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이 참담한 교훈을 뼈에 새겨야 한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세월호 참사에 드러난 우리 민낯
규정을 갖추고도 무시하는 행태
더 큰 참극 막기 위한 자세 갖춰야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
규정을 갖추고도 무시하는 행태
더 큰 참극 막기 위한 자세 갖춰야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
선진국이 다 된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우리의 어이없는 민낯을 보았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억울함 및 유가족들과 온 국민의 슬픔은 하늘에 닿았다. 사고 발생부터 뒤처리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성격의 재난을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으니 이렇게 참담하고 부끄러울 수 없다.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일 안전 수칙은 있었으나 애초부터 없었던 것은 지킬 의지였다. 규정 따위는 무시하고도 지금까지 멀쩡하게 잘 지내오지 않았는가? 기상조건도 순조로운데 이렇게 큰 배가 순식간에 침몰할 것이라고는 정부도 운항사도 선장과 선원들까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어제까지도 잘 다니던 배가 오늘도 같은 식으로 몰았는데 오늘은 침몰하고 말았다. 안전규칙 따위는 무시했어도 별탈이 없었기에 규정 따위는 없어도 되는 것으로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불의의 사태를 당하게 돼 있고 그때는 규정을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규정만 제대로 지켰어도 피할 수 있는 인재였기에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다. 왜 우리는 있는 규정조차 지키지 못할까. 심지어 이번 사태를 보도한 언론조차도 재난보도 준칙을 무시했다고 한다. 세월호 침몰처럼 인명을 눈에 보이게 앗아가지는 않았지만 유족들의 아픈 상처를 들쑤셔댄 무형적 가해는 그에 못지않다. 우리는 왜 규정과 준칙을 갖추고서도 너나없이 이를 무시할까.
아마 많은 규정이 우리 스스로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받아들여 온 선진 문물은 과학기술만이 아니었다. 크게는 사상, 법률, 그리고 제도에서부터 작게는 소소한 안전 수칙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선진국의 모든 것을 학습하고 수용해 왔다. 선진국이 이룩한 사회문화적 성과에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많다. 특히 안전 수칙에는 우리의 폭 좁은 생활 경험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았다.
선진국에서 그렇게 한다니까 채택은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싶으니 그 필요성이 도무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소 노심이 녹아내릴 경우에 대비하는 안전장치는 쓰나미도 없는 한국에는 불필요할 것 같다. 화재는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면 될 일인데 굳이 따로 돈 들여서 비상구를 만들어야 할까. 기상과 파도가 순항을 보증하는데 컨테이너 박스들을 꼭 고정시켜야 하나. 불날 일도 없는데 소방차 진입로라도 주차 좀 하자. 일반인은 물론이고 그것을 방관 또는 외면하는 감독관청의 인식조차 큰 차이가 없으니 각종 수칙이 제대로 시행될 턱이 없다.
우리의 생활 수준을 크게 높인 압축적 고도성장은 사회 부문별 생산 규모가 커지면서 부문 간 연결고리 또한 크게 넓어진 결과다. 과거에는 나와 상관없던 일들이 어느덧 내 생활의 일부가 돼 간다. 각자의 잘못은 각자의 피해로 마무리되던 것이 이제는 한 사람의 잘못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시대가 됐다. 재난과 그 피해 규모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커졌다.
이런 변화를 우리보다 더 먼저 이룩한 선진국들은 대형 재난도 먼저 겪었다. 설마 그런 재앙이 일어날까라고 우리가 의심하는 것처럼 그들도 의심하다가 사고를 당했고 각종 안전 수칙은 그 뼈아픈 경험의 산물이다. 우리는 성장속도가 그들보다 더 빠른 만큼 과거의 경험만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앞으로 줄지어 일어날 것이다. 재난을 감당할 능력은 모자라고 정신자세를 변화에 맞추어 가기는 그만큼 더 어렵다.
한 사람의 잘못이 수많은 사람들을 해치는 사회가 됐는데도 각자 저지른 잘못의 피해는 자신에게만 돌아오리라고 생각하면 사회가 안전불감증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 잘못이 불러올 재난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는데 이것을 못 느끼니 문제다. 지금은 불필요해 보이지만 미래의 대형사고를 대비하는 데 각종 안전 수칙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험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참극이지만 미래의 더 큰 참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세월호의 참담한 교훈을 뼈에 새기자.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일 안전 수칙은 있었으나 애초부터 없었던 것은 지킬 의지였다. 규정 따위는 무시하고도 지금까지 멀쩡하게 잘 지내오지 않았는가? 기상조건도 순조로운데 이렇게 큰 배가 순식간에 침몰할 것이라고는 정부도 운항사도 선장과 선원들까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어제까지도 잘 다니던 배가 오늘도 같은 식으로 몰았는데 오늘은 침몰하고 말았다. 안전규칙 따위는 무시했어도 별탈이 없었기에 규정 따위는 없어도 되는 것으로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불의의 사태를 당하게 돼 있고 그때는 규정을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규정만 제대로 지켰어도 피할 수 있는 인재였기에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다. 왜 우리는 있는 규정조차 지키지 못할까. 심지어 이번 사태를 보도한 언론조차도 재난보도 준칙을 무시했다고 한다. 세월호 침몰처럼 인명을 눈에 보이게 앗아가지는 않았지만 유족들의 아픈 상처를 들쑤셔댄 무형적 가해는 그에 못지않다. 우리는 왜 규정과 준칙을 갖추고서도 너나없이 이를 무시할까.
아마 많은 규정이 우리 스스로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받아들여 온 선진 문물은 과학기술만이 아니었다. 크게는 사상, 법률, 그리고 제도에서부터 작게는 소소한 안전 수칙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선진국의 모든 것을 학습하고 수용해 왔다. 선진국이 이룩한 사회문화적 성과에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많다. 특히 안전 수칙에는 우리의 폭 좁은 생활 경험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았다.
선진국에서 그렇게 한다니까 채택은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싶으니 그 필요성이 도무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소 노심이 녹아내릴 경우에 대비하는 안전장치는 쓰나미도 없는 한국에는 불필요할 것 같다. 화재는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면 될 일인데 굳이 따로 돈 들여서 비상구를 만들어야 할까. 기상과 파도가 순항을 보증하는데 컨테이너 박스들을 꼭 고정시켜야 하나. 불날 일도 없는데 소방차 진입로라도 주차 좀 하자. 일반인은 물론이고 그것을 방관 또는 외면하는 감독관청의 인식조차 큰 차이가 없으니 각종 수칙이 제대로 시행될 턱이 없다.
우리의 생활 수준을 크게 높인 압축적 고도성장은 사회 부문별 생산 규모가 커지면서 부문 간 연결고리 또한 크게 넓어진 결과다. 과거에는 나와 상관없던 일들이 어느덧 내 생활의 일부가 돼 간다. 각자의 잘못은 각자의 피해로 마무리되던 것이 이제는 한 사람의 잘못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시대가 됐다. 재난과 그 피해 규모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커졌다.
이런 변화를 우리보다 더 먼저 이룩한 선진국들은 대형 재난도 먼저 겪었다. 설마 그런 재앙이 일어날까라고 우리가 의심하는 것처럼 그들도 의심하다가 사고를 당했고 각종 안전 수칙은 그 뼈아픈 경험의 산물이다. 우리는 성장속도가 그들보다 더 빠른 만큼 과거의 경험만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앞으로 줄지어 일어날 것이다. 재난을 감당할 능력은 모자라고 정신자세를 변화에 맞추어 가기는 그만큼 더 어렵다.
한 사람의 잘못이 수많은 사람들을 해치는 사회가 됐는데도 각자 저지른 잘못의 피해는 자신에게만 돌아오리라고 생각하면 사회가 안전불감증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 잘못이 불러올 재난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는데 이것을 못 느끼니 문제다. 지금은 불필요해 보이지만 미래의 대형사고를 대비하는 데 각종 안전 수칙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험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참극이지만 미래의 더 큰 참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세월호의 참담한 교훈을 뼈에 새기자.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