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증권사 독무대 된 대형M&A 시장
대형 인수합병(M&A)이나 굵직한 공기업의 자산 매각 중개를 외국 증권사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2012년 이후 인수가격 5000억원 이상인 ‘메가딜’ 10건 중 국내 증권사가 중개에 참여한 것은 두 건뿐이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앞세운 외국계 증권사는 중소형 M&A시장도 독식할 태세다. 국내 증권사들은 실적 부진에다 구조조정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M&A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

14일 한경 자본시장 전문 매체인 마켓인사이트 분석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는 2012년 이후 성사된 5000억원 이상의 대형 M&A(완료 기준) 10건 가운데 공동자문사로 두 건의 거래에만 관여했다. 이 두 건도 은행들이 출자전환을 통해 갖고 있던 기업의 주식을 되파는 과정에서 계열 증권사들에 참여 기회를 준 것에 불과하다. 우리은행의 ‘채권단 거래’에 우리투자증권이 공동자문사로 끼는 식이다.

그나마 채권단 거래가 사라진 작년 이후로는 대형 거래에 국내 증권사 이름이 하나도 오르지 못했다. 오비맥주 ADT캡스 ING생명 등 대형 매각작업에 참여한 15개 증권사는 모두 외국계였다.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의 해외 자산 매각자문사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 등 외국계 일색이었다. 정영채 우리투자증권 IB부문 대표는 “M&A시장엔 외국계 증권사와 구조조정 매물을 많이 보유한 산업은행 M&A실만 남을 것이란 우스개 아닌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투자증권 현대증권 등 대형 업체들이 매물로 나오는 등 증권사들이 움츠러든 것과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 없는 국내 기업 간 M&A 중개업무까지 외국계 증권사가 싹쓸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가열되고 있는 LIG손해보험 인수전의 자문사 7곳도 골드만삭스 JP모간 등 모두 외국계다. NH농협금융지주의 우리투자증권 등 인수도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등 외국계 증권사들의 중개로 이뤄졌다.

국내證 구조조정 → IB 축소 → 경쟁력 약화 '악순환'

외국 증권사 독무대 된 대형M&A 시장
M&A 중개시장에서 글로벌 네트워크가 강한 외국계 증권사가 강세를 보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처럼 국내 증권사들이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될 정도는 아니었다. 초대형 거래는 외국계 증권사가 주도했지만, 중형 M&A는 국내 증권사와 회계법인이 참여해왔다. 어느 정도 시장을 분점하는 경계가 존재했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외국계 증권사들은 중형 M&A 분야까지 치고 들어왔다. 중개수수료가 낮다는 이유로 과거엔 거들떠보지 않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M&A시장에도 진출했다.

이에 반해 국내 증권사들은 구조조정 회오리에 휩쓸리며 안방을 내주고 있다. ‘IB 빅3’인 우리투자증권과 삼성증권 KDB대우증권은 매물로 나오거나 실적 부진으로 위축됐었다.

우리투자증권과 대우증권은 수년째 매각 대상이 되면서 불확실성이란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임직원을 줄이고 점포를 축소하는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할 정도로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영업수익에서 IB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5년간 2~3%에 정체돼 있을 정도다.

증권업계는 이런 추세라면 국내 증권사들이 국내 IB시장에서 아예 퇴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트랙레코드(IB 거래실적)를 꾸준히 쌓아도 경쟁이 될까 말까 한데, ‘구조조정→IB 조직 및 인력 축소→경쟁력 약화’의 악순환에서 수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JP모간 한국법인의 임석정 대표는 2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국내 대표 증권사의 IB부문 대표 중에선 3년을 넘긴 사람이 없다”며 “전문인력마저 줄어들고 있어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