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법재판소(ECJ)가 어제 스페인 남성이 구글 링크를 통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자신의 과거 정보를 삭제하도록 구글 측에 요구한 소송에서 남성의 주장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업자에게 개인정보 삭제를 요구하는 소위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를 인정한 판결로는 세계 처음이다. 이 남성은 자신이 관여한 부동산 경매에 관한 10여년 전 신문기사의 구글 링크로 인해 명예가 실추됐다며 법원 측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번 판결은 검색 사이트에 한정된 판결이긴 하지만 인터넷 전반에 걸친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구글 측은 “일반인의 인식과 동떨어진 판결”이라며 반발했다고 한다.

미국은 알 권리를 기본권으로 강조하는 국가인데 반해 EU는 인간의 존엄과 프라이버시, 개인 보호를 우선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EU의 이번 판결에 유럽 국가들은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조치로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미국에선 이해할 수 없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납득이 간다. 구글 외에 페이스북 야후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계는 이번 판결로 산업 자체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국내에선 현행 정보통신망법에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요건으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이 있는 경우로만 제한을 두고 있지만 개인정보가 담긴 글을 본인이 직접 삭제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돼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는 개인 정보의 무분별한 유출이 큰 사회적 파장을 불렀던 것이 얼마 전이다. 인터넷 신상털기는 밥 먹듯 이뤄지고 있다. 신상털기가 가능한 것은 회원가입 등을 명목으로 상시적으로 개인 정보가 수집되고 불법적으로 유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보안과 관리는 엉망이다. 올해 초 카드사의 무차별적 개인정보 유출사건 이후에도 정보는 계속 유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보 산업도 발전해야 하지만 프라이버시의 무분별한 침해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EU재판소의 판결로 세계 인터넷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