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 주변 지역에 공장
[취재수첩] 규제완화 실적 챙기기 급급한 기재부
을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합니다.”

지난 20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주재 ‘규제개혁 끝장토론’. 물류기업 선광의 심충식 부회장은 “항만 인근에 수출입 관련 공장을 세울 수 있다면 물류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이같이 요청했다.

끝장토론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선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 관계자들 사이에선 심 부회장 발언의 해석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심 부회장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항만 배후부지에 공장을 세울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인데 이는 현행 항만법 내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만 배후부지’가 아니라 ‘항만 인근’에 공장 설립을 원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결론을 내지 못한 기재부는 지난 25일 심 부회장에게 연락해 ‘의중’을 물어봤고, 그는 ‘수도권정비법을 풀어 항만 배후부지 인근에도 제조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미’였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 27일 내놓은 끝장토론 후속 조치엔 이런 내용이 쏙 빠졌다. 대신 ‘항만 배후단지에 공장 설립을 허용할 필요성이 제기돼 제조업 입주 요건을 더 완화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동시에 해당 과제는 ‘후속 조치가 잘된 과제’ 중 하나로 분류됐다. 심 부회장의 의도를 확인했음에도 공무원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방향’으로 규제가 완화된 것이다.

지방의 반발이 심한 수도권정비계획법을 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심 부회장의 발언을 유리하게 해석해 규제를 풀었다는 생색을 낸 셈이다. 심 부회장의 요청은 무시되고 그가 원하지도 않은 배후단지 제조업 입주 요건 규제만 손댔다. 하지만 항만 배후부지에 제조업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것은 항만 배후부지의 본래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 북항 배후물류부지의 경우 입주한 전체 13개 기업 중 12개(92.3%)가 제조업체다.

박 대통령은 임기 내에 규제를 20%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그럼에도 공무원의 ‘숫자놀음’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공무원들의 실적 챙기기 행태를 보니 이번에도 규제완화가 허언(虛言)에 그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김우섭 경제부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