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미술품 수집 ABC
미술품 수집가들에게는 꿈 같은 얘기다. 미술품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이미 1970년대 초부터 본격화됐다. 뉴욕 택시업계 제왕인 로버트 스컬이 1973년 소더비경매에 내놓은 작품들은 하나의 신호탄이었다. 이날 스컬은 작품당 적게는 수십 배, 많게는 수백 배의 수익을 거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물론 모든 미술품 수집가가 이런 대박을 터뜨리는 것은 아니다. 대박은 준비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천운’이다. 자신만의 안목으로 좋은 작품을 수집하다 보면 자연스레 수익이 따르기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술품을 수집하려는 입문자는 먼저 자신의 수집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집안을 장식하거나 자신의 정서적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굳이 시장 흐름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투자를 염두에 둔 수집이라면 치밀한 사전준비는 필수다. 먼저 미술사에 대한 기본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무조건 갤러리로 달려가 좋은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문가에게만 의존해서는 결코 좋은 수집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몰개성하고 잡다한 백화점식 컬렉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감식안을 키워나가야 한다. 미술이 어떻게 출현했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 전체적인 뼈대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공부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취향이 어느 시대 혹은 어느 작가에게 쏠리는지 알게 된다.
정평 있는 입문서 몇 권 정도 갖춰 놓고 틈틈이 공부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보는 온라인상에서도 얻을 수 있다. 특히 풍부한 시각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세기 이전의 서양미술 쪽은 ‘아트시클로피디아(www.artcyclopedia.com)’가 가장 풍성한 정보를 제공한다. 작가, 작품이미지, 작품 소장처, 참고문헌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세계 유수 미술관 홈페이지와 링크돼 있어 편리하다. 현대미술 쪽은 아트시(artsy.net)나 아트넷(www.artnet.com), 아트뉴스(www.artnews.com)를 방문하는 게 좋다. 국내 작가 정보는 한국사립미술관협회가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코리안아티스트프로젝트(www.koreanartistproject.com)가 큰 도움이 된다. 가상현실 미술관과 작가의 동영상을 만날 수 있다. 문화센터의 전문 강좌를 수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틈틈이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방문해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책과 모니터로 들여다보는 작품은 실제 작품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붓을 휘두르며 만들어낸 캔버스의 우둘투둘한 질감은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다. 작품의 크기도 마찬가지다. 렘브란트의 명화 ‘야경’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직접 마주해 보라. 그 엄청난 크기에 압도돼 책에서 본 손바닥만 한 이미지를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에 휩싸일 것이다.
자 이제 작품을 구입할 차례다.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 대표인 래리 가고시안은 “컬렉터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작품을 구매해 작품과 함께 지내봐야 자신에게 맞는 취향과 컬렉팅 기술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금방 질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서서히 진가를 드러내는 작품도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알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미술품을 구매함으로써 이제 당신은 예술가의 든든한 지지자가 된다. 비록 투자마인드에서 출발한다 해도 당신은 미술생태계, 더 나아가 문화생태계를 구성하는 건강한 구성인자가 되는 것이다. 당신이 작품을 사줘야 작가는 창작을 계속할 수 있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예술가의 정서적 가치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품 구입은 개인적 동기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사회를 떠받치는 건강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