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은 폐쇄적이다. 비관세장벽 탓에 샘플조차 보내기 어렵다.”

터키 TV업체 베스텔의 투란 에르도안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5일(현지시간) 세계에서 모인 300여명의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독일 메세베를린이 가전쇼 IFA를 알리기 위해 터키에서 연 글로벌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일본 기자가 “일본과 한국에는 진출하지 않는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세계 경제 15위 한국의 이미지는 순간 땅에 떨어졌다.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에르도안 CEO에게 달려갔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5~6년 전쯤 한국 수입상에게 TV를 팔려고 샘플을 보냈는데, 인증 받기가 어려워 통관조차 못했다는 것이다. 인증 때문이란 설명에 기자는 고개를 떨궜다. 한국의 인증 제도는 국내 기업들도 골머리를 앓는 규제 덩어리 아닌가.

6년 전인 2008년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환경부 노동부 등 14개 부처는 80여개의 법정인증을, 민간기관들도 비슷한 개수의 민간인증을 운영하고 있었다. TV를 수입하려면 전기용품안전인증과 전자파적합등록(MIC)을 받아야 했고, 공공시장 등에 납품하려면 한국산업표준(KS)도 필요했다.

당시 정부는 복잡한 인증을 해결한다며 국가표준·인증 선진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2011년 법정강제인증 17종 가운데 △KPS △검 △MIC 등 13개 인증을 국가통합인증(KC)으로 합쳤다.

그러나 아직도 KC만 따면 되는 게 아니다.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의 예를 들면 공공시장에 참여하려면 KS인증과 친환경인증을 추가로 받아야 한다. 에너지관리공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려면 고효율인증도 따야 한다.

유사·중복인증 문제는 지난달 20일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도 제기됐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07년 3조7000억원이던 기업의 인증비용이 2012년 5조9000억원으로 커졌다.

다시 터키. 기자와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에르도안 CEO는 “지금 상황은 잘 모른다. 한·터키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돼 나아지지 않았겠느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기자는 그에게 “나아졌을 것”이라고 차마 답하기 어려웠다.

벨렉=김현석 산업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