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 라이프] 윤주화 사장, 삼성 패션사업 구원투수로…'스피드 경영' 돌직구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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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오피스
삼성전자 안살림 챙겨온 'SCM의 달인'
윤주화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
SCM 개념을 만들다
생산-영업 고질적 다툼, '3일 확정' 생산체제 선언…전체 생산성 2배로 올라
답은 현장에 있다
'안 팔리면 할인' 더는 안 통해…2주에 한 번 의류 기획, 철저히 현장과 고객 반영
삼성전자 안살림 챙겨온 'SCM의 달인'
윤주화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
SCM 개념을 만들다
생산-영업 고질적 다툼, '3일 확정' 생산체제 선언…전체 생산성 2배로 올라
답은 현장에 있다
'안 팔리면 할인' 더는 안 통해…2주에 한 번 의류 기획, 철저히 현장과 고객 반영
지난 5일 한 매체가 ‘갤럭시S5 130만대 폐기설’을 보도했다. ‘삼성전자가 문제가 생긴 초기물량을 없애기로 했다’는 꽤 충격적 내용이었다.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이 “아직 생산도 안 하고 있는데 뭔 말이냐. 예정대로 4월11일 출시한다”고 밝혀 결국 오보로 드러났고 정정보도가 뒤따랐다.
신 사장의 말은 첫 달 1000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는 갤럭시S5가 출시 한 달가량을 앞두고 아직 생산조차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이는 삼성전자의 공급망 관리(SCM)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전 세계 협력사에 부품을 주문해 조립하고, 다시 전 세계 통신사·유통망에 공급하기까지 한 달이면 충분하다는 얘기다.
이런 삼성전자 SCM을 구축한 사람이 윤주화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이다.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이던 그는 2012년 말부터 패션사업을 맡아 패션에서도 SCM을 구축하기 위해 뛰고 있다.
삼성전자 경쟁력의 원천은 SCM
SCM은 언제 어떤 제품·서비스를 만들어 공급할지 판단하고, 그 판단을 협력사부터 유통망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해 동시에 자원을 투입하는 게 핵심이다. SCM이 효율적이지 못하면 낭비가 생긴다. 원자재 공급자부터 1·2·3차 부품 협력사 등을 거치는 각 생산단계마다 재고가 쌓일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2000년대 초 SCM 구축에 엄청난 돈을 투입했다. 삼성전자도 효율적 SCM 없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 아래 2002년 SCM 구축에 나섰다.
당시 경영기획실 전무로 승진한 윤 사장에게 이를 맡긴 건 자재관리부터 시작해 현장·실무를 꿰고 있는데다, 통계학과(성균관대) 출신으로 숫자에 밝고 치밀해서다. 여기에 1988년부터 재무(관리)를 맡아 업무 프로세스 등 회사의 큰 골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2년여 동안 SCM의 개념을 만들고 프로세스를 파악해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헛돌았다. 문제는 생산부문과 영업부문이 서로 믿질 못하는 것이었다. 매장에서 팔린 상품은 정확히 입력되지 않았다. 공장에선 미리 생산한 뒤 밀어내기를 하고, 수시로 생산계획을 바꿨다. 생산과 영업부문이 재고와 공급 부족 책임을 미루던 악습은 1994년 전사적자원관리(ERP) 도입 이후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었다.
2004년 어느 날, 윤 사장은 전 세계 지·법인장을 화상회의 앞으로 불러모았다. “앞으로 본사와 지사, 판매와 생산법인 간 의사결정은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합니다. 이를 어길 경우 옷 벗을 각오를 하십시오.”
시스템이 자동화되니 일부 생산법인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판매 속도만큼 물건을 만들어 줘야 하는 데 역량이 안되는 공장들이 이를 받쳐주지 못했다. 그러자 잘 팔리는 물건이 아닌, 만들 수 있는 물건만 만들어 생산 대수를 채우던 버릇이 다시 살아났다. 재고가 발생하고, 협력사들은 어떤 부품을 납품해야 할지 몰라 대기해야 했다.
그때 윤 사장이 도입한 게 ‘3일 확정생산 체제’다. 사흘이면 부품 주문부터 생산까지 가능하다고 판단한 윤 사장은 일단 생산계획이 확정되면 3일간 바꾸지 못하게 했다. 이러다 보니 협력사는 마음 놓고 부품을 만들 수 있게 됐고, 전체적인 생산성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이런 작업을 하는 동안 윤 사장은 3~4년간 주말이 없었다. 분기별로 해외 영업법인들을 찾아 1박2일 콘퍼런스를 하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강의했다. SCM을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윤 사장은 2004년 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0년 상무가 된 지 4년 만이었다. 2009년 말 CFO에 올라, 부사장 때부터 삼성전자 내 3명뿐인 등기이사에 등재됐으며 2010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큰 형님’의 변신은 무죄
삼성 ‘재무통’은 통상 입이 걸다. 일이 많고 고된데다 ‘우리가 삼성을 책임진다’는 문화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관리의 삼성’이란 표현에 걸맞게 CFO들은 재무뿐 아니라 인사, 기획, 관리 등 많은 업무를 담당한다.
이런 선상에서 보면 윤 사장은 좀 다르다. 재무통 중에서 드물게도 ‘큰 형님’으로 불린다. 부드럽고 합리적인 성격인데다, 부하 직원들의 말을 경청한다. 많이 웃고 표정도 온화하다.
윤 사장은 2012년 말 삼성에버랜드(당시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맡은 뒤 옷차림을 확 바꿨다. 통 넓은 바지에 검정 구두, 어두운 색상의 재킷 등 전형적인 ‘사장님 패션’이었던 그는 딱 붙는 바지와 스트라이프 무늬 재킷을 즐겨 입는다. 머플러와 구두의 색도 ‘깔맞춤’하고 다닌다. 유연한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다. 윤 사장과 함께 30년 가까이 일해온 한 사장급 임원은 그를 “원칙주의자이면서도 유연하다”고 한 마디로 평했다. 원칙주의자란 말은 ‘룰은 지킨다’는 얘기다. 윤 사장은 화를 자주 내지 않지만, 규칙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한다. SCM 자동화를 결정한 뒤, 이를 어겼던 몇 명의 임원들이 실제 징계를 받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는 철저한 자기관리에서도 드러난다. 1953년생으로 올해 60세인 그의 배에는 젊은 시절 그대로의 복근이 있다. 매일 아침 6시반까지 출근하는 그는 새벽 5시 이전에 일어나 꼭 운동을 한다고 한다. 수시로 직원들과 등산을 다니기도 한다.
패션에 ‘효율’을 입혀라
삼성에버랜드 패션사업은 안팎으로 어렵다. 불황이 계속되고 있고 자라 유니클로 등 해외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 윤 사장은 SCM을 구축해 패션업을 구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윤 사장은 과거처럼 춘하 추동 등 한 해 두 번 상품을 기획하고, 양껏 생산한 뒤 매장에 쌓아두고 팔다가 안 팔리면 할인해 파는 구조로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다는 생각이다. 자라 등이 붐을 일으킨 건 먼저 소비자 욕구를 파악한 뒤 효율적 SCM으로 가장 빨리, 저가에 생산해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윤 사장은 취임 직후 첫 일성으로 “일하는 방식과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자”고 밝힌 뒤 SCM구축에 돌입했다. 지난 2년간 기획부터 생산 유통까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1년에 2회가 아닌 2주에 한 번씩 기획해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삼성 관계자는 “패션업은 오너인 이서현 사장이 총괄하지만, 윤 사장이 투입돼 강단있게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윤 사장의 도전이 패션업에도 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되고 있다.
■ 윤주화 사장 프로필
△경기 수원(60) △성균관대 통계학과 졸업 △2004년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경영지원팀장(부사장) △2010년 삼성전자 사장(CFO) △2012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신 사장의 말은 첫 달 1000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는 갤럭시S5가 출시 한 달가량을 앞두고 아직 생산조차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이는 삼성전자의 공급망 관리(SCM)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전 세계 협력사에 부품을 주문해 조립하고, 다시 전 세계 통신사·유통망에 공급하기까지 한 달이면 충분하다는 얘기다.
이런 삼성전자 SCM을 구축한 사람이 윤주화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이다.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이던 그는 2012년 말부터 패션사업을 맡아 패션에서도 SCM을 구축하기 위해 뛰고 있다.
삼성전자 경쟁력의 원천은 SCM
SCM은 언제 어떤 제품·서비스를 만들어 공급할지 판단하고, 그 판단을 협력사부터 유통망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해 동시에 자원을 투입하는 게 핵심이다. SCM이 효율적이지 못하면 낭비가 생긴다. 원자재 공급자부터 1·2·3차 부품 협력사 등을 거치는 각 생산단계마다 재고가 쌓일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2000년대 초 SCM 구축에 엄청난 돈을 투입했다. 삼성전자도 효율적 SCM 없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 아래 2002년 SCM 구축에 나섰다.
당시 경영기획실 전무로 승진한 윤 사장에게 이를 맡긴 건 자재관리부터 시작해 현장·실무를 꿰고 있는데다, 통계학과(성균관대) 출신으로 숫자에 밝고 치밀해서다. 여기에 1988년부터 재무(관리)를 맡아 업무 프로세스 등 회사의 큰 골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2년여 동안 SCM의 개념을 만들고 프로세스를 파악해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헛돌았다. 문제는 생산부문과 영업부문이 서로 믿질 못하는 것이었다. 매장에서 팔린 상품은 정확히 입력되지 않았다. 공장에선 미리 생산한 뒤 밀어내기를 하고, 수시로 생산계획을 바꿨다. 생산과 영업부문이 재고와 공급 부족 책임을 미루던 악습은 1994년 전사적자원관리(ERP) 도입 이후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었다.
2004년 어느 날, 윤 사장은 전 세계 지·법인장을 화상회의 앞으로 불러모았다. “앞으로 본사와 지사, 판매와 생산법인 간 의사결정은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합니다. 이를 어길 경우 옷 벗을 각오를 하십시오.”
시스템이 자동화되니 일부 생산법인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판매 속도만큼 물건을 만들어 줘야 하는 데 역량이 안되는 공장들이 이를 받쳐주지 못했다. 그러자 잘 팔리는 물건이 아닌, 만들 수 있는 물건만 만들어 생산 대수를 채우던 버릇이 다시 살아났다. 재고가 발생하고, 협력사들은 어떤 부품을 납품해야 할지 몰라 대기해야 했다.
그때 윤 사장이 도입한 게 ‘3일 확정생산 체제’다. 사흘이면 부품 주문부터 생산까지 가능하다고 판단한 윤 사장은 일단 생산계획이 확정되면 3일간 바꾸지 못하게 했다. 이러다 보니 협력사는 마음 놓고 부품을 만들 수 있게 됐고, 전체적인 생산성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이런 작업을 하는 동안 윤 사장은 3~4년간 주말이 없었다. 분기별로 해외 영업법인들을 찾아 1박2일 콘퍼런스를 하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강의했다. SCM을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윤 사장은 2004년 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0년 상무가 된 지 4년 만이었다. 2009년 말 CFO에 올라, 부사장 때부터 삼성전자 내 3명뿐인 등기이사에 등재됐으며 2010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큰 형님’의 변신은 무죄
삼성 ‘재무통’은 통상 입이 걸다. 일이 많고 고된데다 ‘우리가 삼성을 책임진다’는 문화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관리의 삼성’이란 표현에 걸맞게 CFO들은 재무뿐 아니라 인사, 기획, 관리 등 많은 업무를 담당한다.
이런 선상에서 보면 윤 사장은 좀 다르다. 재무통 중에서 드물게도 ‘큰 형님’으로 불린다. 부드럽고 합리적인 성격인데다, 부하 직원들의 말을 경청한다. 많이 웃고 표정도 온화하다.
윤 사장은 2012년 말 삼성에버랜드(당시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맡은 뒤 옷차림을 확 바꿨다. 통 넓은 바지에 검정 구두, 어두운 색상의 재킷 등 전형적인 ‘사장님 패션’이었던 그는 딱 붙는 바지와 스트라이프 무늬 재킷을 즐겨 입는다. 머플러와 구두의 색도 ‘깔맞춤’하고 다닌다. 유연한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다. 윤 사장과 함께 30년 가까이 일해온 한 사장급 임원은 그를 “원칙주의자이면서도 유연하다”고 한 마디로 평했다. 원칙주의자란 말은 ‘룰은 지킨다’는 얘기다. 윤 사장은 화를 자주 내지 않지만, 규칙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한다. SCM 자동화를 결정한 뒤, 이를 어겼던 몇 명의 임원들이 실제 징계를 받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는 철저한 자기관리에서도 드러난다. 1953년생으로 올해 60세인 그의 배에는 젊은 시절 그대로의 복근이 있다. 매일 아침 6시반까지 출근하는 그는 새벽 5시 이전에 일어나 꼭 운동을 한다고 한다. 수시로 직원들과 등산을 다니기도 한다.
패션에 ‘효율’을 입혀라
삼성에버랜드 패션사업은 안팎으로 어렵다. 불황이 계속되고 있고 자라 유니클로 등 해외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 윤 사장은 SCM을 구축해 패션업을 구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윤 사장은 과거처럼 춘하 추동 등 한 해 두 번 상품을 기획하고, 양껏 생산한 뒤 매장에 쌓아두고 팔다가 안 팔리면 할인해 파는 구조로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다는 생각이다. 자라 등이 붐을 일으킨 건 먼저 소비자 욕구를 파악한 뒤 효율적 SCM으로 가장 빨리, 저가에 생산해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윤 사장은 취임 직후 첫 일성으로 “일하는 방식과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자”고 밝힌 뒤 SCM구축에 돌입했다. 지난 2년간 기획부터 생산 유통까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1년에 2회가 아닌 2주에 한 번씩 기획해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삼성 관계자는 “패션업은 오너인 이서현 사장이 총괄하지만, 윤 사장이 투입돼 강단있게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윤 사장의 도전이 패션업에도 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되고 있다.
■ 윤주화 사장 프로필
△경기 수원(60) △성균관대 통계학과 졸업 △2004년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경영지원팀장(부사장) △2010년 삼성전자 사장(CFO) △2012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