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많은 실종자들이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구조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가족들은 꿈에도 그리던 모습을 만날 때까지 진도 팽목항을 떠날 수가 없다. 사망을 확인한 유가족들은 주기적으로 밀려오는 슬픔과 분노의 파도에 휩싸여 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다. 생때같은 자식과 피붙이가 정부의 사전 감독부실과 초기 대응 실패, 부패 기업의 무지막지한 돈벌이에 희생됐기 때문이다.
국가의 한계 인정해야
여론의 십자포화 속에 총리와 장관들이 줄줄이 물러서자 청와대는 최후의 보루가 됐다. 유가족들이 유일하게 기댈 언덕, 무너져 내린 억장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다. 이건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비극이다. 우리 사회가 두고두고 감수해야 할 불신과 배덕의 참담함이다.
대국민담화는 이 모든 것을 끌어안는 하나의 모멘텀이다. 국난 극복을 위한 절박한 다짐과 결연한 의지의 결집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정책적 해법은 어느 정도 나와 있다. 실행단계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릴 뿐이다.
때로는 성마른 우리 사회가 그 기다림을 얼마나 용인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국가 대개조라는 큰 용어가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너무 무거우면 자칫 공허해질 수 있다.
근본적으로, 국가(정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슬픔을 치유하고 개인을 구원하는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기만해서는 안된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몰고 온 청해진해운의 종교적 본산, 그 명칭이 ‘구원파’라는 점은 우리를 아연실색게 한다. 구원이라니….
공공의 영역은 전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국민적 질타를 받고 있는 ‘관피아’의 세계에도 옳고 그름, 봉직과 탐욕이 공존하고 있다. 부조리가 있다고 일망타진식으로 공직사회 전체를 결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전면 개각도 생각해볼 문제다. 사람을 바꾸는 일은 쉽다. 개혁의지를 전달하고 국면을 전환하는 데도 용이하다. 하지만 지금껏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같은 사람은 어찌할 건가. 현 시점에서 이 장관만큼 바다의 무서움과 공직의 엄중함에 전율한 공직자가 있을까. 식견과 전문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현장에서 키운 암묵지요 실행능력이다. 대통령이 그의 얘기를 들어보고 교체 여부를 결정했으면 한다. 다른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부담을 피해 갈 길은 없다. 위기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사람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슬퍼하되 주저앉지 말고 처절하게 반성하되 비관하지는 말아야 한다. 유가족들의 슬픔을 부추겨서도 안된다. 오히려 그들이 슬픔 속을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돕고 배려해야 한다. 슬픔이 더 큰 분노로 증폭되지 않도록, 분노가 치유될 수 없는 절망으로 자라나지 않도록 손을 잡아줘야 한다. 그렇게 해야 상처에 새살이 차오르고 모든 국민들이 소중한 일상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