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보수적인 한국화 영역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던 두 대가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대규모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오는 7월27일까지 ‘수묵인, 남천(南天) 송수남’ 전을, 이천 시립 월전미술관은 ‘남계(南溪) 이규선’ 전을 6월29일까지 각각 연다.
서울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 전시된 고 송수남 화백의 ‘여름나무’.
서울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 전시된 고 송수남 화백의 ‘여름나무’.
지난해 74세로 타계한 송수남의 일생은 끊임없는 실험 정신으로 가득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60년대 국내 서양화단이 서구 현대미술의 전위적 경향을 적극 수용하던 시절 추상표현주의(앵포르멜) 운동으로부터 강한 자극을 받았다. 형상을 거부한 이 운동의 격정적 표현과 자유분방한 붓질 속에서 자연과 사물에서 느낀 감흥을 일필휘지로 쏟아내는 문인화와 유사성을 발견했다. 이후 수묵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남천의 파격적 실험은 곧 정형화된 관념 산수만을 답습하는 한국화단의 보수성에 대한 반발이었다. “중국화, 일본화와 구별되는 한국화의 새로운 방법론을 찾는 길은 수묵의 개발밖에 없다”는 생각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번 전시에는 수묵의 번짐과 얼룩을 이용한 1960년의 추상작업, 강렬한 색채와 섬세한 준법을 결합한 1970년대의 한국풍경 시리즈, 수묵 특유의 미감이 돋보이는 ‘붓의 놀림’ 연작으로 독특한 풍격을 이룩한 1990년와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43점의 대표작이 출품된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은 남천추모사업회와 유족이 기증한 작품을 중심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02)2022-0600

이규선 화백의 ‘시창청공도12’.
이규선 화백의 ‘시창청공도12’.
이규선 역시 한국화가로서 서구 추상화를 받아들였지만 남천과 달리 직선적인 요소가 두드러져 기하학적 추상에 가깝다. 얼핏 보기에 먹으로 그린 몬드리안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추상은 대상을 덜어냄으로써 도달한 단순화로, 서구의 기하학적 추상과는 다르다.

이규선의 실험은 남천보다 다소 늦어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다. 수묵담채로 그린 아동 그림으로 인기를 누리던 그는 기하학적 구조와 절제된 선, 강렬한 색채를 바탕으로 조형적 실험에 나선다. 1990년대 이후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와 대비를 정갈하고 담백한 구성 속에 녹여냈다.

그의 작품 세계에 또 한 번 변화를 준 것은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뒤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문득 영감이 떠올랐다”는 작가는 이때부터 ‘시창청공(詩窓淸供)’과 ‘서창청공(書窓淸供)’ 연작을 그려 나간다. ‘시창’은 마음의 창문을, ‘서창’은 서재의 창문을 의미하며 ‘청공’은 선비들이 애용하던 문방구를 가리킨다. 따라서 ‘시창청공’은 마음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맑고 깨끗한 선비의 물건을 의미하는 셈이다. 남천과 방식은 다르지만 그의 목표점 역시 문인정신의 현대적 계승임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신작 등 대표작 45점이 출품됐다.(031)637-0033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