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에 갇힌 대한민국…안전행정은 또 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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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 침몰 대참사
태안캠프·경주리조트 이어 '후진국형 사고'
"효율성보다 안전 먼저 챙기는 인식전환 필요"
태안캠프·경주리조트 이어 '후진국형 사고'
"효율성보다 안전 먼저 챙기는 인식전환 필요"
박근혜 정부는 2013년 3월23일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꿨다.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조치였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로 또다시 ‘안전 불감증’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진도 여객선 침몰 사건은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고, 재난대응 원칙도 지켜지지 않은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해 7월 고교생 5명의 생명을 앗아간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와 7명이 숨진 노량진 공사현장 수몰 사고, 지난 2월 부산외대생 10명이 사망한 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 등에 뒤 이은 초대형 사고라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정부는 지난해 안행부에 안전관리본부를 신설해 국민안전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재난긴급대응단을 출범시키는 등 재난·안전관리 체계를 강화해 왔다. 올해는 인명·재산 피해의 규모를 좌우하는 초기 대응 시간을 줄이기 위해 출동에서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을 설정해 운영하는 골든타임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정부의 각종 조치도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난안전 전문가는 “실종자 규모는 구조작업 등 사고 이후 대책 마련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며 “사고 발생 초기 구조자 중복 합산 등으로 실종자가 실제보다 적게 파악되면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인명 구조에 결정적인 잠수부 투입 시기나 규모 등을 오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재난 전문가들은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안전 불감증의 사슬을 끊어내려면 ‘빨리 빨리’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나라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재난이 가져오는 사회적 손실도 천문학적으로 커진 만큼 효율성보다는 안전을 먼저 챙기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 제일주의로 가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최근 10년 새 일어난 대형 사고의 원인을 토대로 만든 매뉴얼이 있는지 여부와 있었다면 제대로 된 매뉴얼인지, 제대로 지켜졌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며 “이번에도 반짝 대책에 그치면 또다시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선박은 물론 고층 건물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총체적인 안전점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사고에 일부 승무원이 승객을 남겨둔 채 먼저 탈출하는 모럴해저드를 보인 것과 달리 ‘숨은 영웅’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승무원 박지영 씨(22)는 선내 대피방송을 하다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죽음을 맞았다. 사망한 장차웅 군(단원고 2)도 구명조끼를 벗어 친구에게 건네주고 탈출을 도운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사고 현장에서 의로운 죽음을 맞은 사망자들에 대한 의사상자 신청이 있으면 인정 여부를 신속히 결정할 방침이다.
박기호 선임기자/강경민 기자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