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2조원 '銀 DLS' 증발 위기
연 판매금액이 1조9000억원(작년기준)에 달하는 국내 ‘은(銀) 관련 파생결합증권(DLS)’ 시장이 실종 위기에 처했다.

런던귀금속시장협회(LBMA)가 ‘국제 은 기준가격(London Silver Midday Fixing)’ 발표를 잠정 중단할 가능성이 커지자 국내 증권사들이 은 관련 DLS 신규 발행을 중단했다. 이미 판매된 은 관련 DLS는 기준가격이 없어지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조기 종료되거나 상품수익률 등이 바뀔 수밖에 없어 투자자들이 큰 혼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사들, ‘은 관련 DLS’ 판매 중단

19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LBMA를 통해 국제 은 기준가격을 공동 결정하는 독일 ‘도이체방크’ 영국 ‘HSBC은행’ 캐나다 ‘뱅크오브노바스코디아’ 등 3개 은행은 “오는 8월15일부터 시세를 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도이체방크 등 일부 은행이 국제 금시세 조작 혐의로 피소된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LBMA는 3개 은행의 시세 중단 결정에 대해 “대안을 찾을 것”이라고 홈페이지에 공시했다.

이에 따라 국내 증권사는 은 DLS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기초자산으로 활용되는 국제 은 가격이 사라질 것에 대비한 조치다. ‘LBMA 국제 은 기준가격’이 기초자산에 포함된 국내 DLS는 2012~2013년 연평균 1조4371억원어치가 팔렸다. 국제 은 가격이 떨어지면서 올 들어 5월까지 3526억원어치가 판매됐다.

한 국내 대형 증권사 DLS부서장은 “현재 LBMA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아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국내 중형 증권사의 파생상품부서장은 “앞으로 공모 상품은 자제하고 사모 상품으로 팔더라도 고객에게 현재 진행 상황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2조원대 미상환 ‘은 DLS’ 영향 받을 듯

더 큰 문제는 판매됐지만 상환되지 않은 상품이다. 대다수 은 관련 DLS는 국제 은 기준가격이 만기(보통 3년) 동안 판매 시점보다 50%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연 7~8%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 구조다.

8월15일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은 관련 DLS 중 아직 상환되지 않아 이번 사태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품 규모는 최소 2조4349억원으로 추정된다. 국제 은 기준가격이 없어지는 최악의 경우엔 고객에게 나눠줄 금액을 정하는 수익률 확정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증권사들은 판매 시 배포하는 투자설명서를 통해 ‘기초자산 폐지 사태’ 시 상품 변경 가능성에 대해 알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만기상환금액이나 만기일 등 상품 구조를 변경할 수 있다고만 돼 있을 뿐이다. 어느 정도의 금액을 어떤 원칙에 따라 배분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기 종료’ 등 증권사의 대응에 손해를 보게 되는 투자자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기초자산을 LBMA 가격에서 ‘제3의 은 가격’으로 바꿔도 투자자들이 납득할지는 미지수다. 증권사들은 내심 금융투자협회가 대응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길 바라고 있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증권사마다 상품 구조가 달라 은 가격이 없어지는 최악의 경우에도 ‘가이드라인’ 등으로 공동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