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쾌우첩이란 제목은 한 왕이 무산 신녀의 유혹에 빠졌다고 하는 데서 유래됐다. 이후 무산이란 단어는 남녀 간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상징적 용어로 쓰였다. 글항아리 제공
무산쾌우첩이란 제목은 한 왕이 무산 신녀의 유혹에 빠졌다고 하는 데서 유래됐다. 이후 무산이란 단어는 남녀 간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상징적 용어로 쓰였다. 글항아리 제공
조선은 기록의 나라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주요 국가 행사를 세밀화로 기록한 의궤를 비롯해 정치 군사 사회 예술 지리 교육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림을 남겼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펴낸 《그림으로 본 조선》은 그림을 통해 조선과 조선인의 삶과 생각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려는 시도다. 정병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구운몽’을 중심으로 소설 속에 들어간 삽화의 의미를, 책임기획을 맡은 이영경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윤리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서의 ‘삼강행실도’를 분석했다. 11명의 전문가가 조선 각 분야에서 나타나는 그림들을 읽어준다.

사람은 ‘나’를 알면 ‘세계’는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 조선 사람들은 고대 중국의 영향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을 갖고 있었다. 퇴계 이황은 이를 한 장의 그림으로 쉽게 설명하기 위해 ‘태극도’와 ‘천명도’를 그렸다. 요즘 말로 하자면 일종의 인포그래픽인 셈이다. 이후 서양 과학의 전파로 땅이 둥글다는 것을 알게 된 학자들은 충격에 휩싸였지만 우주관을 보완하기 위해 ‘하늘의 기(氣)가 물체를 지구 중심으로 밀기 때문에 남반구에도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다’는 논리를 만들었다. 김석문의 ‘대곡역학도’ 등에 이런 논리가 담겨 있다.

국방에서도 그림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임진왜란에서 조총의 위력을 실감한 조선은 명나라의 전투 기술을 적용했다. 명군은 대량의 화포와 불화살로 적의 기세를 꺾은 뒤 단병기를 든 군사들로 근접전을 벌였다. 조선은 이런 명군의 ‘절강병법’을 받아들여 왜군에 대응키로 했다. 절강병법을 혼합한 새로운 무예를 보급하기 위해 1598년 편찬한 것이 한국 역사상 최초의 무예서인 ‘무예제보’다. 노영구 국방대 군사전략학부 교수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대규모 전쟁을 겪었음에도 조선이 독립 왕조를 유지했던 것은 적정 규모의 군사력을 확보해 이를 적극적으로 운용한 결과”라며 “무예도에 나타난 그림들은 단순한 무술 동작의 표시가 아닌 국방 정책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의 마음을 솔직하게 잡아끄는 장면은 춘화(春畵)다. 춘화는 단순히 음란한 그림이 아니다. 조선 후기에는 윤리적 규제에 얽매인 사람의 삶을 해방시키려는 힘이 생기고 있었다. 김헌선 경기대 교수는 춘화를 중세적 윤리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이를 표현하려는 사상적 전환이라고 평가한다. 인간의 몸을 향한 열정과 욕망을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보고, 자유로운 표현을 위해 억압에 맞선 결과물로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이 새롭다.

‘그림으로 본 조선’이란 교양 과목의 수강생처럼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면 그림이 사람의 사고를 어떻게 나타내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된다. 그림을 다룬 책인 만큼 컬러 도판도 다양한데, 이 그림들만 봐도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