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현모양처 표본' 신사임당
‘현모양처의 표본’ 신사임당은 1504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 기본 서적을 읽었고 한시를 지었다. 자수와 바느질, 그림에 능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적벽도 등을 곧잘 따라 그렸고 특히 풀벌레, 포도 등을 그리는 데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딸들 교육에 전념한 부친의 영향이 컸다.

1522년 정승집 후손인 이원수와 결혼했다. 5남 3녀를 뒀는데 이 중 셋째아들이 율곡 이이다. 장녀 이매창 역시 시와 그림에 큰 재주를 보여 ‘작은 신사임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남편 이원수는 유교 사회에서 여자의 재능이 묻히지 않게 신사임당을 지원하는 넓은 아량을 보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오해가 쌓여 소원해졌다.

1537년 이사 도중 친정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노래한 시조 ‘사친(思親)’은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된다.

잔칫집에서 국이 엎질러져 어떤 부인의 치마가 다 젖었을 때, 신사임당이 그 치마 위에 탐스러운 포도송이 등 그림을 그려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유명한 일화다. 산수도, 초충도 등 다수 작품을 남겼으며 조선 후기 송시열, 윤증 등 대학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1551년 심장병이 심해져 5월17일 세상을 떠났다. 율곡이 유학자들의 존경 대상이 되면서 신사임당은 모성의 상징으로 칭송받았다. 그에 대한 존경과 관심은 현대에도 이어져 여성 최초로 화폐 도안 인물로 선정됐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