 안주해서는 미래가 없다는 판단이다.

해외 진출을 꾸준히 준비하는 것도 그런 생각에서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진출 경쟁이 치열한 미얀마에서 자회사인 BS캐피탈이 국내 금융회사 중 처음으로 상반기 할부금융 영업을 개시하게 된 것도 이런 상황판단에 따른 것이다. 결코 지방은행으로 안주하지 않겠다는 뜻을 자주 내비친다.

“내년 이후부터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추가 인수를 검토할 계획입니다. 4대 금융지주 모두 BS금융의 성장에 긴장해야 할 겁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