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가난한 자 돈 구하고…천한 자 벼슬 구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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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현대 사상가들의 도시에 대한 다양한 담론
사상가들 도시와 문명을 말하다
정현주 외 지음 / 한길사 / 420쪽 / 1만8000원
사상가들 도시와 문명을 말하다
정현주 외 지음 / 한길사 / 420쪽 / 1만8000원
아시아개발은행(ADB)이 2009년 집계한 아시아 도시인구 현황을 보면 한국의 도시인구 비율은 81.5%다.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100%인 곳도 있지만 크기가 작은 땅 대부분이 도시로 만들어진 곳이고, 한국과 자연환경이 비슷한 일본과 대만의 도시인구 비율은 각각 66.5%와 59.1%다. 한국은 1990년 73.8%, 1995년 78.2%로 20년 동안 7%포인트 넘게 증가했다. 수치가 보여주듯 한국은 고도로 도시화된 나라다. 현대인에게 도시란 무엇인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 소속 연구원들이 펴낸 《사상가들 도시와 문명을 말하다》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상가가 지녔던 도시에 대한 생각을 소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도시국가(폴리스)는 개인과 가족보다 앞서며,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로 이뤄진 정치공동체로 규정했다. “도시국가는 본성상 가족과 우리 각자보다 앞선다. 왜냐하면 전체가 필연적으로 부분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몸 전체가 파멸되면 손도 발도 있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50쪽)
한양은 조선의 수도이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한 도시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 생활 중에도 두 아들에게 편지를 써 ‘도성 십리 안에서 살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실학자 이덕무는 조선 후기 한양의 풍경을 담은 한시 ‘성시전도’를 지었다. 성시전도 속에 그려진 한양은 “가난한 자는 돈을 구하고 천한 자는 벼슬을 구하는 곳” “현자도 바보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날이면 날마다 다섯 갈래 세 갈래 길로 개미처럼 몰려드는 곳”이다. 1930년대 도시 경성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박태원이 지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보면 백화점 은행 기차역 양복점 등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도시 풍경이 묘사돼 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책 《도시의 승리》에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도시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교육·기술·인재 같은 인적 자본을 모여들게 하는 곳이 도시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도시의 어두운 그림자를 외면할 수는 없다. 미국의 여성운동가 벨 훅스는 ‘집:저항의 장소’란 글에서 “현대 도시는 젠더나 인종 문제에서 소수자들에게 폭력적 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훅스는 이에 대항하기 위한 저항의 구심점이자 안전공간으로 ‘집’을 꼽았다. 이 글을 소개한 정현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훅스가 본 미국의 도시는 인종 차별이 만연하고 폭력적으로 분열된 곳이었다”며 “서울도 세계 도시를 지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소수자 문제를 안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문명 비평가 루이스 멈퍼드가 쓴 《역사 속의 도시》는 도시 발전의 해법을 다시 공동체에서 찾는다. 멈퍼드는 “도시가 인류의 감성적 교감과 합리적 소통의 임무를 맡았지만 발전 과정에서 인간적 영역은 줄었다”며 “도시의 기능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면 시민공동체들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책에는 도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학자들의 글도 있다. 엥겔스는 도시보다 자본을 비판한 학자다. 그렇지만 자본과 도시는 직접 연결돼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생각한 도시의 모습을 엿보면 우리가 만들어 나갈 도시의 모습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 소속 연구원들이 펴낸 《사상가들 도시와 문명을 말하다》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상가가 지녔던 도시에 대한 생각을 소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도시국가(폴리스)는 개인과 가족보다 앞서며,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로 이뤄진 정치공동체로 규정했다. “도시국가는 본성상 가족과 우리 각자보다 앞선다. 왜냐하면 전체가 필연적으로 부분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몸 전체가 파멸되면 손도 발도 있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50쪽)
한양은 조선의 수도이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한 도시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 생활 중에도 두 아들에게 편지를 써 ‘도성 십리 안에서 살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실학자 이덕무는 조선 후기 한양의 풍경을 담은 한시 ‘성시전도’를 지었다. 성시전도 속에 그려진 한양은 “가난한 자는 돈을 구하고 천한 자는 벼슬을 구하는 곳” “현자도 바보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날이면 날마다 다섯 갈래 세 갈래 길로 개미처럼 몰려드는 곳”이다. 1930년대 도시 경성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박태원이 지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보면 백화점 은행 기차역 양복점 등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도시 풍경이 묘사돼 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책 《도시의 승리》에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도시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교육·기술·인재 같은 인적 자본을 모여들게 하는 곳이 도시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도시의 어두운 그림자를 외면할 수는 없다. 미국의 여성운동가 벨 훅스는 ‘집:저항의 장소’란 글에서 “현대 도시는 젠더나 인종 문제에서 소수자들에게 폭력적 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훅스는 이에 대항하기 위한 저항의 구심점이자 안전공간으로 ‘집’을 꼽았다. 이 글을 소개한 정현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훅스가 본 미국의 도시는 인종 차별이 만연하고 폭력적으로 분열된 곳이었다”며 “서울도 세계 도시를 지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소수자 문제를 안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문명 비평가 루이스 멈퍼드가 쓴 《역사 속의 도시》는 도시 발전의 해법을 다시 공동체에서 찾는다. 멈퍼드는 “도시가 인류의 감성적 교감과 합리적 소통의 임무를 맡았지만 발전 과정에서 인간적 영역은 줄었다”며 “도시의 기능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면 시민공동체들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책에는 도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학자들의 글도 있다. 엥겔스는 도시보다 자본을 비판한 학자다. 그렇지만 자본과 도시는 직접 연결돼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생각한 도시의 모습을 엿보면 우리가 만들어 나갈 도시의 모습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