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에는 이미 무분별한 의원 입법을 막기 위한 조항이 있다. 하지만 관련 규칙이 마련되지 않아 실질적으로는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 됐다.

국회법 제83조의 2에는 ‘상당한 규모의 예산 또는 기금상의 조치를 수반하는 법안을 심사하는 상임위원회는 미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돼 있다. 해당 상임위와 예결위는 20일 이내에 협의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기간 연장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현재 법안 심사 시 예결위와 사전 협의를 하는 상임위는 없다. 상당한 규모의 예산은 얼마를 의미하는지 등을 국회규칙으로 정하게 돼 있으나 아직 관련 규칙을 만들지 않아서다. 국회 스스로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 놓고도 규칙을 제정하지 않아 시행이 안 되고 있다.

사문화된 이 조항을 부활시키기 위해 국회규칙을 통해 어떤 법안을 협의 대상으로 할 것인지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를 들어 ‘향후 5년간 500억원 이상의 재정부담을 수반하는 법안’ ‘특별회계기금 설치와 같이 재정의 변화를 초래하는 법안’ 등을 예결위와의 협의 대상으로 정하는 식이다.

국회는 아니지만 정부에선 방만한 재정사업을 막기 위한 장치로 ‘예비타당성조사’(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대상)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이 역시 개별 사업이 국회 통과 과정에서 정치 논리에 휘둘려 유명무실 되는 사례가 많다.

정부 관계자는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타당성 없음’이라는 판정을 받았는데도 정치인들의 ‘지역구 챙기기’ 때문에 부활해 강행하는 사업이 적지 않다”며 “국회 스스로 통제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정부로선 제어할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